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석훈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기업 밸류업 지시 이후, 자사주를 매입한 기업의 수가 대거 증가했다. 이를 두고 상장사들이 주총 시즌을 맞아 당국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일 이후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상장 법인의 수는 50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직전 한 달(29개) 대비 72% 많은 수준이다. 2월 2일은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기치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을 처음으로 발표한 날이다.
[서울=뉴스핌] 이석훈 기자 = 2024.03.04 stpoemseok@newspim.com |
당국이 예의주시하는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기업의 자사주 매입 비율도 늘었다.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전 한 달 간 자사주 매입을 공시한 PBR 1 미만 기업의 비중은 51.72%(29개)였다. 반면 발표 후에 한 달 간의 수치는 70%로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를 기점으로 18.28%포인트(p) 늘었다.
현재 당국은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매입 등을 적극 주문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6일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 참석해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여러 밸류업 지원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며 "가이드라인 수립과 세정 지원 우대 혜택 등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상장기업의 자발적 노력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주주환원 같은 특정 지표를 만들어 미달 기업에 대해서는 거래소 퇴출 등을 포함한 여러 요소를 논의하고 있다"며 "오랫동안 성장하지 못하거나 재무제표가 나쁜 기업을 시장에 두는 것이 맞는지 의문스럽다"고 경고했다.
업계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포함한 당국의 압박이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 증가로 이어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코스피 상장사 관계자는 "저PBR주로 꼽히는 업종을 영위하는 기업에 당국의 지침이 내려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업 가치 제고에 대한 당국 취지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자사주 매입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주주총회(주총) 시즌에 자사주 매입 공시가 늘어날 수는 있는데, 최근 공시를 보면 자사주 매입과 배당 공시를 한 번에 하는 기업 수가 덩달아 늘었다"며 "이는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후 주주환원이라는 가치에 대한 상장사 관심도가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이 '당국 눈치 보기용'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 등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연구원은 "결국 주가와 주주가치가 함께 오르려면 자사주 매입 후 소각, 배당의 실질적 증가가 필요하다"며 "최근 이뤄지는 자사주 매입은 당국에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용도로 결정된 것일 수 있으므로, 이후 공시될 내용에 대해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 대형사 관계자도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지배구조 관련 개선책이 도입돼야 한다"며 "상장기업들도 오는 5월 발표될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적 방안과 세제 혜택 등을 보고 추가적 조처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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