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을 위해 미국과 직접 대화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취임 후 첫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미국에 적대적이지 않다. 우리는 미국인들과도 형제"라며 그같이 말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반미(反美) 성향을 가진 이란의 대통령이 미국을 형제라고 부른 건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날 핵합의 복원을 위해 미국과의 직접 대화에 응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이 이란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다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실제로 선의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 대한 적대 정책을 끝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는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압력에 굴복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국영 뉴스통신 IRNA는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이란의 대외 관계 개선과 경제난 해결 방안으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가입과 핵합의 복원을 꼽았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지난 7월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당선으로 서방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출신 아버지와 쿠르드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란 사회 '비주류' 출신의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 안팎의 예상을 뒤엎고 강경 보수 성향의 사이드 잘릴리 전 핵 협상 대표를 큰 차이로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대선 때 서방과 협상으로 제재를 풀어내 경제난을 해결하겠다고 공약했고, 핵 협상 타결의 주역 중 한 명인 압바스 아락치를 외무장관으로 임명했다.
이란핵합의는 지난 2015년 유엔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과 독일 등 6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체결됐다.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일부 동결하거나 축소하는 대가로 서방 국가들이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뒤 일방적으로 합의 폐기를 선언했다.
이후 이란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가 본격화되고,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면서 양측간 대화와 타협은 중단된 상태였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란은 최근 3년 이상 우라늄을 무기급에 가까운 순도 60%까지 농축해 왔다"고 말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우리는 제재를 받기를 원하지 않으며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다"면서 "(미국은) 우리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음모를 꾸미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란은 미국 및 유럽과의 합의에 전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향후 러시아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란이 서방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러시아가 결정적인 지원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이란의 탄도미사일 제공을 비난한 데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취임한 이후 러시아에 대한 탄도 미사일 지원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일부 군사 교류가 있었을 수 있고, 그런 일에 아무런 장애물은 없었다"고 했다.
외신들은 "페제시키안이 합의에 대해 얘기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새로운 핵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서방 외교관들은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