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러시아 의회가 30일(현지 시간) 국제 거래에서 가상화폐가 통용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 법안은 오는 9월 발효될 전망이다.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 가하고 있는 각종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미국 CNBC 방송은 분석했다.
비트코인 이미지 [사진=로이터 뉴스핌] |
외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 하원 두마는 이날 기업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를 할 때 가상화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나톨리 악사코프 두마 의장은 "우리는 지금 금융 분야에서 역사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새 법에 따라 러시아 중앙은행은 암호화폐 거래를 위한 인프라 구축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암호화폐를 이용한 첫 거래가 올해 말 이전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몇 년 동안 러시아 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해 견지해왔던 입장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2022년 1월 금융 안전과 시민 복지, 통화 정책 주권에 대한 위협 등을 언급하면서 국제 거래에서 암호화폐는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디지털 통화 채굴도 금지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이 러시아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 절실해졌다. 미국과 유럽 등은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퇴출시켰다. 이후 러시아는 중국, 인도,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무역 파트너와의 국제 결제가 일부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고통을 겪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결제 지연 탓에) 올해 2분기 수입이 8%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투자 컨설팅 업체인 퀀텀이코노믹스의 설립자 마티 그린스펀은 "러시아가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는 것은 비트코인을 활용한 거래가 어떤 정부나 은행도 검열하거나 차단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역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러시아가 암호화폐를 수용하기로 한 것은 완전히 타당하다"며 "암호화폐는 러시아가 미국의 제재 때문에 다른 나라 또는 해외 기업과의 거래가 막힐 경우 이를 돌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러시아 금융 당국은 내년 7월부터 러시아 법정 화폐인 루블의 디지털 버전도 대량 유통될 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정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 루블은 중앙은행이 관여하지 않는 기존 암호화폐와 달리 국가가 직접 발행·관리하는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이다.
ihjang6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