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등록 : 2025-03-29 11:01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법원이 미친 것 같다.", "판사가 빨갱이인 것 같다.", "판사가 뒷돈을 받은 것이다."
지난 2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서울 서초동 삼거리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이 대표 구속을 외치던 이들은 사법부를 향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는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에 대한 수위 높은 비난과 함께 판사의 개인정보를 캐내는 이른바 '신상털기' 게시글이 확산했다.'이재명과 판사들이 뒷거래를 한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계좌 추적과 통신감청을 해봐야 한다'는 주장에 이어 심지어 '살려두면 안 된다'는 등의 위협적인 표현이 담긴 글도 올라왔다. '전라도 판사가 이재명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며 지역 비하 발언도 쏟아냈다.
정치인들도 사법부 비판에 몰두하고 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런 해괴한 정치재판이 대한민국이라는 문명국가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부끄럽고 자괴감마저 든다"며 "2심 재판부의 비겁한 정치질이자 사법정의를 파괴한 테러행위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국민소통위원회는 "온라인에서 음모론이 확산되고 특정 인물에 대한 협박과 테러 선동이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며 철저한 대응과 엄정한 법적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4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 선고에서 유일하게 인용 의견을 냈던 정계선 헌법재판관에 대한 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계선이는 아직 덜맞아서 그럼', '차라리 북한 가서 사는게 더 나을 것 같다' 등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심지어 '정계선 집 찾았다'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오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정 재판관 자택으로 알려진 곳을 찾아가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앞서 이들은 지난 1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자택 앞에 찾아가 "포르노 판사, X판사" 등을 외치며 밤낮으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판사 조리돌림 현상은 특정 정치 진영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구속취소 결정을 내린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판사에 대한 신상털기와 함께 테러 협박이 이어지면서 법원은 지 판사에 대해 신변보호 조치에 들어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귀연은 역대급 XXX이다', '대한민국에서 살 수 없을 테니 이민 준비해라', '어떻게 사람 이름이 지귀연이냐' 등의 인신공격성 게시글 등이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게시글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영림 법무법인 선승 변호사는 "피해자가 특정되고 구체적 해악을 고지하는 경우 협박죄가 성립할 수 있다. 또 오로지 비방할 목적으로 피해자의 명예를 깎아내릴 수 있는 글을 작성한 경우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도 "판결에 대해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개별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적 표현이나 근거 없는 비방을 하는 경우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 변호사는 "원래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 "문제는 정치인들이 본인의 이익을 위해 갈등을 조장하고 불을 붙이는 것"이라며 사회 갈등을 줄이기 위해 정치권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