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태선 기자 = K-방산 호황의 신호탄이던 폴란드 방산 수출이 중간 단계에서 장벽을 만났다. 2차 실행계약 대상에 포함된 K9 자주포 물량에 대한 폴란드 당국과의 금융계약 체결 시한이 다가오고 있는 탓이다. 오는 6월까지 별도 수출금융 지원 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실행계약 역시 효력을 잃게 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2월 폴란드 군비청과 K9 자주포 152문을 2027년까지 순차적으로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3조 4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대형 계약이다.
폴란드에 K9 자주포 및 자주포용 155mm 탄약과 K9 유지·보수를 위한 종합군수지원패키지(ILS)를 공급하고, K9 유지 부품의 현지 생산에 협력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계약 조건. 오는 6월 말까지 폴란드 당국에 차관을 지원하는 금융계약 체결이 뒤따라야만 한다.
23일 평화연구원이 주최한 '국가전략산업으로서의 방위산업: 과거·현재·미래' 토론회에서는 현안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줄을 이었다.
발제자로 참석한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예비역 해군 대령)은 "K-방산 시장이 폴란드와 유럽을 넘어 중동과 아시아로까지 확장되는 시점에, 업체들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수출금융 지원을 보장해줘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폴란드가 금융계약 체결을 요구하는 이유는 방산물자 무역의 큰 거래액 때문이다. 통상 방산물자 거래는 계약 규모가 거대하고 물품 인도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무기 판매국은 구매국에게 저금리 대출, 장기 분할상환 등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금융지원을 담당하는 수출입은행은 자본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국회에서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자본 한도를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렸지만, 수출 규모만 4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폴란드 수출을 온전히 지원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견이 강세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증액이 결정된 수출입은행 자본금은 1년에 2조원씩 5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늘어난다. 당장 6월에 필요한 즉각 지원엔 불리하다.
업계 전문가들은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지원안도 제시하고 있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평화연구원 토론회에서 "기한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만큼, 폴란드와 충분한 협상을 통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기획재정부의 예산 지원이나, 시중 은행들에게 신디케이트 론(다수 은행의 공통 조건 집단 대출)을 우선 받은 후 방위사업청이나 기획재정부에서 이자 지원을 하는 등의 정부 보증안이 있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을 통한 지원 금액을 늘리는 방안은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근식 교수는 "수출입 은행이 방산 수출 지원에 주력하면 다른 산업에 불공평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막상 지원하더라도 일부 대기업 위주의 수출 지원에 타 방산 업체들이 반발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에 수출하는 자주포 K9.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
이날 대안으로 제시된 건 '방산 수출 기금'이다.
문 교수는 "미국은 수출신용보증을 제외하고도 대외군사재정 프로그램(FMFP)를 추가적으로 운용하며 자금을 조달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역시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의 지원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방위산업에만 초점을 맞춘 전문적 수출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현재 한국 방산 수출은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지만, 동시에 기존 방산 강국들의 전방위적 압박을 받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에서 유럽연합 의회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한국산 대신 유럽산 무기를 사자고 주장했다.
EU에서는 지난 3월 유럽방위산업전략(EDIS)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유럽산 무기 비중을 현재 20%에서 50%로 늘리기로 결의하기도 했다. 동시에 유럽 투자은행에서 유럽 내 방위산업체와 폴란드에 금융 지원을 꾸준히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이 속도를 내는 만큼 시장 경쟁력을 사수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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