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항소심 재판이 11일 시작됐다. 검찰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단에 사실오인과 법리오해가 있다고 주장했고, 변호인은 검찰의 주장이 원심의 판단을 뒤집기 부족하다며 항소를 기각해달라고 했다.
서울고법 형사14-1부(박혜선 오영상 임종효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항소심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국민의 기본권인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책무를 받은 사법행정권의 최고 책임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며 "원심은 피고인들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음에도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는데 이러한 판결에는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며 항소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측은 "검찰이 진술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원심에서 장기간에 걸친 심리가 이뤄졌다. 검찰은 원심의 무죄 판단이 왜 부당하고 위법한 것인지에 대해 별다른 주장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상태에서 검찰의 주장은 원심의 판단을 뒤집기 어려워 보인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서울=뉴스핌] 이호형 기자 = '사법농단 의혹'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4.09.11 leemario@newspim.com |
박병대 전 대법관 측은 "검찰이 제출한 항소이유서를 보고 울분을 다스리기가 어려웠다"며 "항소이유서에 '원심이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오로지 피고인들을 위한 재판을 진행했다', '제식구 감싸기', '우리 대법원장님·처장님 구하기에 급급했다', '온정주의·조직이기주의에 따라 재판을 진행했다' 등의 표현이 적혔는데 외국 같으면 이는 법정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고영한 전 대법관 측도 "사법부의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은 법원에게 부여된 헌법적인 사명"이라며 "검찰은 이를 왜곡해 피고인들이 직권남용의 목적과 계획을 세웠다고 공소사실을 적시했는데 이는 비현실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 기인한 프레임이다"며 유죄의 근거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사법농단' 의혹의 실무 책임자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과 이 사건 재판을 병합해서 심리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항소를 제기했다.
검찰은 "본 재판과 임종헌 재판은 공소사실의 약 60%가 공통되고 임종헌은 피고인들과 공범관계에 있다"며 "사실심 단계에서 두 사건을 병합해 사실관계와 법리를 통일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영한 전 대법관 측은 "1심에서도 이미 동일한 취지의 병합신청이 있었으나 당시 재판부는 분리해서 진행하는 것이 절차 진행과 실체적 진실 발견 측면에서 더 좋다고 판단했다"며 "이미 1심에서 재판이 분리 진행되면서 증거목록 등도 다른 상황인데 이제와서 사건을 병합하면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고 소송 지연도 예상된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재판부는 두 사건의 병합 여부에 대해 별도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공판은 오는 10월 23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011~2017년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과 공모해 박근혜 정부와 일종의 '재판거래'를 하고 일선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등 총 47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일부 재판개입을 인정하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공모하거나 지시·가담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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