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의 충격적인 장면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재난의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고, 교훈은 제도 속에서 무뎌지기 쉽다.
우리가 9·11을 다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증오와 공포를 되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날 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바꿔야 했는지를 되짚어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기억은 추모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대비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으로 여객기 두 대가 잇따라 돌진했고 또 다른 여객기는 미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을 공격했다. 네 번째 여객기인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은 승객과 승무원들이 납치범들에게 맞서면서 펜실베이니아의 들판에 추락했다. 이날 하루 2977명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는 미국인만이 아니었다. 90개가 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그날 뉴욕과 워싱턴, 펜실베이니아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로부터 25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도 조금씩 흐려지고 모호해진다. 2001년에 태어나지 않았던 세대가 이미 성인이 됐다. 당시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쌍둥이빌딩이 무너지는 장면을 지켜봤던 사람들에게도 이제 9·11은 25년 전의 일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의식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비극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증오를 되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9·11을 재난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질문이 생긴다.
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네 대의 민간 여객기가 동시에 납치되는 상황을 막지 못했는가. 왜 정보기관과 관계기관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위험 신호가 하나의 판단으로 연결되지 못했는가. 그리고 공격이 시작된 뒤 경찰과 소방, 항만청과 응급의료기관은 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공유하지 못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미국은 초당적으로 9·11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의 최종보고서는 테러 자체뿐 아니라 정보 공유, 지휘 체계, 통신, 민간의 대비, 재난 대응 전반을 들여다봤다.
위원회는 대규모 재난에서는 개별 기관의 능력만으로 부족하며, 여러 기관이 함께 움직이는 통합 지휘 체계와 상호 운용 가능한 통신 체계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눈여겨볼 것이 통신 문제다.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 펜실베이니아 추락 현장처럼 서로 다른 장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문제가 기관 간 통신의 어려움이었다. 9·11위원회는 경찰과 소방, 연방·주·지방기관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통신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재난 현장에서 정보가 끊기면 지휘도 끊긴다. 지휘가 끊기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정보만으로 판단한다. 결국 몇 분의 통신 두절이 수십 명, 수백 명의 생명과 연결될 수 있다. 이것은 테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홍수와 산불, 지진과 대형 화재, 건축물 붕괴도 마찬가지다. 재난이 커질수록 소방만 움직이지 않는다. 경찰과 지방정부, 의료기관, 군, 전기·통신·가스기관, 민간기업까지 동시에 움직인다. 이들이 하나의 상황을 공유하지 못하면 각 기관은 열심히 움직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엇박자가 날 수 있다.
그래서 재난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비의 숫자만이 아니다. 누가 지휘하는가, 누가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그 정보가 현장까지 얼마나 빨리 전달되는가가 중요하다.
9·11위원회가 전국의 재난대응기관에 사고지휘체계(Incident Command System)를 채택하고 여러 기관이 참여할 경우 통합 지휘를 운영하도록 권고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또 하나 중요한 교훈이 있다. 재난이 일어났을 때 처음 구조에 나서는 사람은 반드시 국가기관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9·11위원회는 민간 부문의 대비를 별도로 강조했다. 대피 계획, 통신 수단, 업무 연속성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계무역센터와 같은 민간 건축물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건물 관리자와 회사 직원, 시민이 사실상 가장 먼저 대응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테러 이후 시행된 소방안전교육과 대피훈련, 계단 조명 개선 등은 2001년 9·11 당시 수많은 사람이 건물을 빠져나오는 데 도움을 줬다.
여기에는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최신 장비를 도입하고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일을 먼저 생각한다.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결국 생명을 지키는 것은 평소의 준비다. 비상계단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것, 대피훈련을 해보는 것, 기관끼리 무전기가 연결되는지 실제 상황을 가정해 확인하는 것, 책임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누가 지휘를 이어받을지 정해놓는 것.
이런 준비가 평상시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이번 거제의 기록적인 호우도 같은 교훈을 남겼다.
지난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거제에는 956.1㎜의 비가 내렸고 시간당 최대 강수량은 124.5㎜에 달했다. 기상관측 이래 최대 수준의 폭우로 산사태와 도로 파손, 주택·학교·전통시장 침수 등 큰 피해가 발생했고, 결국 거제시 전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선포됐다.
예보와 관측, 하천 수위와 산사태 위험정보가 현장에 얼마나 빨리 공유되고 위험지역 주민을 얼마나 선제적으로 대피시키느냐가 피해 규모를 좌우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한 재난이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겪었다. 이태원 참사를 겪었고 대형 산불과 지하차도 침수, 집중호우와 산사태도 겪었다. 재난의 종류는 서로 다르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뒤 조사보고서를 읽어보면 비슷한 말이 반복된다.
위험 신호가 있었지만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다. 초동 대응이 늦었다. 기관 사이의 책임과 지휘가 명확하지 않았다. 대피가 늦었다.
매뉴얼은 있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재난의 진짜 교훈은 사고가 일어난 뒤 얼마나 많은 제도를 만들었느냐가 아니다.
같은 문제가 다음 재난에서는 반복되지 않았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뉴욕의 9·11 메모리얼에서는 해마다 희생자의 이름을 한 사람씩 읽는다. 2977이라는 숫자를 읽는 것과 2977명의 이름을 읽는 것은 다르다.
숫자는 통계가 되지만 이름은 한 사람의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으며, 아들과 딸이었고 함께 일하던 동료였다. 그래서 기억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억은 추모식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재난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날의 슬픔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무엇을 놓쳤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다르게 행동할지를 준비하는 것이다.
필자는 재난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한 가지를 분명히 느낀다. 재난에는 사후약방문보다 사전 대비가 훨씬 중요하다. 최첨단 장비와 거대한 조직도 필요하지만 위험을 미리 알아채고 정보를 공유하며 선제적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체계가 더 중요하다.
재난은 우리가 예상하는 모습으로만 찾아오지 않는다. 2001년 9월 10일까지 누구도 민간 여객기를 이용해 미국의 심장부를 동시에 공격하는 방식으로 21세기의 첫 대형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고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것은 과거의 사고를 그대로 가정하는 것만이 아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까지 상상해 보는 힘이다.
25년 전 9·11이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교훈도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억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그러나 기억하기만 하고 바꾸지 않아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희생자를 가장 제대로 기억하는 방법은 그들의 죽음을 교훈으로 남기는 것이다. 그 교훈을 제도로 만들고, 훈련으로 익히고, 현장에서 작동하게 하는 것이다. 9·11테러가 일어난 지 25년. 시간은 흘렀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는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비극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음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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