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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이제는 정치혁신'] "Reform Yes, Chaos No" 프랑스 드골식 정치개혁

기사등록 : 2024-05-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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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현 대통령제는 1987년 체제의 산물이다. 1987년 대통령제 개혁은 선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장기집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만들어졌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때와 같은 장기집권을 막고 체육관 대통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체제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87체제가 운용된지 올해로 37년이 지났고 그 동안 8번의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여야간 정권교체, 여소야대, 국회선진화법, 필리버스터, 패스트 트랙 등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민주주의를 경험해 오며 한국식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대통령 자신 혹은 대통령 가족이나 측근들이 정권 교체 후 일상으로 돌아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실패한 대통령의 원인은 무엇보다 권력의 중심과 향방이다. 중심은 항상 대통령에 있었고, 다음 권력은 누구에게 넘어가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다 보니 빛을 찾아 달려드는 하루살이처럼 충성경쟁으로 정치의 본질인 토론과 대화, 타협과 협상의 정치에서 뿌리내리지 못했다. 

지금, 우리의 시대적 요구는 무엇이고, 새롭게 나라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접근할 수는 없을까? 좀더 구체적으로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어떤 변수들을 고려해야 할까? 그리고 제도개혁의 열쇠는 누가 쥐고 있을까?

어떤 제도든 처음 만들어질 때는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다

세계에서 대통령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미국의 건국아버지들(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부터 제5대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집권했던 1824년까지 주로 활동한 정치인들)은 새로운 통치체제를 고안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영국식 통치제도가 갖고 있는 국왕을 어떻게 국민의 대표로 교체하느냐에 있었다. 하지만 국민이 직접 뽑는 직접선거는 그 당시까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았고, 현실적으로도 국민의 낮은 정치의식 수준에 대한 우려로 국민에게 직접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은 중우정치(우둔한 사람이 국가의 통치를 좌지우지 하는 정치방식)라 경계하는 주 대표들이 많았다. 우려의 목소리를 담아 만들어낸 것이 바로 대통령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이라는 제도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뽑은 선거인단이 간접적으로 뽑는 방식으로 절충안을 마련해 미국식 대통령제가 완성되었다.

또 한가지 시대적 요구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견제를 통해 균형을 맞추는 의회의 입법권한과 사법권의 독립적 역할을 통해 3권분립제를 실현하고자 했다. 양원제를 통해 법안심사를 까다롭게 했고, 지역의 대표를 구성하면서 작은 주의 절대적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주 간의 수평적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2명씩 주 대표를 선출하게 해 상원을 구성했다. 주의 규모에 따른 하원의 의석수 배분문제로 갈등할 때 '5분의 3협상'(Three-Fifth Compromise)을 통해 남부주의 농장주들이 소유하고 있는 흑인노예의 수를 백인의 5분의 3으로 정해 의석수를 배분해 남부에 더 유리한 조건으로 타협을 보았으며,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대통령에 구속되지 않는 사법부의 독립을 포함시켰다. 민주주의는 이렇듯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타협을 통해 그 돌파구를 찾아 제도를 창의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다.

유럽에서 비례대표제에 대한 논의는 1850년대 시작해 1890년대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제도였기 때문에 미국 건국 아버지들의 협상테이블에는 비례대표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영국과 똑같은 승자독식제인 소선거구 중심의 다수대표제가 채택되었다. (이를 FPTP, Thre First-Past-the-Post System, 즉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이 이긴다는 선착순 주의) 이 같은 큰틀의 대통령제가 완성되었지만, 몇몇 건국 아버지들의 고민은 "다수가 잡은 권력으로 소수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에 모아졌다.

미국식 권리장전(Bill of right)은 제임스 메디슨이 완성한 수정헌법 1조부터 10조까지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초대정부 출범해인 1789년 9월에 상원까지 통과되어 모든 주의 비준을 받아 1791년 채택되었다. 헌법에 대한 해설집 제작에 참여하며 헌법의 제정, 해설, 개정까지 책임진 제임스 메디슨을 헌법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메디슨은 알렉산더 헤밀턴과 존 제이와 함께 Federalist Paper 라는 미국 헌법해설집을 1789년까지 함께 집필했음. 10조까지의 수정헌법에 대한 필요성도 이 해설집에서 다루고 있음).

루스벨트 기념관에 있는 루스벨트 전 대통령 동상 [사진=루스벨트 기념관] 2021.05.21 nevermind@newspim.com

대통령 임기개혁을 성공시킨 미국

1947년 3월 21일 미국의 22번째 헌법개정안이 연방의회에서 통과된 후 48개주(알라스카와 하와이는 당시 주에 편입이 되어 있지 않았음) 중 36개 주가 승인한 1951년 2월 27일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이 개정안은 194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네번 연속 대통령으로 선거에서 승리하자 최대 두번 연임으로 제한하자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개정안의 핵심논점은 국민의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자력으로 역대 대통령중 2회 연임에 성공했던 8명의 전직 대통령(초대 조지 워싱턴, 3대 토마스 제퍼슨, 4대 제임스 메드슨, 5대 제임스 먼로, 7대 앤드류 잭슨, 16대 아브라함 링컨, 18대 율리스 그랜트, 23대 우드로 윌슨 등)의 전례처럼 최대 두번으로 제한하자는 내용이다.

1944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로버트 듀이(Robert E. Dewey)는 헌법개정에 대한 내용을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공론하기 시작한 이유로 대통령의 나이와 건강의 문제를 제시했다. 미국의 헌법에 임기제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대통령은 종신대통령을 꿈꿀 수 있기 때문에 나이로 인한 건강을 문제는 현실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부각될 수 있다. 육체적 제약 뿐 아니라 정신적 판단이 흐려질 수 있고 지병으로 정치에 온전히 몰두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당선된지 82일만에 루스벨트가 서거하자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대한 반대여론이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여론과 양당의 지지 속에서 신속하게 여야공동결의문이 채택되었고, 공동으로 헌법개정안이 제출되었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민국가 중 유일하게 네 번 당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미국의 루스벨트 밖에 없다. 또한 국민이 뽑는 대통령의 장기집권 문제를 여야가 합의를 통해 개혁한 최초의 국가이기도 하다.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루스벨트 대통령과 처칠 총리와 함께 있는 사를 드골 (1943년) [사진=위키피디아]

프랑스의 체제개혁, 우리의 롤모델이 될 수 있나?

두 번째로 체제개혁, 특히 대통령의 권한과 임기, 선출방법 등 포괄적 개혁을 정치인들이 완성한 국가로 프랑스를 들 수 있다. 프랑스의 체제개혁은 미국과 달리 한 사람의 정치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바로 샤를 드골이다. 군장성으로 1차대전에 참전하고 2차대전 때는 런던에서 망명정부를 이끈 드골은 국제지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파리입성 때 승전국들이 군사퍼레이드를 하지 못하도록 막고, 전쟁 후 국제정치의 주도권을 얻기 위해 광폭의 외교력을 발휘해 프랑스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베를린 함락 때 프랑스가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국 중 일원으로 참가할 수 있었던 것도 드골이 스탈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루즈벨트와 처칠을 설득해 가능할 수 있었다. 드골은 프랑스의 현 국제적 위상을 만든 정치인으로 당시 국민들은 100년 전쟁의 영웅인 잔다르크라 칭송했을 정도다.

2차대전 후 권력을 잡았으면서도 의원내각제로는 효율적 통치를 통한 정치안정과 경제발전을 이를 수 없다고 보고, 스스로 권력을 버리고 야인으로 떠나는 그의 결단력은 많은 국민들을 애타게 만들었다. 1958년 알제리 사태로 다시 구원투수로 불러 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총선을 통해 당당하게 다시 정권을 잡은 그는 바로 대통령제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다. 알제리 사태뿐 아니라 인도차이나 사태로 알려진 베트남독립, 내란에 가까운 사회적 소요 등의 문제가 바로 의원내각제 하에서의 권력분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권력이 참여하는 나약한 정권은 갈등을 해결할 수 없고 소모적인 토론만 의회에서 진행한다고 그는 보았다.

1958년 의원내각제 하에서 총리자격으로 대통령제 개혁을 성공시킨 드골은 5공화국 초대 대통령 취임 후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는 국민투표를 추진해 관철시켰다. 이전에는 선거인단을 통한 간선제로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프랑스 5공화국의 헌법요소 중 대표성 강화에 관한 혁신적 규정도 포함되어 있다. 민주주의의 정당성은 국민 과반수의 지지에 있다고 보고 1962년 직선제와 함께 도입된 제도가 바로 결선투표제(run-off vote system)다. 1차투표에서 과반수를 획득한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1차투표 최고득표자 2인의 대결로 2주 후 결선투표를 진행한다는 것이 골자다. 영국이 도입하고 미국이 적용했으며 우리나라도 도입한 소수대표제도의 문제점은 과반수 획득 실패로 인한 통치자의 민주적 정당성의 약화라는 점이다.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7-1832)이 제창한 공리론(Utilitarianism)의 핵심요소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정신을 담아내는 표결절차법의 가장 합리적 제도는 당연히 만장일치제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절대다수제가 그 다음으로 채택될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이다. 이를 위해서 고안된 것이 바로 결선투표제였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국가 중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동시결선투표제(Instant run-off system, 혹은 Alternative voting system)를 도입해 사용하고 있었지만, 대통령제 국가에서 이를 처음으로 도입한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프랑스는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1958년 시작된 5공 초기부터 단 한번도 소수의 대표가 대통령이 될 때 생기는 정당성의 위기를 경험하지 않았다. 그만큼 제도를 새로 만들 때는 보다 민주주의 기본원리에 충실하며, 국민들 다수가 지지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한 창의적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프랑스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어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후보는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명도 없었다. 1차 투표에서 3인 이상이 경쟁할 때 과반수를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때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프랑스의 현대사는 많이 뒤 바뀌었을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1차투표 승리자의 결선투표 패배를 들 수 있다. 1차 투표만 있었다면 대통령이 다른 사람이 되어 정치의 내용과 방향, 그리고 경제발전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1974년 선거에서 1차투표에는 지고 2차투표에서는 이긴 지스카르 데스뎅 대통령은 그 첫번째 주인공이다. 1차투표에서는 사회당의 미테랑 후보가 43퍼센트를 얻어 1위를 차지했고, 지스카르 데스뎅 보수당 후보는 32퍼센트를 획득해 9퍼센트 포인트의 차이로 패배했지만, 2차투표에서는 도리어 지스카르 데스뎅이 0.62퍼센트 포인트 차이로 가까스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1981년 선거에서는 완전 그 반대의 경우다. 1차투표에서 지스카르 데스텡 보수당 후보가 미테랑을 3퍼센트 포인트 차이(28%대 25%)로 이겼지만, 2주 후 진행된 결선투표에서는 역시 3퍼센트 포인트 차이(51%대 48%)로 져 지스카르 데스뎅은 재선에 실패했다. 1-2차 선거의 결과가 뒤집힌 경우는 리오넬 조스팽이라는 사회당 후보도 마찬가지다. 1995년 대통령 선거에서 1차투표에서는 1위를 했지만 2차투표에서 시락에 패배해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렇듯 프랑스 정치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이 제도가 바로 결선투표제다. 결선투표제의 강력한 이점은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인 과반수를 획득한 후보가 승리하기 때문에 승자는 진정으로 국민다수의 지지를 받아 정당성이 확보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결선투표제도 양면성이 있다. 단점으로는 결선투표를 기다리는 2주 기간동안 국민은 지지하는 후보자를 중심으로 국론이 완전히 반반으로 나뉘어진다. 전쟁에서 출전을 준비하는 병사의 결기처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일념으로 상대지지층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너무 갈등의 골이 깊으면 선거가 끝나고도 대립의 연장선상에서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로 2차결선 투표에 참가하지 못하는 1차투표 탈락후보자들이 결선후보 중 한 사람의 공식적 지지선언을 넘어 빅딜을 통해 물밑정치거래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이권거래나 공직약속 등의 부정적 요소들로 인해 정치가 부패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다. 의식이 성숙하지 않은 민주국가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파리 로이터=뉴스핌] 정윤영 인턴기자 = 파리 엘리제 궁(대통령 관저) 전경. 

프랑스 대통령제의 또 다른 특징으로 임기규정을 들 수 있다. 1958년 5공화국 최초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규정했지만, 1962년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에게 7년의 임기를 보장했다. 드골이 안정적인 대통령의 통치를 선호했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시도해 보지 않은 7년 중임제를 도입했다. 1962년 이후 연임에 성공했던 대통령은 미테랑과 시락 두 명 밖에 되지 않는다. 미테랑은 7년 임기를 적용한 기간동안 연임에 성공한 유일한 대통령으로 14년을 통치했지만, 시락은 집권기간 중이었던 2000년 임기를 5년으로 단축시키는 국민투표를 단행해 2번째 집권기간까지 합한 기간은 총 12년에 지나지 않는다. 2000년 개혁에는 5년 중임이상 금지를 명문화시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밖에도 프랑스 대통령제에는 창의적 제도가 많이 내포되어 있다. 예를 들어 2원 집정부제, 즉 대통령은 외교, 안보, 국방을 책임지고, 총리는 나머지 내치를 담당하는 행정수반으로 분리하는 제다. 강력한 대통령제를 선호했기 때문에 의회에 책임을 지는 총리임명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했고, 이와 더불어 법률거부권, 국군통수권, 핵무기사용 최종결정권, 사면권, 불체포특권, 비상사태 선언권, 그리고 국회해산권까지 부여해 막강한 권력이 대통령에 집중되어 있다.

대통령제의 문제점

정치학자들은 대통령제의 문제점으로 무엇을 지적하고 있을까? 그리고 대통령제의 다양한 약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을까?

다양한 연구가 있지만 후안 린츠(Juan J. Linz) 교수의 연구는 제도를 비교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그는 대통령제의 가장 큰 문제로 권력의 개인화(personalization)라 규정했다 (Linz, The Perils of Presidentialism, Journal of Democracy, Vol. 1, No. 1, Winter 1990). 아무리 민주적으로 국민의 손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라도 무소불위의 권력독점을 통해 권위적인 통치행태를 보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권력개인화는 235년의 역사를 지닌 미국 대통령제에서도 최근 들어 부쩍 많이 지적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대통령제의 개인독점화는 심각한 제도적 위험성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한 개인의 임의적 통치권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레빗스키와 지블럿 교수는 연구에서, 대통령제의 개인화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당들의 역할과 능력이 필수라 지적한다. 민족주의, 인기영합주의, 위선정치를 배제한 우파정당의 역할, 그리고 퍼주기식 정책보다 노동시장의 활성과 일자리 창출로 양극화를 줄여 불평등을 제거할 수 있는 진보정당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Levitsky & Ziblatt, How Democracies Die, 2018). 이와 함께 국민의 성숙된 문화, 언론의 자정과 감시능력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고통치권자의 들쑥날쑥한 자의성은 가장 큰 민주주의의 독소로 독점적 지위를 견제하고 통제할 강력한 수단이 없을 경우 속수무책으로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져 경쟁권위주의(competative authoritarianism)로 변질될 수 있다고 그들은 경고하고 있다.

린즈는 대통령제의 또 다른 문제로 제로섬의 정치를 든다.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가져가는 제로섬체제이기 때문에 선거에서 진 쪽은 와신상담하며 다음 선거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이긴 쪽에서는 어떻게든 한 자리를 차지해야한다는 충성구조로, 진 쪽에서는 어떻게든 다시 공천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도부에 맹종하는 형태로 정치의 진영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전쟁터와 같은 정국이 형성된다.

또 제로섬체제의 다른 폐해는 바로 승자독식구조에서 오는 비효율성의 문제다. 승리에 가장 기여를 한 사람에게 자리를 배분하고, 진 쪽의 사람들은 배제하면서 적재적소에 능력있는 사람을 배치하지 못한다. 의원내각제는 연립정권을 통해 다양한 인재들이 정치무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제 하에서는 정치신인이 쉽게 데뷔하지 못해 50대 이상의 남성위주의 정부로 구성되기 쉽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대통령제 단점극복을 위한 최대과제라 할 수 있다.

누가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대통령은 왜 제도개혁에 반대하게 되는걸까? 많은 학자들이 이른 레임덕을 지적한다. 대통령제 개혁을 진행하게 되면 현 대통령은 정치의 중심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다음 대권주자들에게 관심의 무게가 옮겨지는 상황에서 정치의 모든 이슈를 빨아 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생경제와 다른 개혁과제들이 뒷전으로 밀리게 되고 현 정부는 바로 허수아비 정권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다.

정국의 주도권을 쥔 야당이 국회에서 농성이나 거리로 나가 국민을 동원하려고 시도하게 되면 정치는 개헌정국으로 대혼란이 올 수 밖에 없다. 야당이 밀어부치는 상황 속에서 블랙홀처럼 모든 정치이슈를 빨아들이고, 국회농성, 단식, 제2 촛불, 탄핵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고, 미중의 무역전쟁, 자국산업보호, 기후변화와 에너지, 식량, 물, 의약품 전쟁 등 살벌한 국제정세 상황 속에서 우리 정치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연코 아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혜안을 찾아 보아야 한다.

프랑스 대통령제 개혁과정을 참조해 볼만하다.

'Reform yes, chaos no'

1968년 제2의 혁명전야와 같은 상황에서 샤를 드골이 한 말이다. 프랑스어로 "La réforme oui, la chienlit non" 표현되는 문구는 바로 "개혁은 예스, 혼란은 노"로 해석된다.

프랑스 정치체제를 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그리고 간선제에서 다시 직선제로 개혁한 것은 드골이라는 정치인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다. 드골은 1958년 1월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에 오르자마자 대통령 직선제 개혁을 위해 헌법개혁위원회를 구성해 국민투표에 붙여 승리했다. 직선제와 함께 7년 중임제, 2원집정부제의 프랑스식 대통령제를 완성했다.

효율적 통치를 위해 지역대표와 직능대표를 혼합하는 상원의 기능을 축소해 하원에게 온전한 법제정권을 넘겨주고, 지방의회의 독립적 기능의 강화를 담은 개혁을 시도하기 위해 국민투표에 붙였다가 52.4퍼센트의 국민이 반대한 결과를 받아들여 그 다음날 정오 대통령궁에서 이임사와 함께 프랑스 정치를 떠났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거물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말 "개혁은 예스, 혼란은 노"는 여전히 프랑스의 명언으로 국민들에게 회자되고 있고, 학교에서도 가르치는 국민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고양이 방울, 바로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6월 새 국회가 구성되면 바로 전쟁터와 같은 정국이 전개될 것은 자명하다. 10년 후 반도체 점유율이 미국, 대만에 이어 3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밀어 붙이기식 의대정원 증원 정책으로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는 5퍼센트 밖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2024년 출산율 0.6명대 진입, 잠재성장율은 2.0퍼센트라고 OECD가 발표했다. 총체적 난국상황이다.

어두운 대내외적 상황 속에서 특검, 탄핵요구로 이어지는 정치혼란을 끝낼 사람은 바로 대통령이다. 3년 후 정권에서 물러서며 "그래도 잘했다"라는 격려를 받으며 용산 대통령실을 나올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드골의 뚝심있는 정치적 스타일은 현 대통령과 놀라우리만큼 비슷하다.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읽어내 본질적 체제개혁을 주도하며 대한민국의 미래 정치문화 뿐 아니라, 경제체질, 국민대립문화, 정책수립 과정과 절차까지 바꿀 수 있는 절체절명의 마지막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최연혁 교수. 2024.01.15 mironj19@newspim.com

*필자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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