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대대적 쇄신을 예고하고 있다. 오는 28일 개최될 그룹 차원의 경영전략회의는 그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미 SK그룹 차원의 사업 재조정(리밸런싱)이 진행되며 계열사 간 합병 및 지분 매각 등과 같은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쇄신, SK] 3회 기획을 통해 SK그룹의 내부 변화와 변화의 방향성, 이것을 바라보는 그룹 주변의 시각 등을 짚어본다.
[서울=뉴스핌] 김지나 기자 =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최재원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등 최태원 SK그룹 회장 친인척들이 그룹 쇄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총수 친인척이 경영 전면에 부각됐다는 점은 그동안 SK그룹이 강조해 온 이사회 중심 경영과는 거리감 있다. 다른 의미로는 SK그룹이 오너가(家) 경영진을 통해 총수 리더십을 강화할 만큼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의 사업 리밸런싱(재조정)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지난해 12월 인사를 통해 SK수펙스추구협의회(이하 수펙스) 의장으로 올라선 최창원 의장이다.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 의장은 그동안 SK그룹과는 별개로 SK디스커버리를 이끌며 사실상 계열분리가 된 경영활동을 해 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김학선 기자] |
SK그룹 거버넌스의 두 가지 축은 이사회와 수펙스다. 2003년 투기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SK그룹 경영권을 장악하려고 시도한 '소버린 사태'를 겪은 SK그룹은 오너 경영을 끝내고 이사회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거버넌스를 바꿨다. 이후 2004년에는 사외이사 비중을 70%까지 늘리는 등 이사회 중심 경영에 힘을 기울였다.
2013년엔 그룹사 자율경영을 위한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도입했다. 이것을 통해 그룹사 최고경영자(CEO) 및 이사회의 독립 의사 결정 체계를 공고히 하고 수펙스 중심으로 그룹 내 주요 경영 현안과 그룹사 간 협력 및 조율이 필요한 일을 전략적으로 지원했다.
현재 수펙스는 전략·글로벌위원회, 거버넌스위원회, 환경사업위원회, ICT위원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인재육성위원회, SV(Social Value)위원회 등 총 7개 위원회로 구성돼 있는데, 최창원 의장이 7개 위원회를 총괄로 이끌며 사업 리밸런싱에 총대를 메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최 의장이 SK그룹을 변화시킬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최태원 회장의 친동생 최재원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SK그룹의 가장 핵심이 되는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 10일 SK이노베이션은 최재원 신임 수석부회장으로 선임했다. SK온 대표이사 수석부회장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이 SK E&S와 합병할 것이란 소식도 전해졌다.
양 사가 합병할 경우 자산 100조가 넘는 초대형 에너지 전문기업이 탄생하게 되는데, 업계에선 최 수석부회장이 등기이사 선임을 거쳐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 수석부회장의 SK이노베이션 이동이 중요한 이유는 SK그룹 위기의 근원이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온에 있는 만큼 향후 SK온에 대한 계열사 자금지원 및 위기대응 등이 그룹 전체 사업 리밸런싱 승패를 좌우할 핵심 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계열사를 정리하고 대규모 투자를 한다거나 사업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데는 오너의 결단이 필요하다"면서 "SK그룹의 주 수익원인 석유화학 부분에서 큰 변화가 있고 불확실성이 커졌는데, SK그룹이 더 부실화되기 전에 과감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오너가가 나서는 것은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오너가에서 경영 전면에 나선다는 것은 전문성이나 역량을 기반하기보단 오너 후광을 통해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잘 되면 쭉 갈 수 있지만 잘 되지 못했을 땐 오너리스크로 다가올 수 있다"면서 "다른 의미로는 경영 전면에 나선 오너가의 경영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SK서린사옥 전경. [사진=SK] |
이 같은 변화 속 SK 내부적으로는 28일 경영전략회의를 기점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전날 박성하 SK스퀘어 사장이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은 구조조정의 신호탄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SK스퀘어는 이사회 내 인사보상위원회를 열어 새 대표이사를 추천하는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의 신뢰를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진 박 사장은 지난해 3월 박정호 부회장 후임으로 SK스퀘어 대표로 선임됐다. 하지만, 최근 11번가 콜옵션 포기 등 투자 실패와 맞물려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달 초 박경일 SK에코플랜트 대표이사도 임기를 채우기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고, 성민석 SK온 부사장도 최고사업책임자(CCO) 직에서 보직 해임됐다.
SK그룹의 한 내부 관계자는 "박정호 부회장 지근거리 인사들이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란 소문도 있고 분위기가 좋지 않다"라면서 "이번 주 전략회의에서 뭔가 발표가 있을 것이란 관측 때문에 긴장감이 더 높아져 있다"라고 전했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지금까지 촤창원 의장은 SK그룹과는 분리돼 있었고, 최재원 부회장도 SK온을 빼면 전면에 나서지 않았는데 그들이 전면에 나섰다는 것은 오너의 리더십 확보 차원이 클 것"이라며 "전문경영인이 칼을 휘두르다 보면 잡음이 많고 속도가 떨어지는 데 반해 오너가 전면에 나서면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도 쉽고 더 속도감 있게 구조조정을 밀고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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