[서울=뉴스핌] 김윤희 기자 = 4·10 총선을 85일 앞둔 시점에 제3지대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진보 진영 대안정당'을 자처해 왔던 정의당이 세 갈래로 나뉘며 존폐 위기에 놓였다.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던 류호정 의원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내주 중 정의당을 탈당하겠다 밝혔고, 박원석 전 의원이 속한 전현직 당직자 모임 '대안정치행동'도 같은 날 "정의당은 제3지대 플랫폼으로서 실패했다"고 비판하며 탈당을 선언했다.
김준우 비상대책위원장을 필두로 한 정의당 잔류 세력들은 지난 14일 열린 정기 당대회 결과에 따라 녹색당과의 '가치중심 선거연합정당'을 추진 중이다.
이낙연·이준석 등 양대 정당의 전 대표들과 민주당 출신의 금태섭·양향자·'원칙과상식'(김종민·조응천·이원욱) 의원들이 각각 주도하는 신당들의 추동 속, 당초 기득권 양당 체제 타파를 외치며 나섰던 정의당의 나아갈 길에 관심이 모인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당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1.15 pangbin@newspim.com |
◆ 비례 1번 류호정 "정의당, 민주당 2중대 길로" 비판하며 탈당
1992년생의 류 의원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영입되며 '21대 국회 최연소 의원'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류 의원은 지난해 4월 출범한 정치 그룹 '세번째권력'을 통해 제3지대 신당 재창당의 필요성을 역설해왔고, 지난달 17일 '세번째권력'을 금 전 의원의 '새로운선택'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창당을 선언했다.
금 전 의원과 류 의원은 창당대회에서 "내년 총선에서 30석의 의석을 얻어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류 의원은 창당 이후로도 지난 1달여간 신당 창당을 설득하겠다는 이유로 비례대표 당적을 유지해왔다. 이에 정의당이 류 의원의 탈당 및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안건을 전국위원회에서 통과시키고 징계 절차에 회부하면서 갈등이 일기도 했다.
이른바 '당적 논란'은 류 의원이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탈당 및 의원직 포기 선언을 하면서 우선 봉합됐다.
류 의원은 회견에서 지난 14일 정의당 당대회를 통해 녹색당과의 선거연합정당이 승인된 것을 두고 "정의당은 시대 변화에 맞춰 혁신하지 못했고, 오직 관성에 따라 운동권연합, 민주대연합을 바라고 있다"고 비판하며 탈당 의사를 밝혔다.
류 의원은 오는 19일 정의당 중앙당기위원회에 출석해 마지막으로 입장을 소명하고 다음주 중으로 의원직 사퇴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 박원석 등 '대안신당' 모임, 민주당 탈당파 '미래대연합' 합류
박원석 전 의원, 권태홍 전 사무총장 등을 비롯한 정의당 전현직 당직자들은 류 의원과 같은 날 정의당을 탈당하고 민주당 탈당파인 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 주도하는 신당 '미래대연합' 합류를 선언했다.
'대안정치행동 공동제안자(박원석·권태홍·배복주·박웅두·이헌석·장상화·양범진·조윤민·오현주)'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의당을 떠나 함께 사는 미래로 가는 대안정당의 길에 나선다"며 이같이 밝혔다.
다만 박웅두 전 농어민위원장은 정의당을 탈당하되 미래대연합엔 합류하지 않기로 했다.
이들은 회견문에서 "지금까지 시민들은 양당에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공존해야 할 정치적 경쟁자가 아닌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행태만 격화시켜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 나은 정치를 가질 자격이 있는 시민들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적대적 양당 진영정치를 더는 인내해야 할 이유가 없다. 양당의 적대적 대결 정치로 위기 극복이나 변화는 불가능하다"며 "정치로부터 배제된 다양한 당사자들의 새로운 축적의 공간, 신뢰의 정치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안정치행동'의 박 전 의원은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정의당은 큰 정당은 아니지만 전신이었던 진보당부터 시작하면 (제3지대의) 고유 정체성을 만든 정당"이라며 "우리는 그 가치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3지대 신당은 지난 20년 정의당과 다르지 않다"고 부연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배진교 원내대표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2차 정기 당대회에서 참석자들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2024.01.14 mironj19@newspim.com |
◆ 정의당-녹색당, 가치중심 선거연합정당으로 총선 채비
이런 가운데 정의당은 지난 14일 제12차 정기 당대회를 열고 녹색당과 '가치중심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할 것을 추인했다.
정의당과 녹색당은 각각 1명씩 선거연합정당의 공동대표를 내고 오는 2월 3일 열리는 전국위원회에서 당명과 정강정책, 당 조직 및 운영체계 등을 확정할 계획이다.
정의당은 오는 22일부터 25일까지 선거연합정당의 당명 선정, 정의당 추천 대표를 현 김준우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건에 관한 당원 총투표를 진행하기로 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당대회가 끝난 뒤 "정의당과 녹색당의 '가치중심 선거연합정당' 개문발차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진보진영 선거연합정당의 '첫 번째 단추'임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또 김준우 비대위원장은 지난 15일 비대위 회의에서 "한국 정치사에 처음으로 시도되는 선거연합정당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적대적 정쟁에 마침표를 찍고 협력하는 연합 정치의 시대를 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으론 이낙연, 이준석, 금태섭 등 제3지대 신당 주자들을 겨냥해 "연합을 주장하고 제3지대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3번을 쟁취하기 위한 다툼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공세하기도 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다당제 연합정치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선거제도와 정당법, 공직선거법 개정을 위한 이야기는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다"며 "원래 정당으로의 금의환향, 원대 복귀가 목표가 아니라면 이른바 제3지대를 참칭하시는 모든 정당의 정치인들은 지금 당장 정치제도 개혁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각자 다른 셈법을 가지고 모인 세력들의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빛깔 좋은 '비빔밥'이 아니라 '개밥'일지도 모른다"고 일격했다.
◆ "정의당, 한국 정치사 비극의 몸통…양대 정당 타파엔 연합 필수"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의당의 분열에 관해 '존폐 위기'이자 제3지대 현실을 방증하는 한계라고 진단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뉴스핌과 통화에서 "요즘 지지율도 진보당이 더 높게 나오지 않나. 민주노총이 정의당보다 진보당을 더 지지하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사실 진보 진영에서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어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재창당급의 혁신을 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별로 성과가 없는 상태"라며 "거의 해산 절차로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 역시 "정의당은 우리 한국 현대 정치 사회의 비극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정당"이라며 "지역·세대·남녀 갈등 국면 중 두 거대 양당이 펼치는 진영 대결에 정의당이 설 당력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이낙연·이준석·금태섭 등 현재 신당의 대표 주자들에 대해 "그 사람들은 한 번도 이념의 피해를 받아본 적이 없다. 지역주의 구도, 남녀 갈등에서 수혜를 본 사람들"이라며 "제3지대 정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박 평론가는 대안정당으로서의 정의당 역할론과 관련 "양대 정당의 기득권이 너무 커서 내부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것"이라며 "진보세력의 빅텐트가 필요하다. 연합하지 않으면 힘이 없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에서 얘기할 수 있는 노동조합, 노동자, 서민, 민생, 남북 관계 이런 데 화두를 가지고 이번 21대 총선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그때 국민들한테 이것이 진보다라는 것을 보여줘야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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