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백승은 기자 = #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가명) 씨는 1심 재판 시작 전 형사사법포털(KICS)로 정보를 접하려고 했으나 접속에 어려움을 겪었다. 차선책으로 법원 '나의 사건검색'에서 사건번호를 검색했다. 그때 처음으로 피해자가 반성문을 제출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피고인의 반성문이 정작 당사자에게 도달하지 않은 셈이다. 사건 피해자는 피고인의 반성문 내용도 바로 볼 수 없고, 재판부에 별도로 열람 신청을 거쳐 허가 후에야 읽을 수 있다.
김씨 경우처럼 사건 피해자는 반성문 뿐만 아니라 공소장, 증거목록, 변호인 법률의견서 등 핵심 소송서류 대부분의 정보 접근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재판 당사자인 피고인 측에는 곧바로 제공되지만 피해자는 일일이 열람·등사를 신청하고 재판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같은 정보 격차에 대해 공론화가 이어지자 피해자의 재판 기록 열람 신청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뉴스핌이 손솔 진보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대법원의 '피해자 열람등사 관련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의 공판·속기록 열람 신청 건수는 지난해 종이사건은 248건에 불과했으나 올해 1~6월 2681건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전자사건 신청 건수도 138건에 달했다. 지난해 말 피해자의 재판 기록 열람 및 복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형사소송법(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형소법 개정에도 불구 피해자들의 공판·속기록 열람 신청은 40% 가까이 불허됐다.
형사재판에서 당사자는 검사와 피고인이기 때문에 피해자는 사실상 외부인이다. 이에 따라 재판의 시작점인 검사의 공소장도 피고인에게는 자동 송달되지만 피해자는 판사에게 열람·등사 신청 후에야 받아볼 수 있다.
전다운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피해자가 피고인 사건에 참여하는 방법은 오직 검사나 판사를 통해 정보를 받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공판일정을 비롯한 각종 소송기록 역시 마찬가지다. 판사가 허가하지 않을 경우에도 불허 이유에 대해 들을 수 없다.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인 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불법 촬영 사건에서 피해자 특정을 위해 불법 촬영된 사진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는데 수사기관에서 요청에 응하지 않아 재차 요구해 겨우 받아보거나, 약물성범죄 사건에서 어떤 약물이 사용됐는지 공개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재판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지난해 12월 판사가 피해자의 재판 기록 열람 및 복사를 원칙적 허용하게 하는 형사소송법(형소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 개정으로 국가안보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열람·등사가 허용됐고, 소송기록 외에도 증거보전서류 및 기소 후 검사 보관 증거기록도 열람·등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만약 열람·등사가 불허되거나 조건부 허가될 경우, 이유를 통지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한계는 분명하다. 올해 1~6월 열람·등사 신청 138건(전자사건 기준) 중 47건은 불허됐다. 종이사건은 전산적으로 데이터가 관리되지 않아 몇 건이 허가되고 불허됐는지조차 알 수 없다. 불허 사유도 데이터가 별도로 없어 베일에 싸여 있다.
전 변호사는 법 개정에도 피해자가 사건에 접근하기 어려운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법이 개정됐지만 검사나 판사가 (열람·등사를) 거부할 수 있는 재량을 열어놔서 현실에서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며 "여전히 증거를 보여주지 않거나 피고인 변호인의 법률의견서에 대해 열람·등사를 불허한다"고 꼬집었다.
오는 10월 2일 시행 예정인 형소법 개정안에도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 뿐만 아니라 피해자 수사 기록 열람·등사 관련 내용도 담겼다. 기존 피해자는 검사와 판사에게만 수사기록 열람·등사 신청을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경찰에게도 신청할 수 있다. 다만 경찰 역시 검사와 판사와 마찬가지로 수사 상황에 따라 불허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대다수 법률 전문가들은 실효성 없는 조항이라고 평가한다. 수사 단계의 밀행성·기밀성을 유지하기 위해 경찰이 열람·등사 불허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실무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조항"이라며 "그간 검사와 법원의 열람·등사를 쉽게 불허했던 관행에 비춰볼 때 실효성 있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전 변호사는 "(피해자 수사기록 열람·등사 제도를) 마치 '허가제'처럼 운영하는 셈"이라며 "수사를 지휘한 경찰이 수사기록 열람·등사에 대한 결정권도 가지는 것인데, 경찰로서는 허가해 줄 이유가 없지 않냐. 실효성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애초에 피해자의 형사절차상 권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확대할지 논의해야 했는데, 검사의 수사권 박탈만 논의하다 보니 피해자로서는 중요한 권리가 (형소법 내에) 기형적인 형태로 포함됐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신 변호사는 "형사재판은 민사재판과 달리 가해자의 진술조서 등에 대해서는 밀행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다만 피해자 열람등사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마련해 피해자의 재판 접근성을 높일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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