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
주요뉴스 오피니언

[기자수첩] 우리금융 부당대출 공방단계인데···이복현의 과도한 공세

기사등록 : 2024-08-26 11:20

※ 뉴스 공유하기

URL 복사완료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수사기관 이첩 저울질 또는 사건 막 배당 단계인데 범죄인 처럼 몰아
"심사소홀 외에 뚜렷한 불법행위 발견되지 않아, 금감원 보고대상 아냐"

[서울=뉴스핌] 송주원 기자 = "우리금융이 보이는 행태를 볼 때 더는 신뢰하기 힘든 수준이다."

"법상 할 수 있는 권한들을 최대한 가동해서 검사 제재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대상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감독 당국에 제때 보고가 안 된 것들은 명확하므로 누군가는 책임져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터진 우리은행의 '부당대출' 금융사고를 놓고 한 말이다. 첫 발언은 지난 20일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나왔고, 두 번째 발언은 25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한 말이다.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금융사고에 대한 비판은 응당 할 만 하지만 어휘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금감원장은 물론 주요 기관장 발언치고는 이례적이고 강한 어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송주원 금융증권부 기자

금감원은 지난 11일 우리은행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친인척 관련 법인이나 개인사업자에게 최근 4년간 616억원 상당을 대출한 것으로 검사 결과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350억원은 통상의 기준·절차를 따지지 않은 부적정 대출이고, 269억원에 대해서는 부실이 발생했거나 연체 중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에서는 최근 본점 기업개선부 차장급 지원의 707억원 규모 횡령, 김해지점 대리급 직원의 180억원 상당 횡령 등 금융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우리은행으로서는 금융당국 지적은 물론 금융권 안팎의 비판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이 원장의 최근 발언을 '사이다'로만 받아들일 수 없다. 금감원장이라는 자리는 금융권 관리감독과 함께 금융시장 안정과 보호를 꾀해야 하는 자리다. 특정 그룹, 그것도 신뢰가 생명인 금융그룹을 한 곳을 겨냥해 금융당국 수장이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여러모로 섣부르다.

아직 이 사고에 대해 보고 체계부터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다투고 있다는 점에서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올해 1월 내부검사에서 발견한 부당대출 정황을 금감원에 바로 보고하지 않고 4개월 동안 지연했다며 제재를 검토 중이다.

이에 우리은행은 사고 발견 당시 여신심사 소홀 외에 뚜렷한 불법 혐의가 없어 보고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 67조의 심사소홀 등으로 취급여신이 부실화된 경우 금융사고로 보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일반적인 부실대출이라면 우리은행 측 주장이 합리적이지만, 전 회장과 연결된 위법 혐의점이라 즉시 보고를 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설령 우리금융 보고에 고의적인 잘못이 있었다 한들 이 원장 표현대로 '대상이 누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말 그대로 사실 공방 단계다.

대출을 둘러싼 사법 처리도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 않았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 발표 당시 차주와 관련인의 허위 문서위조·사기 혐의 등으로 수사기관에 통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근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확인이 어렵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9일 부실여신 취급 관련인에 대해 사문서위조와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아직 수사기관 이첩 저울질 내지 사건이 막 배당된 단계에 불과하다.

본격적으로 사법 절차를 밟더라도 무죄추정원칙이라는 형사법 대원칙을 고려하면 금융당국 수장의 발언은 판결 선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수사기관 결론이 나올 때까지는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법원을 출입하던 시절, 법조 3륜의 한 축으로서 '이복현 검사'가 법정 검사석에 형형하게 앉아있던 모습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염려되는 건 우리은행 일선 직원들의 피해다. 전술했듯 신뢰가 경쟁력이자 생명인 금융사가 금융당국 수장으로부터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비판을 받았으니 평판과 영업에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은행은 신입사원을 영업점 채널에 배정한다. 은행권의 영업 압박은 오늘 내일 문제가 아니다. 결국 피해는 이번 금융사고 책임과 한참 떨어진 새내기 행원들이 받게 되리라는 점에서 이 원장의 발언은 섣부른 불발탄이다.

금감원은 '심한 말' 없이 금융권을 감시할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KB금융그룹·KB국민은행 종합검사에 들어갔다. 더 엄격하고 꼼꼼한 검사를 통한 금융사고를 예방해야 할 것이다. 우리은행과의 공방은 물론 최근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를 계기삼아 금융사 보고 체계를 다듬는 것도 고려할 시점이다. 사고가 발생한 우리금융 역시 최근 임종룡 회장이 긴급회의에서 밝힌 대로 '절박한 심정으로'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금융사 등 기업을 '법인'(法人)이라고 부른다. 기업 역시 일반적인 사람과 마찬가지로 법률상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다. 왜 기업을 사람으로 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업은 으리으리한 사옥이 아닌 저마다 사정을 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그 자체여서가 아닐까. 이번 사고에 대한 이 원장의 강한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고, 명료한 후속 처리 역시 기대되지만 금융당국 수장이라는 자리의 무게감과 일선 직원들이 받을 영향을 더 고려해 주길 바란다.

jane94@newspim.com

<저작권자© 글로벌리더의 지름길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Newspim),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