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주요 정비사업지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기준금리보다 낮은 이자로 사업비를 대여하는 이른바 '마이너스 금리' 조건을 제시하며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시공과 무관한 재산상 이익 제공으로 해석될 경우 위법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명확한 판단 기준이 없어 사실상 제재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자금력 중심의 수주 경쟁이 대형 건설사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무리한 금융 조건이 기업의 재무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처벌 기준 애매해"…법적 맹점 파고든 시공사 '마케팅'
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초구는 최근 신반포19·25차 재건축 수주전 입찰에 참여한 시공사들의 사업비 금융 대여 조건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검토 결과를 조합에 통보했다. 그러나 관련 규정이 없어 조합이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게 낫겠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이 사업지에서는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포스코이앤씨가 경쟁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에서 1%포인트(p)를 뺀 'CD-1%', 삼성물산은 'CD+0%'라는 대여 조건을 각각 내걸었다.
현재 CD 금리가 2.8% 수준임을 고려하면 포스코이앤씨는 1.8% 수준의 저금리로 외부에서 사업비를 조달해 오겠다는 의미다. 공사비 규모만 약 4434억원인 사업지인 만큼 시공사가 조달 비용을 낮춰주면, 향후 조합원들이 입주 시점에 납부해야 하는 분담금은 줄어든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시정비법) 및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 기준은 시공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 제공을 금지한다. 일반 금융기관의 대출 금리보다 낮은 조건으로 자금을 대여하는 행위 역시 이 같은 금지 대상에 포함된다.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관할청이 시공자 선정을 취소하거나 해당 정비사업 공사비의 2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도 가능하다.
서초구는 당초 이 같은 금리 조건이 통상적인 시중 금융기관의 대출 금리보다 크게 낮은 탓에 그 차액이 조합원에게 제공되는 재산상 이익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실제 위법 여부를 판단하기가 애매하다는 데에 있다.
무상으로 이자를 지원하는 행위는 위법 여부가 명확하지만 금리를 일부 깎아주는 것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논리상으로는 혜택을 준 것이 맞더라도, CD 금리를 반드시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없어 건설사가 당사자 간 합의라고 주장하면 법리적 대응이 어렵다.
금리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 이를 시공과 무관한 이익 제공으로 단정 짓기도 애매해 논란의 소지가 있다. 현행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지자체 등의 개입으로 법적 분쟁이 발생해 법원의 해석을 받아야만 구체적인 위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무상으로 이자를 지원하는 것은 안 된다는 점이 명확하지만, 금리를 깎아주는 부분은 CD 금리를 평균 금리로 봐야 한다는 조항이 없어 판단하기 애매하다"며 "당사자 간 합의로 볼 여지도 있어 시공과 무관한 이익 제공에 해당하는지는 결국 법정에서 해석을 받아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건설사들이 이를 위법한 이익 제공이 아닌 유리한 사업 조건을 제시한 일종의 마케팅이라고 주장하면 법리상 빠져나갈 여지가 크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가 드물다 보니 시장에서는 사실상 실효성이 떨어지는 사문화된 규정으로 인식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 "조합원이 원하는데"...수주 양극화·재무 부담 그림자
사실 초저금리 경쟁이 여기서만 등장한 것은 아니다. 현대건설과 DL이앤씨의 경쟁입찰이 예상되는 강남구 압구정5구역 재건축 사업장에서는 DL이앤씨가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 기준 0%를 제안했다. 이를 통상적인 대출 기준표로 쓰이는 CD 금리로 환산하면 'CD-0.38%' 수준이 된다.
시공사가 시중 CD 금리보다 더 낮은 이자로 조합에 자금을 대여하겠다는 뜻이다. 사실상 조합원의 이자 비용 일부를 대신 떠안는 셈이지만 조합은 현재까지 이를 제재하지 않았다.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4지구 재개발 수주전에 뛰어든 대우건설도 'CD-0.5%'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한 우려로 성수4지구 재개발 조합 측이 마이너스 금리 제안을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하려 했으나, 일부 조합원들이 조합원에게 유리한 조건을 막는다며 관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반발에 부딪힌 상황이다.
통상적으로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건설사들은 조합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다양한 혜택을 내놓는다. 공사비 절감이나 분양 방식 변경은 물론 고급 자재 무상 제공 및 설계 변경 등을 약속하거나 하이엔드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
최근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옥석 가리기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상급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다른 조건보다 실질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올 수 있는 시공사를 가장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연구소 소장은 "일반적인 정비사업은 금융권 대출로 사업비를 충당한 뒤 자금이 부족하면 조합원들이 분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며 "건설사가 아무리 공사비를 절감하더라도 자금 조달 측면에서 발생하는 금융 비용을 유심히 따져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신용등급이 높은 대형 건설사를 선호하는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중견 건설사의 입지가 급격히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수도권 주요 알짜 사업지는 10대 대형 건설사가 독식하고, 자금력이 부족한 중견·중소 건설사는 소규모 정비사업만 전전하는 수주 양극화가 굳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초저금리 경쟁은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건설사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사업비 대출 지원이 늘어날수록 사내 보유 현금을 대거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지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2022년 이후 유동성 대응력이 저하되고 지방 분양 실적이 부진한 건설사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비우호적인 자금 조달 여건이 이어질 경우 각 기업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증권 및 회사채 등의 차환이나 상환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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