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우유 원유 가격을 놓고 협상을 벌이던 낙농업계와 유업계가 올해 가격을 올리지 않기로 합의했다.
4년 만의 우유 원윳값 동결로 소비자들은 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 우려를 덜게 됐지만 유업체들의 불안감은 크다. 우유 시장은 쪼그라들고 수입산 멸균우유의 공습으로 위기감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낙농가와 유업계로 구성된 낙농진흥회 소위원회는 지난달 30일 협상을 통해 흰 우유를 뜻하는 음용유 원유의 기본 가격을 1리터(L)당 1084원으로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치즈, 탈지분유, 아이스크림, 연유 제조 목적의 가공유는 이달부터 L당 882원으로 기존 L당 887원에서 5원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우유 원유 가격이 동결되면서 우유 가격 상승이 다른 먹거리 가격을 밀어 올리는 이른바 '밀크플레이션' 우려는 일부 해소됐다. 최근 들어 매년 하반기쯤 단행된 흰 우유의 소비자 가격 인상도 올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사진=뉴스핌DB] |
그런데 우유 원윳값 동결에도 유업체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저출산 여파와 수입산 멸균우유 공습으로 국산 우유의 설 자리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우유 원윳값 협상과 함께 진행된 원유 구매량 협상에서는 유업체들의 음용유 구매량을 9000톤(t) 줄이는 대신 가공유는 9000t 늘리기로 했다. 변경된 구매량은 내년 1월부터 2년간 적용된다.
유업체들은 전반적인 우유 수요 감소에도 유업체들이 필수 구매해야하는 원유의 양이 여전히 높다고 말한다. 지난해 기준 유업계가 구매한 음용유 양은 195만t, 가공유 구매량은 10만t 수준이다. 그런데 유업계가 지난해 사용한 음용유는 169만t으로 약 26만t이 잉여분으로 남았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통해 '가공유용 원유'를 별도 분리해 비교적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했지만 유업계 내부에서는 남는 음용유로 가공유용 치즈, 아이스크림, 탈지분유를 만들고도 남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음용유 구매량을 9000t 감축한 것이 큰 의미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전언이다.
유업계는 수년째 남아도는 우유 원유 처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남는 우유 원유는 궁여지책으로 저렴한 가격에 유통사 PB우유로 납품하거나 유통기한이 긴 분유 또는 멸균우유로 전환해 보존한다. 다만 분유의 경우 저출산 여파로 시장이 축소돼 재고 문제가 적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발효유, 커피음료, 단백질음료 등 업체별로 자구책을 찾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멸균유 수입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멸균유 수입량은 3만7400t으로 2018년 4300t과 비교해 8.7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집계된다. 또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026년부터 수입 유제품에 무관세(관세율 0%)가 적용될 예정이어서 국산 우유의 위기감이 심화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유 소비는 줄었는데 원유 생산·구매량은 여전히 높다"며 "PB우유나 분유 등으로 처리하고도 잉여분이 남는 상황이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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