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송은정 기자 = "요즘 조용하다. 경기가 안 좋아서 오픈하시는 분들 안 계시니까 저희 쪽에도 이제 물건도 안 나가고 폐업하시는 분들도 많다. 아무래도 시장이 확실히 죽었다"
지난 6일 방문한 황학동 가구거리가 한산하다. [사진=송은정 기자] |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거리의 한 주방기기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 A씨의 얘기다.
경기 침체로 많은 자영업자들이 폐업에 내몰리면서 최근 황학동 주방 거리가 몰락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6일 오후 2시쯤 방문한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거리 일대는 한산했다. 가게 앞 진열된 물건을 보러 온 손님은 없고 가게를 지키고 있는 상인들만 눈에 띄었다.
A씨는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든 상황이다. 코로나 때는 그래도 식당에서 밥을 못 먹으니, 배달 음식이라도 시키니까 배달 업종이라도 하려고 가게를 차리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예 장사가 안 되니까 배달도 안 되고 식당에서 안 찾아가 버리니까 물건이 아예 안 나간다. 그때는 그래도 배달하시는 분들이라도 물건을 사갔다"고 했다.
이날 찾은 황학동 주방·가구거리는 가게 앞에 쌓인 그릇, 싱크대, 가스레인지 등 중고 주방용품들로 가득했다. 좁은 골목에 자리한 주방집기 가게에서는 주인이 흰 비닐에 포장된 중고제품들 사이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거리에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은 없었다.
24년째 장사하고 있는 그릇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 B씨는 "코로나 때는 그나마 사람이 다녔는데 지금은 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라며 "경제가 안 좋다 보니까 새로 오픈하는 데도 없고, 있는 가게도 접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희 같은 경우 (가게를) 오픈 해야 그릇, 글라스 등 주방 용품들이 나가는데, 오픈하는 데가 없으니까 물건들이 들어가지 않는다. 주변에는 폐업하는 가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황학동 주방 거리는 중고 주방용품 및 가구를 판매하는 상점이 밀집한 거리다. 전국 최대 규모 주방 시장으로서 '서울의 부엌'이라고도 불린다.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 거리에는 200m 길이의 언덕길 양쪽으로 주방용품 가게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이들 가게는 식당 창업을 위해 필요한 모든 물건을 파는 곳이자 폐업 후 손 때 묻은 중고설비가 모여드는 종착지로, 1980년대 거리가 형성된 후로 약 40년간 식당 등에서 쓰던 주방용품과 가구가 이곳에서 나와 거래됐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폐업은 늘고, 신규 창업은 줄면서 중고물품만 계속 쌓여가고 있다.
문을 닫는 가게도 하나둘 늘고 있다. 곳곳에는 공실이 보였고 '임대'를 붙인 곳도 여럿 있었다. 내수 침체 여파로 자영업자 폐업은 늘고 있는데 창업을 하려는 이는 줄면서 손님이 끊겼기 때문이다. 내수 침체 직격탄을 맞은 건 자영업자로, 불황을 견디다 못해 폐업을 결정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가업을 물려 받아 가구 매장을 운영하는 C씨는 "황학동도 임대가 많이 붙어 있고 실제로 저희랑 같이 시작하신 분들 중에 폐업하신 분들도 많고, 특히 가구점이 폐업하는 분들이 많다"라며 "황학동은 주방이 더 오래됐다. 오랜 기간 동안 자리 잡고 장사를 했으니 지금 힘들고 조금 버티다 보면 또 좋아지겠지라는 그 생각에 버틸 수 있는 것이지만, 새로 창업해서 가게를 운영하시는 분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황학동은 인터넷 세대들이 찾지 않는 공간이 돼버렸다. 특히 가구는 인터넷 세대가 찾지 않는 공간이 되어 버리다 보니까. 그리고 가게를 찾는 분들이 가격까지 다 알고 계시니까 단가가 저희랑은 또 안 맞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인터넷은 사실 오프라인 매장이 없으니까 가격이 저렴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 직접 제품을 만져보게 하고 체험하는 공간이 있으니까 사실 좀 더 제품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가구 쪽은 상황이 조금 많이 안 좋아졌다. 특히 올해 봄부터 더 힘들어진 것 같다. 저희 매장 같은 경우 사실 온라인, 오프라인 둘 다 매출이 완전히 쪼그라들었다"라며 "저희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서 이것이 가구 업계가 불황이어서 그런 건지, 주방 가구 거리가 평판이 안 좋아져서 그런 건지 복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쪽에는 분명 창업하시는 분들이 적다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 우려에 내년과 내후년 경제 성장률을 1%대로 낮추면서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은은 지난달 28일 경제전망을 통해 2025년과 2026년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각각 1.9%, 1.8%로 전망했다. 한은이 경제성장률에 대해 한국의 잠재성장률(2.0%)을 밑도는 1%대 전망치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54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돈 것은 1956년(0.6), 1980년(-1.6), 1998년(-5.1), 2009년(0.8), 2020년(-0.7), 2023년(1.4) 등 6차례뿐이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지난 8월 내놓은 전망치 2.4%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거리 [사진=송은정 기자] |
한국은행이 내년 성장률 1%대 저성장 쇼크를 예고한 가운데 자영업자들의 줄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2년 이상 지속된 고금리, 고유가, 고환율 등 삼중고로 내수시장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은 데다 매출 감소에 따른 은행 빚이 금융비용 부담으로 이어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내수 침체 장기화에 따라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폐업한 사업자가 100만명에 육박하고 폐업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실업자가 된 자영업자도 1년 새 20%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장기화에 내수 부진까지 겹치며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국세청 국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을 접고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개인, 법인)는 98만648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86만7292명)보다 13.7% 증가한 것으로 2006년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다.
폐업 사유는 '사업 부진'(48만2183만 명)이 가장 많았다. 2007년(48만8792명) 이후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업종별로 보면 소매업 폐업이 27만6535명으로 가장 많았다. 서비스업(21만7821명), 음식업(15만8279명) 등 내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업종의 타격이 컸다.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 역시 역대 최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8월 기준 자영업자 수는 563만6000명으로 전체 취업자(2854만4000명)의 19.7%를 차지했다. 자영업자 비중 20% 선이 깨진 건 196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전체 자영업자의 75% 정도는 한 달에 100만원도 벌지 못하고 있고 소득이 '0'원이라고 신고한 자영업자도 95만명에 달한다.
올해도 내수 부진이 지속되고 있어 자영업자들의 줄폐업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5월 재화 소비를 보여주는 소매판매액 지수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3% 줄어들었다. 이는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5월(―3.1%)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소매 판매는 장기화된 고금리·고물가로 인해 최근 2년 중 4개월을 빼고 모두 감소하는 등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거리 [사진=송은정 기자] |
저성장 고착화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고 있다. 저성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이하 연구소)의 '2025년 일반산업 전망' 보고서는 내년 핵심 이슈로 '양극화와 저성장'을 꼽았다.
산업 양극화와 관련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일부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이 집중되는 반면 내수 중심의 전통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상대적으로 부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소는 이러한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경우 전반적인 경제 활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소는 "2025년 국내 산업은 전반적으로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업종별, 기업 규모별 양극화가 이어질 전망"이라며 "정부와 기업은 이러한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자영업자의 실질적 부담을 줄일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정부가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실질적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의 체력이 많이 소진된 측면이 있다"며 "특히 자영업자 비중이 감소하면서 고용 없는 자영업자 수가 줄어드는 것은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과도한 금리 인상의 여파로 내수 침체가 심화되면서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폐업이 늘어났고 서민들의 고통이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금리가 지속되고 내수 침체가 심화 지속되니까 자영업자들이 견딜 수가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자영업 경기가 휘청이면 나머지도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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