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지난 2020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배터리 회동' 후 양 사 간 협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과거 관계가 소원했던 삼성과 현대차를 비롯한 4대 그룹은 전장 사업이 핵심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면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적극적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 사석에서 '호형호제'하며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그룹 총수들이 활발하게 협력 모델을 제시하면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뉴스핌DB] |
◆삼성 '스마트싱스(SmartThings)' 기술, 현대차·기아·포티투닷 개발 시스템에 연동
2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은 이날 삼성의 IoT(사물인터넷) 플랫폼 '스마트싱스(SmartThings)' 기술을 현대차·기아·포티투닷이 개발 중인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연동하기 위한 '기술 제휴 및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글로벌 위치 확인 솔루션인 '스마트싱스 파인드(SmartThings Find)' 기술을 활용해 통신망 연결 없이 차량과 스마트키 위치를 확인하는 기능이 대표적이다. 주차 장소를 깜빡 잊었거나 예기치 못한 차량 도난 사고가 발생해도 위치 파악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올 초 '스마트싱스'를 현대차의 커넥티드 카로 확대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스마트싱스를 통해 집에서 차량에 시동을 걸거나 에어컨 전원, 전기차(EV) 충전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차에서는 집 안의 TV, 에어컨 등 가전과 전기차 충전기를 제어할 수 있는 서비스다. 삼성전자의 자회사 하만도 여기에 참여, 다양한 '카투홈'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협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첫 협력을 시작하기로 했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는 차량 상태나 길 안내와 같은 운행 관련 정보뿐만 아니라 사용자를 위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함께 제공하는 서비스다.
삼성전자는 내년까지 현대차에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IVI, In-Vehicle Infotainment)용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오토(Exynos Auto) V920'을 공급한다. '엑시노스 오토 V920'은 운전자에게 실시간 운행정보는 물론 고화질의 멀티미디어 재생, 고사양 게임 구동과 같이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지원해 최적의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한다.
삼성전자는 AI 기술 기반의 다양한 스마트싱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현대차·기아와 지속적으로 협력키로 했다. 전경훈 삼성전자 사장은 "현대차와 협력으로 집을 넘어 차량에서도 '스마트싱스'로 공간을 뛰어넘는 편리한 일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창현 현대차·기아 사장은 "삼성전자와의 협력으로 차량과 스마트폰의 연결성을 강화하고 이동수단 이상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 많은 기대가 된다"고 전했다.
또 삼성SDI가 생산하는 배터리는 2032년까지 7년 동안 현대차가 유럽에서 만드는 전기차에 장착되도록 지난해 계약을 맺었다. 전기차 50만대분, 금액으로 환산하면 7조~8조원 규모다. 삼성과 현대차의 첫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이다.
삼성전자 서울R&D캠퍼스에서 열린 업무 협약식에서 송창현 현대차∙기아 AVP본부 사장과 전경훈 삼성전자 DX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삼성리서치장 사장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으르렁' 대던 적군에서 '든든한' 아군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협력은 지난 2020년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회장의 '배터리 회동'이 시작이다. 이 후 지난해부터 배터리, 전장을 중심으로 협력 사업이 구체화되고 있다.
과거 완성차 사업을 벌였던 삼성은 당시 현대차와 경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었고 서로 거리를 두는 기간도 길었다. 삼성이 완성차 사업에서 철수한 뒤에도 삼성이 언제든 다시 완성차 사업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협력의 여지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이 완성차 사업에 완전히 손을 떼고 전장 사업을 미래 먹거리 분야로 집중 육성하면서 현대차와 자연스럽게 손을 잡기 시작했다. 이 같은 협력 관계는 4대 그룹이 모두 전장 사업에 힘을 주기 시작하면서 SK, LG그룹도 함께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에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와 LG이노텍의 전장 부품이 탑재되고 있고, 현대차는 SK온과 미국에 전기차 배터리셀 합작공장을 세우고 있다.
단순히 비즈니스적인 성격 뿐만 아니라 예전과 다르게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총수들의 관계가 활발한 협력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과거 선대 회장 시절에는 한정적인 국내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면, 세계 시장을 무대로 생존이 걸린 전투에 나서면서 협력할 여지가 늘었다. 사석에서는 '호형호제'하는 막역한 사이인 만큼 각 그룹의 강점을 살린 협력 모델을 제시하기가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의 세대 교체와 함께 각 그룹별로 주력하는 사업이 구분되면서 협력할 수 있는 모델이 많아졌다"며 "과거 최고 경영진들이 만나면 '담합' 문제를 우려했으나 지금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면서 더 다양한 분야의 협력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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