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야구는 공의 반발력이 리그를 지배하는 스포츠다.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베이브 루스는 투수에서 본격적으로 투타 겸업을 시작한 1918년 13승을 거두며 전체 154경기 중 95경기만 타석에 서고도 홈런왕에 올랐다. 당시 그의 홈런 수는 11개였다. 공의 반발력이 워낙 낮은 데드볼 시대였다.
KBO리그 공인구는 2019년 도입됐다. 그 전에도 공인구는 있었지만 구단마다 다르던 것을 단일화하고 기준을 정했다. 프로야구는 이때부터 극심한 타고투저에서 헤어나왔다.<사진=뉴스핌DB> |
그런데 루스는 이듬해인 1919년 29홈런 신기록을 세우더니 1920년 보스턴에서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뒤 타자로 전념하자마자 전인미답의 54홈런을 날렸다. 당시 홈런 2위 기록은 1919년 12개, 1920년 19개였으니 루스의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루스가 60홈런 이정표를 세운 1927년에는 그 어떤 팀도 그보다 많은 홈런을 치지 못했다. 팀 홈런 2위인 필라델피아가 56개, 밤비노의 저주에 걸린 보스턴은 28개에 불과했다. 데드볼이 코르크심을 넣은 라이브볼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루스라는 괴물이 탄생해 메이저리그를 미국의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게 한 것이다.
이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공인구의 반발력을 조정하는 작업을 통해 화끈한 공격야구와 경기시간 단축이라는 서로 다른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줄다리기를 해왔다.
◆수비에서 공격야구로 가는 게 현대야구의 추세
우리나라도 메이저리그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박영길 전 롯데 감독은 기자에게 늘 입버릇처럼 "응용이(김응용 전 대한야구협회장)하고 나하고 홈런 차이라봐야 매년 한두 개였어"라고 말했다. 실업야구 시절인 1960년대 타격왕을 6번이나 수상했던 왼손 교타자인 그가 당대 최고의 오른손 강타자였던 김응용에 비해 홈런 수가 큰 차이가 나지 않은 것은 극심한 투고타저 시대였기 때문이다. 실업야구를 통틀어 통산 100홈런을 넘긴 타자는 이들과 박현식 김우열 등 4명뿐이었다.
반면 마운드에선 재일교포 출신인 김영덕 전 빙그레 감독, 신용균 전 쌍방울 감독이 리그를 압살했다. 김영덕은 1964년 무려 33경기에 나가 255이닝동안 9실점(평균자책 0.32)만 했다. 1967년에는 17승 1패에 평균자책 0.49를 기록하는 등 통산 평균자책이 0점대를 찍었다. 신용균도 한 시즌 24승에 0점대 평균자책을 기록한 적이 있다. 당시 기록들은 요즘과 달리 100% 정확성은 보장되지 않지만 어찌됐든 국보투수 선동열 전 삼성 감독도 엄두를 못 낼 기록들임은 분명하다.
서울 고척스카이돔구장. [사진= 뉴스핌 DB] |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KBO리그는 최동원 선동열이 활약한 1996년까지 투고타저 시대를 맞았다. 이후 2009년까지 타고투저 시대엔 이승엽(두산 감독)이 등장했다. 이대호가 활약한 2010년부터 2018년까지는 타고투저를 넘어 타자 천국 시대였다. 2000년대 초 이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며 등장한 한화 류현진이 얼마나 대단한 투수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격야구에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경기시간을 못 견딘 KBO는 2019년에야 뒤늦게 공인구 제도를 도입하며 반발력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타고투저가 어느 정도 진정된 가운데 이번엔 이정후(키움·현 샌프란시스코)라는 천재 타자가 시대를 역행하며 등장했다. 이정후는 KBO리그 통산 타율 0.340으로 장효조가 프로 출범 후 갖고 있던 기록(0.331)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래도 너무 심한 타고투저, 그 원인은 공인구 반발계수 때문?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공인구가 도입된 뒤 타고투저는 2000년대 초 수준으로 회귀했다. 그런데 올해 다시 화끈한 공격야구가 되살아났다. 시즌을 개막한 지 꼭 한 달이 된 22일 현재 대부분의 기록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8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총 124경기를 치른 가운데 경기당 평균득점은 10.5점으로 치솟았다. 홈런도 경기당 2개꼴(1.94개)이다. 전체 타율은 0.273으로 뛰었고, LG(0.295)와 KIA(0.291)의 팀타율은 3할에 육박한다. 규정타석을 채운 3할 타자만도 25명이다. 평균자책은 4.75로 치솟았다. 꼴찌 kt의 팀 평균자책은 6.94에 이른다. 도루는 경기당 2개꼴(1.86개)로 늘어났다.
이는 지난해에 비하면 타율은 1푼, 득점은 11.4%, 홈런은 무려 51.6%가 늘어난 수치다. 2018년엔 두산이 팀타율 0.309를 기록했고, 리그 전체 타율은 0.286이었다. 경기당 홈런은 2.44개였으니 올해보다 높긴 하다. 그래도 경기당 평균득점은 11.1점이니 올해와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리그 평균자책은 5.17이었다. 반면 도루는 2018년이 1.29개로 올해보다 적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전문가들은 올해 공인구의 반발계수가 미세하게 올라간 것을 첫 번째 원인으로 꼽는다. 지난달 22일 KBO가 시즌 개막을 하루 앞두고 발표한 공인구 1차 조사 결과 평균 반발계수는 0.4208이었다. 지난해 같은 조사(0.4175)와 비교하면 0.0033이 높아졌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KBO 기준(0.4034~0.4234)의 상한치에 근접한 상황이다. 보통 반발계수가 0.001이 높으면 타구의 비거리가 20cm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66cm가 증가한 셈이다.
KBO는 현재 공인구에 문제가 있는지 제조사에 확인을 요청해둔 상태다. 그러나 올해 타고투저가 과연 공인구 반발계수 때문 만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다면 올해 세계 최초로 도입된 ABS 영향?
KBO는 올해 여러 제도를 신규 도입했다. 그 중 로봇 심판으로 불리는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은 가히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 1군 리그에서 ABS를 적용한 것은 KBO리그가 세계 최초다.
ABS는 스트라이크존 높이를 미리 입력해둔 타자 키의 56.35%와 27.64% 사이로 선정한다. 좌우는 홈플레이트 크기(43.18cm)에 양쪽 각 2cm를 더해 47.8cm로 정했다. 투수가 류현진이든 타자가 이정후든, 또 직구든 변화구든 관계없이 시스템이 공의 궤적을 분석해 기계적으로 판정을 한 뒤 심판에게 콜을 보내준다. 볼 판정에 있어 심판의 재량권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이제 더 이상 '선동열존' '류현진존'은 없다. 올해 ABS 도입으로 류현진이 던지든, 무명 투수가 던지든 스트라이크존은 기계적으로 판정이 나온다. [사진=한화] |
KBO는 지난 18일까지 3만4189개의 투구 중 99.99%의 투구 추적 성공률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투구 추적 실패 사례는 불과 11건으로 이물질이 투구 직후 카메라의 추적 영역에 침범한 경우였다고 하니 앞으로 대비는 해야겠지만 큰 변수는 아니다.
또 지난 14일 삼성과 NC의 대구 경기에서 발생한 '오심 은폐 논란'은 ABS 콜을 못 들은 심판진의 이후 대처 과정이 문제였지, ABS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ABS를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원래 ABS는 타자보다 투수에게 유리할 것이란 게 도입 전 전망이었다. 예전엔 심판들이 잘 잡아주지 않던, 스트라이크존에 살짝 걸치고 빠져나가는 볼이 여지없이 스트라이크로 찍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반대였다. 스트라이크존이 기계적으로 고정되다 보니 타자들이 더 빨리 적응했다는 설명이다. 낮은 공보다는 높은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기에 유리하다는 애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유명한 투수가 나왔을 때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이 사라졌다는 말도 있다.
내년 정식 도입 예정이지만, 올해 시범 도입된 피치클락도 타고투저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피치클락은 투수의 경우 주자자 없을 때 18초, 있을 때 23초 안에 투구해야 한다. 타자는 8초 전에 다음 타격을 준비해야 한다.
피치클락은 아직 제재는 없지만 경고가 주어지고 있어 아무래도 투수들의 마음을 급하게 한다.
이와 함께 올해부터 베이스 크기를 3인치(7.62cm) 늘린 것은 폭발적으로 도루가 늘어난 원인이 된 게 확실하다. 베이스간 거리가 줄어든 것보다는 베이스 크기가 커져 슬라이딩할 때 상대 태그를 피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고, 주자의 리드 폭을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유리함이 생긴 때문이다. 올해는 도루 시도도 많아졌지만, 도루 성공률이 75%로 평년보다 올라갔다.
KBO리그는 올해 ABS 등 신규 제도 도입으로 논란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미국 일본 대만 등 세계 야구계는 한국을 예의주시하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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