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정부가 총선을 두 달 앞두고 상속세 개편 의지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민생토론회에서 한국의 상속세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시장 저평가)' 원인으로 꼽았다.
이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상속세가 기업의 지배구조를 왜곡한다고 발언해 윤 대통령과 발을 맞췄다. 기재부는 상속세 유산취득세 연구용역을 이달 마무리한다.
한국의 최고 상속세율은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사실상 1위다. 과표구간도 24년째 그대로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설이 지난 뒤 상속세 개편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 한국 최고 상속세율 60% 육박…OECD 국가 중 1위
12일 기재부 등 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최고 상속세율은 50%로 OECD 국가 중 2위다. 1위는 일본(55%)이다. 이어 프랑스(45%), 미국(40%), 영국(40%), 독일(30%) 순이 다. OECD 회원국의 최고 상속세율 평균은 15%로 우리나라의 3분의 1 수준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최대 주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게 되면 평가액에 할증(20% 가산)이 붙어 최고세율이 60%에 육박한다. 최고 상속세율로 따지면 사실상 OECD 국가 중 1위다. 한국의 세 부담 수준이 주요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이다.
과도한 세 부담은 기업의 활동을 위축케 한다. 일례로 국내 가구업계 1위인 한샘은 상속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대주주의 주식 승계 대신 해외 사모펀드에 기업을 넘겼다. 최근 삼성가 세 모녀가 상속세 마련을 위해 계열사 지분을 대량으로 처분한 이후 삼성전자 주가는 장기간 부진한 모습이다.
이렇듯 상속인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보유 주식을 파는 경우엔 시장에 주식 물량이 늘어 주가가 하락하고 피해는 개미투자자(개인투자자)가 입는 악순환도 발생한다. 상속인이 상속받거나 포기하는 선택 모두가 우리 경기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는 지난달 17일 윤 대통령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당시 윤 대통령은 "소액주주는 주가가 올라야 이득을 보지만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어야 된다"며 "결국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과도한 세제는 중산층과 서민에게 피해를 준다"고 지적했다.
최 부총리도 지난달 21일 한 방송에 출연해 "(우리나라) 상속세는 선진국보다 너무 높고 기업 지배구조를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며 "대통령이 화두를 던진 것으로 실제로 추진하려면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생각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해 신중하게 추진하겠다"고 발을 맞췄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입에서 연일 상속세 완화를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면서 총선을 두 달 앞두고 상속세 개편이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기재부가 현행 '유산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 검토하기 위한 연구용역도 이달 마무리된다.
◆ 유산세→유산취득세 도입 첫걸음…과표구간 조정도
[서울=뉴스핌]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주제로 열린 네 번째 '국민과 함께 하는 민생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4.01.17 photo@newspim.com |
우리나라 상속세는 사망한 사람이 물려준 유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세'를 준용한다. 사망인의 생전 누적 재산에 대한 세제 정산의 성격으로 부의 재분배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높이겠다는 취지다.
다만 OECD 회원국 38개국 중 상속 관련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는 24개국인데, 이중 '유산세'를 준용하는 국가는 미국, 영국, 덴마크, 한국 등 4개국에 불과하다. 나머지 20개국은 '유산취득세' 방식을 택했다.
'유산취득세'는 전체 유산이 아닌 내가 물려받은 유산만큼 세금을 내는 제도로 '유산세'보다 합리적이라는 평가다. 현행 증여세도 '유산취득세' 방식이 적용된다. 상속세만 '유산세'가 적용돼 세법상 정합성도 저해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속세 과표구간과 공제액 확대도 논의 대상이다. 현행 상속세율은 2000년 최고세율이 45%에서 50%(최대주주 60%)로 상향되고, 과표구간이 '50억원 초과'에서 '30억원 초과'로 낮아진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변동이 없다.
현재 상속세율은 ▲1억원 이하 10% ▲1억~5억원 이하 20% ▲5억~10억원 이하 30% ▲10억~30억원 이하 40% ▲30억원 초과 50% 등으로 5단계 과표구간을 지니고 있다.
2018~2022년 상속세 과세 인원 [자료=국회예산정책처] 2024.02.11 plum@newspim.com |
지난 24년간 과표구간은 그대로지만 물가상승 등으로 인해 상속세 납부 대상은 크게 늘었다. 2018년 기준 전체 피상속인 중 약 2.24%만 상속세를 부담했는데 2022년에는 그 비율이 4.52%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상위 10%가 총결정세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2.3%에서 92.0%로 늘었다. 상속세가 대자산가를 중심으로 상당히 누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상속공제를 반영할 경우 실효세율(납세자가 실제로 납부하는 세부담)이 10%대 수준이어서 공론화가 필요해 보인다. 상속세 인하의 혜택이 대부분 대재산가에게 돌아간다는 점은 '부자감세'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속세 공제제도도 1996년 배우자 공제 한도액과 기초공제액, 일괄공제액 개편과 2015년 자녀와 연로자, 미성년자, 장애인에 대한 공제액을 상향한 것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큰 변화는 없었다. 반면 같은 '유산세' 방식을 택한 미국, 영국 등은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공제액을 인상하고 있다.
상속제도를 '유산세'로 준용하는 4개 국가 중에서도 배우자 공제에 있어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공제한도를 설정한 점도 공제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김영순 인하대 교수는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를 통해 "OECD 많은 국가가 배우자 상속세를 전부 면제하고 있다며 "부부간에 상속재산의 이전은 동일 세대 간의 이전이므로 '1세대 1회' 과세 원칙의 관철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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