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등 수익성이 높은 제품에 생산능력을 집중하는 사이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PC·스마트폰용 범용 D램 시장의 틈을 파고들고 있다. 당장은 메모리 공급 부족이 CXMT에 기회를 주고 있지만 글로벌 고객사 인증을 확보한 뒤 가격을 낮춰 물량 공세에 나설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존 고객 기반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아이폰과 맥북에 CXMT D램을 탑재하기 위한 제품 테스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중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중심으로 적용 가능성을 살펴보는 단계다. HP와 에이서 등 PC 업체들도 이미 미국 외 지역에서 판매하는 일부 제품에 CXMT 메모리를 사용하고 있다.
◆공급난 타고 고객사 뚫고…다음 무기는 '가격'
CXMT가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는 극심한 메모리 공급 부족이다. AI 서버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업체들은 HBM과 서버용 D램에 생산능력을 우선 배정하고 있다. 그만큼 PC와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범용 D램 물량은 빠듯해졌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2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이 전분기보다 58~63%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라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에서 필요한 물량을 확보했을 고객사들이 공급처를 CXMT까지 넓힐 이유가 생긴 셈이다. 현재 CXMT 제품이 반드시 기존 업체보다 싼 것은 아니다. 공급 부족과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비용 탓에 일부 제품은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싼 중국산'보다 '구할 수 있는 D램'이라는 점이 CXMT의 경쟁력에 가깝다.
하지만 이번 공급난을 통해 글로벌 고객사의 품질 인증을 받아두면 이후에는 가격이 무기가 될 수 있다. 후발주자인 CXMT가 생산능력을 늘린 뒤 가격을 낮춰 물량 확보에 나설 경우 완제품 업체 입장에서도 원가 절감 효과를 외면하기 어렵다. 두 번째·세 번째 공급사로 진입한 뒤 점차 공급 비중을 높이는 전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CXMT의 외형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CXMT의 D램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716% 증가했다. 삼성전자 39%, SK하이닉스 26%, 마이크론 25% 등 기존 3사와는 아직 큰 차이가 있지만 생산능력 확대와 중국 내수 수요를 발판으로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애플이 문 열면 빅테크도 움직인다…미국 규제가 '방어선'
특히 애플의 선택은 CXMT의 글로벌 확산 속도를 가를 변수다. 애플은 부품업계에서 품질과 대량 공급능력을 까다롭게 검증하는 고객사로 꼽힌다. CXMT가 애플 공급망에 실제 진입할 경우 다른 스마트폰·PC 업체에도 '검증된 공급사'라는 신호를 줄 수 있다. 지금까지 중국산 메모리 도입에 부담을 느꼈던 글로벌 빅테크의 진입 문턱까지 낮아질 수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다. 미국 정치권은 이미 애플의 CXMT 사용 가능성에 제동을 걸고 있다. 미 공화·민주 양당 상원의원들은 지난달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CXMT 제품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며 중국 판매 제품에 한정하더라도 향후 글로벌 제품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다만 규제가 CXMT의 확산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이나 미국 외 지역에서 판매하는 제품부터 적용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나눌 수 있어서다. 특히 공급난이 완화된 뒤 CXMT가 기존 업체보다 확실히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면 규제 부담보다 원가 절감 효과를 우선 고려하는 업체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과제도 분명해졌다. 수익성이 높은 HBM과 서버용 D램 중심 전략을 유지하되 범용 D램에서 중국 업체가 고객사를 선점하지 못하도록 기존 PC·스마트폰 업체와 공급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CXMT와 가격 차이가 지나치게 벌어지지 않도록 생산량과 제품 구성을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 메모리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워낙 물량이 부족해 고객사들이 CXMT까지 공급처를 넓히는 측면이 커 당장 국내 업체에 큰 위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이번에 글로벌 고객 인증을 확보한 뒤 생산능력을 늘리고 가격을 낮춰 물량 공세에 나선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HBM과 서버용 D램의 수익성을 가져가면서도 범용 시장의 고객 기반을 중국 업체에 내주지 않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mky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