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문선 기자 = "이 이야기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허수아비' 박준우 감독과 이지현 작가는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 감독과 이 작가는 처음부터 '범인 잡는 이야기'보다 그 사건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사건에서 비롯된 상처와 공권력의 실패, 그리고 아무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던 현실까지. 두 사람은 "무겁고 우울하다"는 우려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들이 던지고 싶었던 질문을 밀어붙였다.
박 감독은 "이 작품은 원래부터 무거운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드라마였다"며 "시청자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허수아비'를 기획하게 된 계기에는 과거 자신이 연출했던 작품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었다. 박 감독은 "2021년 '모범택시' 막바지 촬영 때 비판 기사를 본 적이 있다"며 "실제 사건 피해자들을 생각하지 않고 드라마적 소재로만 소비한다는 지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마지막 에피소드가 공소시효 이야기였는데, 그 기사를 보고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 작가 역시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엔딩의 꿈 장면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그 시절 연쇄살인 사건 때문에 일상이 무너진 분들이 많았다. 이 비극이 없었다면 얼마나 평범하고 온전한 삶을 살았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고, 우리가 보내는 애도의 방식이었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특히 '공권력에 무너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건 자체도 비극이지만, 그 이후 공권력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나 의논이 없었다고 생각했다"며 "그 메시지를 처음부터 가지고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를 드라마로 구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박 감독은 "대중들이 좋아할까 싶었다. 제작사에서도 '메시지는 좋지만 너무 무겁고 우울하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편성 받기도 정말 힘들었다"며 "그래서 초반에는 범인에 대한 궁금증을 더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제목 '허수아비' 역시 작품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담아낸 결과물이었다. 박 감독은 "실제 사건 현장에 있었던 문구를 제목으로 쓰려 했지만 작가님이 반대했다"며 "결국 '허수아비'로 합의했고, 드라마적 장치까지 만들어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그 시대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던 경찰과 공권력을 빗댄 의미도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작품 속 차시영 캐릭터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차시영을 단순히 악하기만 한 인물로 그리고 싶진 않았다"며 "정말 태주와 화해하고 싶었고 범인도 잡고 싶었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작품 속 주요 설정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했지만, 현실과는 분명한 거리를 두려 했다고 강조했다. 이 작가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특정 사건과 인물을 꼭 넣고 싶다고 하셨는데, 경찰이 시신을 은폐하는 등의 설정은 너무 무거워서 처음에는 못 쓰겠다고 했다"며 "고민 끝에 학폭 피해자와 가해자 설정 등을 더해 지금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범인 공개 방식 역시 의도적으로 전형성을 깨려 했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전형적으로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며 "가장 범인이 아닐 것 같은 타이밍에 갑자기 툭 공개되도록 편집했다. 처음에는 다들 놀랐다"고 말했다.
배우 캐스팅에 대한 비하인드도 공개됐다. 박 감독은 "이기환 역의 정문성 배우를 가장 먼저 캐스팅했다"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였고 연기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박해수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배우"라고 전했다.
현장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배우들이 "한여름 촬영 당시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을 만들고, 사우나 냉탕까지 보내줬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박 감독은 "제작사 대표도 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며 웃었다.
이어 "정말 너무 더웠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위험할 정도였다"며 "다들 너무 고맙고, 함께 고생해준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실제 사건의 당사자였던 윤성여 씨 역시 드라마를 응원했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윤성여 씨가 '왜 12부작밖에 안 하냐'고 하셨다"며 "드라마에는 허구가 많이 들어갔다고 설명드렸다. 마지막 방송까지 열렬하게 시청해주셨다"고 전했다. 또 "곽선영 씨 사인도 받고 싶다고 하셔서 사인도 보내드리고, 나중에 배우들과 다같이 식사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결국 '허수아비'를 통해 누군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박 감독과 이 작가는 "실제 현실에서는 사과하는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며 "그래서 극 안에서만큼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스스로 바로잡으려 하는 판타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 현실에서도 태주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moonddo00@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