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고대역폭메모리(HBM)4가 본격 출하되면서 글로벌 메모리 판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출하' 카드를 꺼내 들자 SK하이닉스는 검증된 양산 경험을 앞세워 수성에 나섰고, 마이크론도 대량 생산·출하를 공식화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속도 수치 경쟁을 넘어 수율과 공급 안정성, 그리고 최대 수요처인 엔비디아의 선택까지 얽히면서 HBM4는 단순 세대 교체가 아닌 '인공지능(AI) 메모리 주도권'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적인 양산·공급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세계 최초 출하로 속도전에 불을 지핀 삼성전자와, 양산 경험을 앞세워 수성에 나선 SK하이닉스, 북미 기반을 토대로 존재감을 키우는 마이크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HBM4는 단순한 세대 교체를 넘어 3사의 기술력과 수율 안정성, 고객 네트워크를 종합적으로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 삼성전자, '최초 출하'로 반격 신호탄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곳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일 업계 최고 성능의 HBM4를 세계 최초로 양산 출하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설 연휴 직후로 예정됐던 일정보다 1주일가량 앞당긴 것으로, 최대 수요처인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 양산 일정에 선제 대응한 행보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이번 HBM4에 10나노급 6세대(1c) D램과 4나노 로직 공정을 결합하는 전략을 택했다. 특히 전력·신호를 제어하는 로직 다이에 4나노 공정을 적용해 메모리와 로직을 설계 단계부터 최적화(DTCO)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결과 동작 속도는 업계 표준(8Gbps)을 크게 웃도는 최대 13Gbps까지 구현 가능한 확장성을 확보했고, 대역폭은 3.3TB/s 수준으로 제시됐다. HBM3E 세대에서 열세를 보였던 삼성전자가 성능 지표에서만큼은 가장 높은 수치를 제시하며 정면 승부에 나선 셈이다.
◆ SK하이닉스, 검증된 공정으로 수성 전략
SK하이닉스는 HBM3E에서 구축한 압도적 레퍼런스와 양산 경험을 바탕으로 HBM4에서도 우위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HBM4에 10나노급 5세대(1b) D램 공정을 적용했다. 한 세대 앞선 기술을 선택한 삼성전자와 달리, 이미 수율이 입증된 공정을 활용해 안정성과 경제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최고 속도는 11Gbps 이상, 최대 11.7Gbps 수준으로 알려졌다. 또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의 12나노 공정을 활용해 로직 다이를 제작, 엔비디아 시스템과의 호환성과 최적화 측면에서 강점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9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양산 경험과 품질에 대한 신뢰는 단기간에 추월할 수 없는 영역"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미 확보한 고객 인증과 대규모 생산 능력이 단기적인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 마이크론, 변수로 떠오른 '3강' 완성
마이크론 역시 HBM4 대량 생산 및 고객 출하를 공식화하며 3강 구도를 완성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품질 테스트 탈락설을 일축하듯 "이미 대량 양산에 진입했다"고 밝히며 존재감을 부각했다.
마이크론은 11Gbps 이상 속도를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과 자국 공급망 강화 기조를 등에 업고 생산 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HBM3E 세대에서 후발주자로서 틈새를 공략했던 마이크론은 HBM4에서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특히 북미 고객 기반을 활용해 전략적 물량 확보에 집중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 속도보다 '수율·고객'이 승부처
업계에서는 HBM4 경쟁이 단순한 속도 수치 싸움을 넘어 수율과 공급 안정성, 고객 선점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본다. AI 모델 규모가 급격히 커지면서 데이터 병목을 해결할 메모리의 안정적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최대 수요처인 엔비디아의 선택도 판도를 좌우할 핵심 변수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에 요구하는 사양을 상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성능과 수율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과제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결국 이번 HBM4 경쟁은 단순한 속도 수치 경쟁을 넘어선 복합전으로 전개되고 있다. ▲초기 수율 안정화 ▲대량 공급 능력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 인증 ▲패키징 완성도 ▲공급망 안정성 등이 동시에 검증돼야만 실질적인 점유율 확대가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HBM4는 기술 시연 단계가 아니라 실제 양산·공급 단계에서 경쟁이 이뤄지는 제품"이라며 "수율과 고객 인증, 공급 안정성이 동시에 검증돼야 의미 있는 점유율 확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kji01@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