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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안, 린샤오쥔, 황대헌…이제 스포츠마저 '적폐'로 몰 것인가

기사등록 : 2024-03-2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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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황대헌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 눈높이
체육계를 폄하하는 그릇된 인식부터 바꿔야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대한빙상경기연맹은 "고의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누리꾼들은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마치 중립적인 듯 인용부호를 붙이긴 했어도 황대헌의 '팀킬 논란'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대헌은 쇼트트랙 로테르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틀 연속 팀 선배 박지원과 충돌해 실격 처리됐다. 황대헌은 16일 남자 1500m 결승에선 선두를 달리던 박지원의 인코스로 파고들며 추월하려다가 부딪혔다. 박지원은 꼴찌로 밀려났고, 맨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황대헌은 실격했다. 17일 1000m 결승에선 선두였던 황대헌이 인코스로 파고드는 박지원을 밀쳐냈다. 박지원은 펜스까지 밀려나 부딪힌 뒤 경기를 포기했다. 전날과 정반대 상황이었지만, 심판의 탈락 판정은 이번에도 황대헌에게 향했다.

박지원으로선 연금 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 세계선수권 금메달 2개를 놓쳤고, 국가대표 자동 선발 기회마저 날려버렸다. 둘의 충돌 사고는 이 번뿐만이 아니다. 황대헌은 지난해 10월 몬트리올 월드컵 때도 1000m 2차 레이스에서 박지원을 밀쳐내 옐로카드를 받고 랭킹 포인트 몰수 조치를 당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지난해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홍보대사 위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황대헌. pangbin@newspim.com

◆ 음모론 양산하는 허울 좋은 양심의 법정

특정 선수들 사이에 이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분명 의심의 여지가 있다. 각종 음모론이 나오고, 실제보다 부풀려지기도 하는 것이 이해는 된다. 황대헌은 한국체대, 박지원은 단국대 출신이다. 파벌싸움이 재현된 게 아니냐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진실은 번번이 가해자로 지목된 황대헌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양심의 법정'이란 게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 이번 사태에 대한 판정은 당시 상황을 비디오로 꼼꼼하게 분석한 전문가들의 손에 맡기는 게 해답이다. 그게 상식이고, 법치이다. 이미 빙상연맹은 "고의성은 전혀 없었으며, 팀킬을 하려는 의도 또한 전혀 없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전혀'라는 단어를 한 문장에서 두 번이나 썼다.

황대헌 역시 "고의는 아니었지만 제 플레이로 동료 선수에게 피해를 끼치고, 다치게 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사죄했다.

이것으로 끝내야 한다. 쇼트트랙은 종목 특성상 신체접촉이 많은 대표적인 스포츠다. 농구 축구에서 오펜스와 디펜스 파울이 한끝 차이이듯, 쇼트트랙의 파울 또한 그렇다. 기자가 앞서 황대헌과 박지원이 부딪히는 상황을 비교적 자세히 묘사한 것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다.

게다가 쇼트트랙은 다른 종목과 달리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파울의 가해자는 모든 것을 잃게 되고, 피해자 역시 구제를 받아 재경기를 못하는 한 순위 다툼은 접어야 한다. 한국의 올림픽 메달밭인 쇼트트랙이 세계인이 사랑하는 스포츠가 되기 위해선 꼭 해결하고 넘어야 할 벽이다.

2014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페이스북 커버 사진에 등장한 안현수. [사진=푸틴 대통령 페이스북]

◆빅토르 안과 린샤오쥔의 귀화

세간의 지나친 관심과 압력이 파국을 맞게 한 결과는 또 있다. 쇼트트랙 간판스타였던 안현수(빅토르 안)와 임효준(린샤오쥔)은 각각 러시아와 중국으로 국적을 바꿨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임효준이 한국을 떠나게 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황대헌과 법정다툼을 벌이면서다. 둘은 한국체대 선후배 사이로 10년 넘게 같이 운동하며 룸메이트를 했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2019년 대표팀 암벽훈련 때 서로 장난을 치다가 사건이 발생했다. 황대헌이 암벽을 타고 있는 여자 선수의 엉덩이를 손으로 쳐 떨어뜨리는 장난을 치자, 임효준 역시 황대헌의 골반을 잡았는데 그만 바지가 벗겨지면서 맨살이 일부 노출되고 말았다.

황대헌은 사과를 했지만,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일이 묘하게 꼬이게 된다. 빙상연맹은 임효준에게 동성애자라는 악플까지 달리자, 여론에 떠밀려 1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에 임효준은 링크를 벗어나 법원 문을 두드렸다. 누구나 예상했듯 임효준은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이번엔 그동안 감정이 상했던 황대헌이 강제추행 혐의로 형사소송을 걸게 된다. 1심에선 임효준에게 300만원의 벌금형과 선수 자격, 연금 박탈 판결이 나왔지만 동료 선수와 코치의 탄원서를 받아든 2심은 무죄로 판결을 돌려놓았다. 사건 발생 후 대법원의 최종 무죄 판결까지 2년간 소속팀조차 없이 보낸 임효준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대표팀 선수 겸 코치를 제안한 중국의 귀화 제안을 안 받아들이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안현수는 영화 한 편을 족히 만들 만하다. 자세한 설명은 너무 길어 압축하면,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 안현수는 부상, 파벌싸움 등 이런저런 악재가 겹치면서 대표팀 선발이 좌절되자 러시아로 떠났다. 한국은 2014년 소치에서 다시 3관왕으로 부활한 그가 있었다면, 소중한 금메달 3개를 추가할 수 있었다. 안현수는 2022년 베이징에선 중국 대표팀 기술코치를 맡아 2개의 금메달을 안기면서 일부 팬들에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한국체대 출신인 안현수가 쇼트트랙의 오랜 파벌싸움의 수혜자인지, 아니면 역차별의 희생양인지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긴 하다.

[영종도=뉴스핌] 정일구 기자 =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는 안산. mironj19@newspim.com

◆체육인을 폄하하고 죄악시하는 주위의 시선

앞에서 언급한 일련의 사태들은 음모론의 시각에서 보면 자극적인 소재가 될 수는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태의 근본 원인은 체육인과 그들의 문화를 무시하는 잘못된 시각에서 비롯됐다는 게 30년 넘게 체육을 취재한 기자의 오랜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체육계는 폭력과 성 관련 범죄가 난무하고, 학벌과 지역에 따른 파벌싸움이 끊이지 않는 곳이란 편견을 갖고 있다. 스포츠 선수의 사망이나 인권침해 사고가 발생하면 정부가 그제서야 체육 정상화·선진화 방안이니, 스포츠 혁신안이니 줄줄이 내놓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기자는 체육계의 범죄율이 국민 평균보다 높다는 통계를 언제 어디에서도 접한 기억이 없다. '쇼트트랙의 대부'로 불린 전명규 전 대표팀 감독은 파벌싸움의 주범으로 지목돼 연맹 부회장과 한국체대 교수직 파면(지난해 복직)을 당했다. 그러나 이런 그가 사법 처분을 받았다는 소식을 아직 들은 적이 없다.

체육인은 무식해서, 경기를 못하더라도 공부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동안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내놓은 체육정책이 산업 문화 의료 건강 교육의 관점이 아니라 복지에 초점이 맞춰진, 근시안적 사고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지난 정부에서 공부 시켜주고, 은퇴 후 일자리까지 챙겨주겠다는 스포츠 혁신안에 체육인들은 정면 반발했을까.

여기서 사족 하나. 2021년 도쿄 올림픽 양궁 2관왕 안산은 최근 자신의 SNS에 한 일본풍 음식점 간판 사진을 올리며 "한국에 매국노 왜 이렇게 많냐"는 글을 올렸다. 이 업체 대표는 "한 순간에 친일파의 후손이 됐고, 저의 브랜드는 매국 브랜드가 됐다"면서 살해 협박까지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념과 정파를 떠나서, 또 공인과 사인을 나눌 필요 없이 안산의 생각은 잘못됐다. 안산도 며칠 후 사과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그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누리꾼들도 좀 더 느긋한 자세로 체육인들을 지켜보고, 응원해주면 어떨까.

zangpab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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