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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이 1%대에 머물고 국가채무가 1800조원에 육박하는 흐름 속에서 국가재정법이 전면 개정됐다. 중기재정계획 이행실적 제출을 의무화하고 예비비 사용 요건은 법률에 명시됐다.
세입예산은 매년 9월 재추계해 국회에 보고하도록 했으며, 국세감면율이 법정 한도를 초과할 경우 그 사유를 제출하도록 했다. 이번 국가재정법 개정은 재정의 '확대'가 아니라 '통제'에 초점을 둔 제도 개편이다.
13일 국회예산정책처(NABO)의 '국가재정법 개정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에 따르면, 이번 개정의 핵심은 재정 수립부터 집행, 세입 관리까지 전 과정을 국회 통제 체계 안에 두는 것이다. 개정안은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 성장 둔화 속 재정 팽창…중기재정관리 실효성 시험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평균 잠재성장률은 지난 2000~2004년 5.3%에서 2025~2029년 1.8%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성장 기반이 약화되는 가운데 복지·고령화 대응 지출은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흐름이다.
국가채무는 2021년 970조7000억원에서 2025년 1301조9000억원으로 증가했고, 2029년에는 1799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8년 사이 828조5000억원이 늘어나는 구조다.
문제는 채무 규모 자체보다 증가 속도다. 성장 둔화와 맞물린 채무 확대는 재정의 대응 여력을 제약한다. 경기 침체 시 추가 재정 투입이 필요하더라도 선택지가 좁아질 수 있다. 이번 법 개정은 이런 구조적 부담을 제도적으로 관리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그동안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목표 달성 여부를 점검하는 장치는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개정안은 재정 목표의 이행 방안과 전년도 대비 실적을 의무적으로 첨부하도록 했다. 중기 재정 목표를 선언이 아닌 점검의 대상으로 전환한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추경이나 정책 확대를 추진할 경우 중기계획과의 정합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국회 역시 단순 증액·삭감 논의를 넘어 재정 기조의 일관성을 점검하는 역할을 요구받게 됐다.
◆ 예비비·예타 면제…세수오차 구조적 문제 줄일 수 있나
예비비 사용 요건을 법률에 명시한 점도 눈에 띈다. 최근 5년간 예비비 관련 결산 시정요구는 2020년 35건, 2024년 20건으로 반복됐다. 예비비가 사실상 본예산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앞으로는 예측 불가능성, 시급성, 불가피성, 집행 가능성 등을 소명해야 한다. 집행의 유연성은 유지하되, 사후 책임을 강화하는 구조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에 대해서도 면제 내역과 사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국회에 제출하도록 했다. 다만 국가연구개발사업은 신속 추진을 위해 예타를 면제했다. 정책 속도와 재정 통제 사이에서 균형을 택한 것이다.
세입 관리 강화 역시 이번 개정의 핵심 축이다. 2021년에는 본예산 대비 61조3000억원 초과 세수가 발생했고, 2023년에는 56조4000억원 세수 결손이 났다. 세수 오차율은 각각 21.7%, -14.1%에 달했다.
이처럼 큰 오차는 재정 운용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정부는 매년 9월 세입을 재추계하고, 추계 방법과 세목별 차이, 원인을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관건은 낙관적 추계 관행을 줄일 수 있느냐다. 세수 추계는 성장률과 자산시장 전망에 좌우된다. 추계 정확도를 높이려면 전망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논의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조세지출은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재정 측면에서는 현금 지출과 다르지 않다. 세입 기반을 줄이는 만큼 재정 여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023년 국세감면율은 15.8%로 법정한도 14.3%를 넘어섰고, 2024년에도 16.1%로 한도를 초과했다. 한도 관리 장치가 있었지만, 실질적 제어 기능은 제한적이었다는 의미다.
개정안은 감면율이 법정한도를 초과할 경우 그 내역과 사유를 예산안 첨부서류와 함께 국회에 제출하도록 했다. 조세감면을 정책 선택의 영역에만 두지 않고, 재정 책임의 범주로 끌어들인 조치다.
다만 제출 의무가 곧 통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핵심은 감면의 효과를 계량적으로 검증하는 체계를 갖추는 데 있다.
감면이 실제 투자 확대, 고용 증가, 소비 진작으로 이어졌는지를 사후에 점검하지 않으면 조세지출은 반복·확대되기 쉽다. 정치적 유인은 강하고 재정적 비용은 분산돼 보이기 때문이다.
◆ 국회 통제 권한 형식적 확대…향후 운용 성과에 달렸다
이번 개정으로 국회의 통제 권한은 형식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 회복은 제도 강화만으로 담보되지 않는다. 감면 연장과 신규 감면 도입 과정에서 국회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지, 중기재정계획과의 정합성을 실질적으로 따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정보 공개 역시 시험대에 오른다. 제출되는 자료가 총액 설명에 그칠지, 세목별·정책별 효과 분석까지 담을지는 향후 운용에 달렸다. 데이터의 깊이와 공개 범위가 통제의 강도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개정은 조세지출을 재정 통제의 사각지대에서 끌어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다만 확장 재정 기조 속에서 감면 정책이 계속 확대된다면, 제도는 또 다른 보고 절차로 남을 수 있다.
■ 한 줄 요약
1800조원 채무 시대를 앞두고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예비비·세수추계·조세지출까지 국회 통제를 강화했지만, 성패는 제도의 실제 작동 여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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