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송주원 기자 = 은행권이 가계대출 증가세가 괄목할 만큼 잡히지 않자 대출모집인을 통한 대출 접수를 중단하고 나섰다. 가계부채 안정화를 위한 한시적 조치라는 것이 은행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대출모집 업계에서는 계약을 맺은 은행의 절대적인 관리 아래 영업을 이어오던 중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돼 업무가 전면 중단됐다며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주은영 한국 대출성상품 금융상품판매대리 중개업협회장은 26일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상담사(대출모집인)는 은행이 정해준 규정 아래 소비자들의 편익을 위해서 헬퍼 역할을 했을 뿐 대출을 부추길 수 없는 위치에 있다"며 "애초 한도 관리 등 대출 관리를 효율적으로 해왔다면 가계대출 급증과 같은 이슈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가장 쉽게 차단할 수 있는 쪽을 선택한 것 같아 유감스럽다"라고 밝혔다.
주은영 한국 대출성상품 금융상품판매대리 중개업협회장은[서울=뉴스핌] 한기진 기자 = 2024.09.26 hkj77@hanmail.net |
대출모집인 제도란 대출성상품 판매대리‧중개업자(모집인)는 금융회사와 대출성상품 모집에 대한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금융상품 신청 상담, 신청서 접수 및 전달 등 금융회사가 위탁한 업무를 수행하는 모집인과 모집법인을 말한다. 모집인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교육 이수, 평가 등을 통해 등록요건을 갖춰 각 업권별 금융업 협회에 등록해야 하며, 계약을 맺은 은행의 대출 신청상담과 신청서 접수, 전달 등 은행이 위탁한 업무를 수행한다.
지난달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신규 취급한 주담대 잔액 중 약 50%가 대출 모집인을 통해 이뤄졌다. 이들 은행의 8월 신규 전세자금 대출, 정책대출, 집단대출 포함 전체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3조135억원으로, 그중 11조4942억원(49.9%)이 대출 모집인을 거쳤다. 올해 1~8월 대출 모집인을 통한 신규 주담대 건수는 월평균 4만5049건으로, 전년 동기 평균 3만334건보다 50% 가까이 뛰었다.
이에 신한은행은 27일부터 대출모집인을 통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전세자금대출 ▲집단잔금대출의 대출모집인 접수를 한시적으로 중단한다. 신한은행은 지난 10일부터 수도권에서 모집인 대출을 막은 바 있는데, 대출 제한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한 것이다.
우리은행도 다음 달 중순부터 연말까지 전국에서 대출모집인을 통한 주담대와 전세대출, 입주자금대출 등을 중단하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이달 2일부터 대출모집법인 관리를 강화했다. 우리은행과 거래하는 대출모집법인 3개사의 월별 대출 취급 한도를 부여해 관리 중이다.
NH농협은행은 거래 중인 대출모집법인의 이달과 다음 달 월별 대출 한도가 소진돼 다음 달 말까지 대출모집인을 통한 대출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 같은 행보는 은행권이 주담대 영업을 대출모집법인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이에 따라 대출도 급증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싹'을 잘라버린 것으로 풀이된다.
대출모집 업계에서는 대출모집인을 가계대출 주범으로 모는 건 과한 해석이라는 입장이다. 은행의 대출 관리 실패 책임을 계약 은행의 감시·감독 아래 건전하게 영업하고 있던 대출모집인에 지우는 형국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은행권은 대출모집인 관리에 자신을 드러냈다. 정재호 은행연합회 준법지원부장은 지난 23일 '대출모집인 제도 발전 방향' 세미나에서 "현행 제도상 은행권에서 대출모집인의 주된 역할은 한정된 은행창구 인력을 대신해 대출 일정 및 금리와 한도를 상담해 주고 대출서류를 징구해 은행에 전달하는 보조자 내지 대행자로, 모집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 등 법규 위반이 발생하기 않도록 상담사에 대한 관리·감독에 매우 중요하다"며 "현재 시중은행은 직접 감사와 점검을 실시하고 상담사 교육자료를 수시로 제공하는 등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은행들이 대출모집인을 통한 대출 접수를 3개월에서 무기한 중단함에 따라 업계에는 큰 파장이 예상된다. 대출모집법인은 소속 모집인의 대출 중개에 따른 수수료가 주 수입원인데 주요 시중은행에서 업무가 중단되면서 수익에 큰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법인 소속 일선 상담사들의 피해도 극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 협회장은 "대형 법인은 그동안 불려둔 몸집으로 그럭저럭 버티겠지만 소규모 법인에게는 치명적"이라며 "상담사들은 중개한 대출 건수에 따라 소속 대출모집법인을 거쳐 그 급여를 받는데, 대출을 중개할 수 없으니 생계가 끊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26일 기준 은행권과 계약을 맺은 대출모집법인은 42곳이다. 이 가운데 중·소형법인이 29곳으로 그 비중이 70%에 달한다. 은행권에서 일하고 있는 상담사들은 3700여 명 수준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과 금융권의 대출 책임 '폭탄 돌리기'에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대출 실수요자와 같은 금융소비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업계에서도 주요 먹거리를 잃었지만 대출 실수요자 입장에서도 대출받을 창구 절반이 없어지는 셈이라 금융당국에서 우려하는 '풍선효과' 가능성도 제기된다.
주 협회장은 "대출모집인의 채널을 닫는 건 (가계대출 이슈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금까지 100개의 대출 창구가 있었다면 이제 50개로 줄어들면서 은행 업무가 과중되고, 이에 불편을 겪는 소비자들이 2금융권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도 점쳐진다"며 "업무 환경이 불안정해지니 양질의 상담사가 업계를 떠날 것이고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들이 받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지난달까지 폭주하던 가계대출 증가세는 이달 들어 소폭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19일 기준 728조869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725조3642억원)과 비교해 2조7227억원 늘었다. 가계 빚 증가세 자체는 계속되고 있지만 증가 폭은 확연히 둔화한 흐름이다. 지난달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한 달 새 9조6259억원 급증했다. 2016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대치였다. 이달 증가액이 4조5000억원 안팎에 머문다면 8월의 절반 이하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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