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중동의 핵심 해상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의 관문인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선박 운항이 급감한 상황에서 친이란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이 홍해로 확대되면서 세계 에너지 교역을 떠받치는 두 개의 주요 해상 통로가 동시에 위협받는 상황이 됐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호르무즈 해협을 피해 홍해 연안 얀부항을 원유 수출의 우회 통로로 적극 활용해왔다는 점에서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불안은 단순한 홍해 운송 차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 후티, 바브엘만데브 공격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이날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탄자니아 국적 소형 화물선 '티하마(Tihamah)'를 공격해 선원 3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자는 파키스탄인 2명과 인도네시아인 1명이다. 후티는 아직 이번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사망 사실이 확인될 경우 지난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중동 분쟁이 촉발된 이후 후티의 선박 공격으로 발생한 첫 사망자가 된다.
로이터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선박 공격이 이미 호르무즈 해협 폐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운회사들의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원자재·해운 데이터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지난주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하루 평균 32척으로, 후티의 봉쇄 이전 하루 평균 50척보다 36% 감소했다.
◆ 호르무즈 막자 홍해로 돌린 사우디 원유…'탈출구'도 위협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중요한 이유는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사우디의 핵심 원유 수출 통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지난달 20일 후티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실제로 봉쇄할 경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유 수송로 가운데 하나가 타격을 받아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하고 연료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바브엘만데브는 홍해와 아덴만을 연결하며 중동과 유럽·아시아를 오가는 원유와 석유제품의 핵심 수송로다. 2023년 후티의 선박 공격이 시작된 이후 이미 많은 선박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가는 항로를 선택하면서 운송 비용과 시간이 늘어난 상태다.
바브엘만데브가 폐쇄될 경우 가장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사우디 홍해 연안의 얀부항이다.
사우디는 호르무즈 해협 위기가 시작된 이후 동부 지역의 원유를 동서횡단 파이프라인을 통해 얀부로 보내 수출을 확대해왔다.
로이즈리스트가 지난달 20일 보도한 보텍사 자료에 따르면 호르무즈 위기 이전 얀부의 원유·콘덴세이트 수출량은 하루 평균 약 76만배럴이었다. 그러나 호르무즈 위기가 시작된 이후에는 하루 평균 375만배럴로 급증했다. 하루 약 300만배럴의 원유가 추가로 얀부를 통해 수출되면서 호르무즈를 통한 사우디의 수출 감소분을 일부 상쇄한 것이다.
이 가운데 62%는 인도·일본·중국·한국 등 아시아 4개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후티가 바브엘만데브를 통과하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공격할 경우 사우디가 호르무즈를 피해 확보한 이 우회 수출로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로이즈리스트는 이 경우 사우디 원유가 이집트 수메드(SUMED) 파이프라인으로 더 많이 이동하거나 얀부의 원유 수출 자체가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아시아행 원유 최대 한 달 지연 가능성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는 아시아다.
케이플러의 맷 스미스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는 로이터에 바브엘만데브가 완전히 폐쇄될 경우 얀부에서 원유를 공급받는 아시아 정유업체들이 약 한 달의 운송 지연을 겪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조선들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첫 한 달의 충격은 엄청날 것"이라며 "가장 큰 영향은 사우디 원유 흐름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애스펙츠의 리처드 브론즈는 현재 홍해를 거쳐 아시아로 운송되는 하루 300만배럴 이상의 사우디 원유가 훨씬 긴 항로로 이동해야 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문제는 대형 유조선의 우회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원유를 가득 실은 VLCC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없고,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이집트 수메드 파이프라인의 처리 용량도 제한돼 있다.
로이즈리스트는 얀부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원유가 모두 희망봉으로 우회할 경우 VLCC와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수요가 14%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추가로 VLCC 70척과 수에즈막스 75척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 유가뿐 아니라 운임·보험료까지 압박
바브엘만데브 차질의 영향은 원유 공급에만 그치지 않는다.
로이터에 따르면 스트라타스 어드바이저스의 존 페이지 사장은 홍해를 통한 원유 흐름이 실제로 중단되거나 심각하게 제한될 경우 국제유가뿐 아니라 석유제품 가격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박들이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장거리 항로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운임과 보험료도 상승할 수 있다.
아시아와 중동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디젤과 항공유 역시 통상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한다.
실제 후티의 위협이 본격화한 뒤 홍해 선박 운항은 빠르게 줄었다. 로이터가 지난달 27일 케이플러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데 따르면 당시 하루 동안 바브엘만데브를 통과한 원자재 운반선은 11척에 그쳐 수개월 만에 가장 적었다.
당시 로이터는 후티가 사우디 원유 시설을 공격하고 사우디 수출 봉쇄에 나서면서 이미 호르무즈 해협에서 원유 공급을 압박하던 미국·이란 분쟁이 홍해로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 "호르무즈뿐 아니라 바브엘만데브도 위험"
이란이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라는 두 개의 핵심 해협을 동시에 압박할 가능성은 이미 지난달부터 제기됐다.
로이터는 지난달 14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운항을 위축시킨 데 이어 후티를 통해 바브엘만데브를 두 번째 압박 지점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바브엘만데브는 홍해와 아덴만을 연결하는 좁은 해협으로 사우디 원유 수출과 상당한 규모의 글로벌 해상 교역이 통과한다.
중동 전문가 파와즈 게르게스는 당시 로이터에 이란이 미국에 두 해협을 동시에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제 위험한 것은 호르무즈뿐 아니라 바브엘만데브도 마찬가지라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후티는 과거에도 바브엘만데브를 통한 세계 교역을 흔들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 2023년 가자 전쟁 이후 홍해에서 상선 공격을 벌이면서 주요 해운사들이 선박을 아프리카 남단으로 우회시켰고, 이에 따라 운송비가 상승했다.
당시 안드레아스 크리그 킹스칼리지런던 안보학과 선임강사는 바브엘만데브가 호르무즈에 이은 이란의 또 다른 '핵 옵션'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이 같은 위험은 '가능성'에 머물렀지만 후티의 해상 봉쇄 선언 이후 홍해 통항량이 감소하고, 11일 바브엘만데브에서 화물선 공격으로 사망자까지 발생하면서 글로벌 해운업계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koinwo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