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코스피가 10% 넘게 급락하며 6000선까지 밀려난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도 최근 고점 대비 40% 넘게 하락했다. 미국 빅테크의 인공지능(AI) 투자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과 중국 반도체 업체의 추격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국내 반도체주에 적용되는 위험 프리미엄이 빠르게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732.09포인트(10.84%) 내린 6023.66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5.26% 하락 출발한 뒤 낙폭을 키웠다. 오전 9시6분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고 오전 10시13분에는 서킷브레이커가 작동해 20분간 매매가 중단됐다. 장중 한때 6000선을 밑돌기도 했다.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는 주식시장 지수가 급격히 하락할 경우 시장 전체의 거래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제도이며, 매도 사이드카는 프로그램 매도호가의 효력을 5분간 정지해 시장 변동성을 완화하는 제도다. 사이드카는 올해 코스피에서 매수·매도를 합쳐 42번째, 코스닥에서는 26번 발동됐다.
이날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13.39% 내린 22만원, SK하이닉스는 14.65% 하락한 155만원에 마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9일 장중 고점인 37만4500원 대비 41.3%,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5일 장중 고점인 298만7000원 대비 48.1% 낮은 수준이다.
◆ AI 투자·중국 변수에 흔들린 '가격표'…글로벌 경쟁사보다 낙폭 커
증권가는 이번 급락을 당장의 실적 악화보다 국내 반도체주에 적용되는 위험 프리미엄이 높아진 결과로 보고 있다. 기업의 이익 전망이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도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면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수익률이 높아지고, 같은 이익에 적용되는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낮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빅테크의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증시 상장과 중국산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생산 소식이 겹치면서 메모리 시장의 경쟁 심화 가능성이 부각됐다.
CXMT는 지난 27일 상하이증권거래소 커촹반에 상장해 공모가보다 465.82% 오른 49위안에 첫 거래를 마쳤다. 기업공개(IPO)를 통해 조달한 579억2000만위안은 D램 생산라인 확장과 공정 고도화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생산능력 확대가 범용 D램 공급 증가로 이어질 경우 국내 메모리 업체의 밸류에이션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엔비디아의 AI 투자 구조를 둘러싼 논란도 반도체 업종 전반의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오픈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대한 대규모 지급보증 검토 보도가 나오면서 AI 반도체 수요가 공급업체의 금융 지원에 의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전날 뉴욕증시에서 엔비디아가 4.99% 하락했고 마이크론과 AMD 등 주요 반도체주도 동반 약세를 보였다.
아시아 증시에서도 일본 키옥시아와 대만 TSMC 등이 하락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낙폭은 더 컸다. AI 투자 둔화 우려와 중국 업체의 추격 가능성, 국내 증시 변동성이 맞물리면서 국내 반도체주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이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국내 반도체 산업의 높은 메모리 의존도도 주가 부담을 키웠다. AI 수요가 이어지더라도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둔화하거나 중국발 공급이 늘어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다만 CXMT의 증설이 곧바로 글로벌 D램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CXMT의 증설 물량은 화웨이와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 업체의 AI 인프라와 내수 정보기술(IT) 기기에 주로 사용될 것으로 추정된다"며 "중국 내 메모리 수요 증가량이 공급 증가량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중국 밖으로 공급 과잉이 확산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빅테크를 중심으로 AI 서버용 메모리 공급을 확대하고 있어 CXMT와 주요 고객층이 당장 겹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민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CXMT는 아직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율이 낮고 극자외선(EUV)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공정의 한계로 HBM4 시장 진입에도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 실적 조정은 제한적…글로벌 대비 밸류에이션 할인은 확대
주가가 최근 고점 대비 40% 넘게 하락한 것과 달리 증권사들의 실적 추정치와 목표주가는 큰 폭으로 바뀌지 않았다.
유진투자증권은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39조1070억원에서 38조9750억원으로 0.3% 하향 조정했다. 내년 전망치도 0.8% 낮췄지만 목표주가는 56만원을 유지했다.
KB증권도 삼성전자 목표주가 60만원과 목표 PBR 4.6배를 유지했다.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시장 컨센서스를 소폭 밑돌 것으로 예상했지만 내년 전망치는 오히려 시장 전망치를 웃돌 것으로 제시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AI 인프라 산업의 장기 성장성과 메모리 공급 부족이라는 핵심 펀더멘털은 한 달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없다"며 "최근 주가 조정은 실적보다 시장의 우려가 먼저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이익 전망 조정 폭은 주가 하락에 비해 제한적이었다. KB증권은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11.1%, 내년 전망치를 15.9% 하향 조정했지만 목표주가 420만원과 목표 PBR 5.0배를 유지했다. 유진투자증권도 목표주가 370만원을 유지했다.
손인준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범용 D램과 낸드 공급 부족은 이어지고 있으며 고객사들은 가격보다 물량 확보를 우선하고 있다"며 "하반기 가격 상승 전망을 훼손할 만한 징후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국내 메모리 업체가 이미 글로벌 경쟁사보다 낮은 밸류에이션을 적용받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주가 급락으로 할인 폭이 더욱 확대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PER과 PBR은 글로벌 메모리 경쟁사 평균을 밑돌았다. 이후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실적 전망 조정은 제한적이어서 밸류에이션 부담은 오히려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증권가는 최근 주가 조정을 실적 악화보다 미래 불확실성이 확대된 영향으로 해석하고 있다. AI 투자 지속 여부와 중국 메모리 업체의 증설 가능성이 반영되면서 국내 반도체주에 적용되는 위험 프리미엄은 높아졌지만, 실제 이익 전망과 목표주가는 큰 폭으로 조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장이 미래 기대치를 먼저 낮춰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박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조정은 펀더멘털 훼손보다 AI 인프라 수요 지속성에 대한 우려의 영향이 크다"며 "향후 빅테크의 AI 설비투자 계획과 메모리 가격,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 전망이 실제로 하향 조정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nylee5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