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AI(인공지능)와 작가가 할 역할은 선명히 나누어져 있어요. 더 정교하고 밀도 있는 작업은 사람밖에 못 하거든요."
'한국 만화계 거장'으로 불리는 이현세 작가가 국립중앙도서관 특별 전시장에서 열리는 '이현세의 길: K-웹툰 전설의 시작' 주인공이 됐다. '공포의 외인구단', '아마게돈' 등의 작품을 선보인 이현세 작가를 9일 만났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이현세 작가 [사진=국립중앙도서관] 2024.05.10 alice09@newspim.com |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각 부문별로 기획전을 하는데, 이번에 저한테 제안을 주셨더라고요. 너무 기분 좋게 '하겠습니다!' 했죠. 하하. '전시'를 떠올리면 미술관, 그리고 화가를 떠올리는데 도서관에서 이야기꾼, 그림꾼, 등 모든 문화인에 대해 기획전을 하는데 그 중에 제가 선정됐다는 게 영광입니다."
1956년생인 이 작가는 1974년 만화계이 입문했다.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만화에 매진해 온 그는 아직까지도 만화를 그리고, 학생들에게 만화를 가르치고 있다. 또 시대에 발맞춰 AI를 활용한 작업도 선보이고 있다.
"유행도 따라갈 필요가 있죠. 지금 AI가 이현세 화풍을 학습해 만화를 그려내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올 연말이면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 시간이 조금 더 걸렸으면 좋겠는데(웃음). AI가 너무 빨리 배우는 게 약간 화도 나기도 해요. 하하."
이번 전시에도 이현세 작가의 그림체를 학습한 AI 드로잉 체험 공간이 마련됐다. 로봇이 관람객의 얼굴을 찍고 분석한 뒤,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2분 만에 이현세 화풍을 학습한 AI 로봇의 그림이 완성된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이현세의 길: K-웹툰 전설의 시작 특별전' 전시 전경 2024.05.09 alice09@newspim.com |
"유행도 따라갈 필요가 있어요. 적어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AI를 활용하면 수천 명의 보조 작가를 갖게 되는 거라 생각해요. 다만 사람도 그만큼의 공부와 연구가 필요하죠. AI는 얼마나 진지하고 깊숙하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거든요. AI가 그림을 그리면, 그걸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건 작가의 몫이에요. 삶의 흔적을 그리는 건 작가의 손이 더해져야만 해요. 그렇기 때문에 AI와 작가의 역할이 선명하게 나누어져 있는 거죠. 더 정교하고 밀도 있는 작업은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공포의 외인구단'의 캐릭터 까치와 엄지, 그리고 마동탁으로 이현세 작가는 자신만의 만화 세계관을 구축해냈다. 새로운 캐릭터와 이야기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아쉬운 반응만을 남겼다. 그렇기에 이현세 작가는 "제가 만든 캐릭터이지만 이기지 못하겠다"며 웃었다.
"저 역시 여러 캐릭터를 만들어 봤는데 까치와 엄지가 안 나오면 이현세 작품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제가 까치와 엄지를 만들었지만, 그 캐릭터를 이기지 못해요. 그래서 극단적인 방법으로 '천국의 신화'를 택했던 거고요. 또 '황금의 꽃'은 만화 속에 메타버스 세계가 나오는데, 당시가 8비트 시대였는데 너무 앞서갔더라고요. 까치와 엄지에게서 탈출할고 했는데 안 됐어요(웃음). 화도 나지만, 행복하기도 해요. 저는 죽지만, 캐릭터는 영생을 하는 거잖아요. 이게 AI 프로젝트에 뛰어든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는 없어도 후세에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해 소통할 수 있다는 건 엄청 통쾌하지 않나요? 하하."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이현세 작가 [사진=국립중앙도서관] 2024.05.10 alice09@newspim.com |
이현세 작가는 최근 곽경택 영화감독과 하나의 시나리오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웹툰을 동시에 만드는 프로젝트에 임하고 있다.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는 이 작가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왜 이러지?', '이건 무엇이지?'라는 거에 대해서요. 제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거의 다 다룬 것 같은데, 이게 다 호기심 때문이죠. 지금 곽경택 감독과 하고 있는 '명품시대'도 마찬가지고요. 지금 짝퉁이 정말 많잖아요. 그건 누가 만들고, 유통은 어떻게 되는지. 그런 걸 유명 브랜드에서는 왜 적극 단속을 안 하는지 궁금했어요. 지금 이 명품 시대에서 짝퉁의 세계를 다루는 이야기인데, 제 작업은 거의 다 끝나가요(웃음)."
현재 만화·웹툰 산업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2조6240억원으로 전년 대비 23%p 상승했다. 해외 수출 규모 역시 1억764만 달러로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돌파하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이 '웹툰 종주국'으로 불리고 있다.
"지금처럼 나아가면 한국의 웹툰 미래를 밝다고 생각해요. 요즘 'K웹툰'이라고 쓰는데, 웹툰은 우리가 종주국이기 때문에 굳이 'K'를 안 붙여도 되지 않나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만화·웹툰이 조금 더 대중매체가 됐으면 하는 욕심이 있으면서도, 예술문학적으로는 조금 더 작가주의 성향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지금 빙의, 환생, 타임슬립 등 상업주의 성향 작품이 시장을 끌고 가지만, 그들에게 결국 영감을 주는 건 작가주의 성향의 작품이거든요. 상업주의 작가는 시장논리에 맞춰 보편적인 작품을 확대, 재생산을 하기 때문에 큰 실험을 하지 않아요. 그러다 독자들이 상업주의 작품에 질리면 콘텐츠 자체가 죽어가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한국 웹툰 미래는 큰 플랫폼이나 정부에서 작가주의 성향 작가에게 투자를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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