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미국과 이란의 협상 재개 기대에 3일 국제유가와 국채금리가 하락하며 위험자산 투자 여건이 개선됐지만, 암호화폐 시장은 오히려 약세를 나타냈다.
시장은 미국과 이란의 긴장 완화보다 콜드카드(Coldcard) 하드웨어 지갑 취약점 악용 사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셀프 커스터디(개인 보관)에 대한 신뢰까지 흔들리는 모습이다.
비트코인은 주말 6만3600달러까지 올랐다가 한국 시간으로 3일 오후 6시 기준 6만2800달러로 밀리며 하루 1.2%, 최근 7일간 2% 넘게 하락했다. 이더리움도 1% 넘게 내린 1835달러를 기록하며 지난주 이후 1900달러선을 회복하지 못했고, 7일 기준 낙폭은 3%에 달했다.
리플(XRP)은 약 1.2% 하락한 1.07달러, 솔라나(SOL)는 1.22% 내린 73달러 안팎, 도지코인(DOGE)은 1.04% 하락해 7센트 아래에서 거래됐다. 하이퍼리퀴드(HYPE)는 52.35달러로 0.6% 올랐ㅅ으나 최근 일주일 동안 6.68% 급락해 시가총액 상위 10개 암호화폐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 거시 환경은 호재였지만…암호화폐는 '나홀로 약세'
거시경제 여건은 오히려 암호화폐에 우호적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을 취소하고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면서 10월물 브렌트유 선물은 배럴당 84달러 선으로 밀리며 4% 가까이 급락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동맹국들도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합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 하락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완화되면서 미국 국채는 전 만기 구간에서 강세를 나타냈다. 지난주 2025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던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4bp(1bp=0.01%포인트) 하락한 4.69%를 기록했고, 나스닥100 선물과 유럽 증시 선물은 일제히 상승했다.
통상 유가 하락과 국채금리 하락, 주가지수 선물 상승은 암호화폐 가격에 우호적인 조합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트코인이 이 같은 거시 호재를 외면했다. 시장의 부담이 거시경제보다 콜드카드 보안 사고라는 내부 악재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 콜드카드 해킹 확산…소액 지갑까지 털리기 시작
시장의 불안을 키운 것은 콜드카드 해킹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갤럭시 리서치와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주말 동안 세 번째 대규모 자금 탈취(sweep)가 확인되면서 현재까지 피해 규모는 4585개 주소에서 총 1367비트코인(BTC), 약 8900만달러로 늘어났다.
첫 번째 공격은 7월 30일 단 41분 만에 1196개 주소에서 1083BTC를 빼냈다. 반면 세 번째 공격에서는 1912개 주소에서 208BTC가 탈취됐다. 피해를 입은 지갑 수는 오히려 더 늘었지만 탈취 금액은 첫 번째 공격의 5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이는 공격 양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잔액이 큰 지갑을 우선 노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고액 지갑 대부분이 털리자 이제는 수천 달러 수준의 소액 지갑까지 차례로 공격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피해자 1명당 평균 탈취 규모도 첫 번째 공격 당시 약 1BTC에서 최근에는 0.1BTC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공격 수법도 더욱 치밀해졌다. 초기에는 탈취한 비트코인을 소수의 공통 주소로 모아 보내 자금 흐름을 비교적 쉽게 추적할 수 있었지만, 세 번째 공격에서는 피해자마다 서로 다른 주소로 자금을 분산 송금해 추적을 어렵게 만들었다.
자금을 옮기는 방식도 바뀌었다. 기존에는 일반적인 단일 개인키 방식의 주소를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다중서명(multisignature)이나 타임록(timelock) 기능을 적용할 수 있는 P2WSH(Pay-to-Witness-Script-Hash) 방식으로 자금을 이동시켰다. 또 이전에는 한 번에 피해자 한 명씩 자금을 빼냈다면 이번에는 평균 6명의 피해자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높였다.
취약한 지갑을 찾는 방식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여러 파생 경로(derivation path)를 폭넓게 탐색했지만, 이번에는 대부분의 지갑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기본 파생 경로(default derivation path)만 집중적으로 검색했다.
갤럭시 리서치는 이 같은 변화가 공격자가 공개 분석을 피하기 위해 전략을 수정했거나, 또 다른 공격자가 같은 취약점을 독자적으로 악용하기 시작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블록체인 기록만으로는 동일한 공격자인지, 서로 다른 공격자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 2021년 펌웨어 버그가 원인…"기기 없이 개인키 복원 가능"
이번 사고는 2021년 3월 배포된 콜드카드 펌웨어의 결함에서 비롯됐다.
당시 일부 기기는 새 지갑을 생성할 때 보안 칩의 하드웨어 난수 생성기(RNG)가 아닌 예측 가능한 소프트웨어 난수 생성기를 사용했다. 이로 인해 시드(seed)의 무작위성(엔트로피)이 크게 낮아졌고, 공격자는 기기를 직접 확보하지 않아도 오프라인에서 가능한 시드 문구를 재현해 개인키를 복원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사건은 바이낸스 공동창업자 창펑 자오(CZ)를 비롯한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하드웨어 지갑과 셀프 커스터디의 안전성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논의를 촉발했다.
◆ FTX 때와 정반대…투자자들 "거래소가 더 안전"
온체인 데이터도 투자심리 변화를 보여준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크립토퀀트에 따르면 7월 31일 10BTC 미만 거래를 통한 비트코인 거래소 입금 규모는 하루 7300BTC로 늘어나 2월 6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일 활성 주소도 64만5000개에서 거의 100만개로 급증하며 2024년 12월 이후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증가분 대부분은 거래소로 비트코인을 보내는 주소에서 발생했다.
크립토퀀트 리서치 총괄 훌리오 모레노는 "콜드카드 해킹 이후 투자자들이 극도로 조심하는 차원에서 실제로 비트코인을 이동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BTC 미만 거래의 총 이동량도 하루 3만9600BTC를 기록해 FTX가 파산을 신청한 직후인 2022년 11월 16일의 3만9900BTC에 근접했다. 모레노는 "개인 투자자들이 하루 동안 이 정도 규모의 비트코인을 움직인 것은 FTX 붕괴 이후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온체인 분석가 타임체인인덱스에 따르면 7월 31일 거래소 순유입 규모는 총 1만1163BTC에 달했으며 대부분 바이낸스, 리버(River), 크라켄(Kraken), OKX 등 주요 거래소로 이동했다. 그는 "겁을 먹은 개인 투자자들이 자산을 거래소로 옮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앙화 거래소가 보유한 비트코인은 콜드카드 사고 이전 270만3837BTC에서 현재 271만5000BTC로 증가했다.
이는 2022년 FTX 붕괴 당시와 정반대의 흐름이다. 당시에는 거래소 파산과 출금 중단을 우려해 투자자들이 대거 셀프 커스터디로 자산을 옮겼지만, 이번에는 특정 하드웨어 지갑의 보안 취약점이 드러나면서 일부 투자자들이 오히려 거래소를 더 안전한 보관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고가 콜드카드의 특정 펌웨어 취약점에 국한된 사례일 뿐, 셀프 커스터디나 하드웨어 지갑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정상적으로 생성된 시드 문구와 대부분의 하드웨어 지갑은 이번 취약점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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