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남정훈 기자 =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은 이강인(AT 마드리드)을 억지로 자신의 축구에 끼워 맞출 생각이 없다. 오히려 이강인이 가장 잘하는 위치에서 자유롭게 뛰게 하고, 황인범(FC포르투)에게는 후방과 공격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기면서 자신이 원하는 축구의 완성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모레노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28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루과이와 평가전을 치른다. 지난 24일 에콰도르와의 데뷔전에서 3-0 완승을 거둔 모레노호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7위 우루과이를 상대로 두 번째 시험대에 오른다.
이번 경기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이강인과 황인범의 가세 여부다. 두 선수는 에콰도르전에서 나란히 출전 명단에서 제외됐다. 당시 모레노 감독은 불편함과 근육 과부하가 있어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강인은 우루과이전을 하루 앞두고 자신의 몸 상태가 좋다고 직접 밝혔다.
두 선수가 빠졌음에도 한국은 에콰도르를 3-0으로 완파했다. 하지만 경기 내용을 들여다보면 황인범과 이강인이 들어왔을 때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지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도 많았다. 특히 전반 공격 전개에서 나타난 답답함은 두 선수의 장점을 떠올리게 했다.
후반에야 풀린 '중앙', 황인범이 처음부터 열 수 있다
에콰도르전에서 모레노는 4-4-2를 꺼냈다. 손흥민(LAFC)-오현규(베식타시)가 투톱을 구성하고 송민규(CD 나시오날)-이재성(마인츠)-박진섭(저장)-정승원(FC서울)이 중원에 섰다. 조현택(울산)-김민재(바이에른 뮌헨)-이한범(클뤼프 브루게)-설영우(아우크스부르크)가 포백을 구축했다. 한국은 3선부터 최전방까지 간격을 좁히고 공을 잃으면 가까운 선수들이 즉시 달려드는 압박으로 에콰도르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수비와 달리 전반 공격은 답답했다. 이재성이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면 박진섭에게 후방 연결 부담이 쏠렸고, 김민재와 이한범이 공을 잡았을 때 상대 1차 압박 뒤에서 받아줄 선수가 부족했다. 손흥민이 직접 내려와 공격을 시작하거나 센터백에서 측면으로 공을 보내는 장면이 반복됐다.
후반에는 이재성이 중앙 미드필더 본연의 위치에서 볼 순환에 더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센터백이 공을 잡았을 때 중앙에 패스 선택지가 생겼고, 에콰도르 미드필더가 이를 차단하기 위해 나오자 그 뒤 공간까지 열렸다. 한국은 중앙으로 상대를 끌어들인 뒤 측면으로 넓혔다가 다시 가운데를 공략하면서 공격의 속도를 높였다.
황인범이 돌아온다면 이런 과정을 경기 시작부터 구현할 수 있다. 황인범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히 패스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압박이 어디에서 들어오는지 확인하고 다음 패스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는 능력이다. 센터백 앞까지 내려와 빌드업을 시작할 수도 있고, 상대 1차 압박 뒤로 이동해 한 번의 패스로 공격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김민재에게도 황인범의 존재는 중요하다. 에콰도르전 선제골처럼 김민재는 상대 라인 사이로 과감하게 전진 패스를 넣을 수 있는 센터백이다. 황인범이 상대 미드필더 사이에서 공을 받을 수 있다면 김민재→황인범으로 이어지는 패스 하나만으로 상대의 첫 압박선을 넘어설 수 있다.
에콰도르전 후반에야 만들어진 센터백→중앙→전방의 세로축을 황인범이 처음부터 열어주는 그림이다.
"다른 곳에서 쓰는 건 무모"…달라질 이강인 사용법
이강인의 활용법은 더 흥미롭다. 모레노 감독이 우루과이전을 하루 앞두고 상당히 명확한 힌트를 줬기 때문이다.
모레노 감독은 27일 기자회견에서 이강인이 소속팀 AT 마드리드에서 보여주는 좋은 모습을 대표팀에서도 이어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강인을 자신이 가장 잘하는 곳과 다른 위치에 배치하는 것은 자신이 "경솔하고 무모한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강인은 이번 시즌 아틀레티코에서 4-4-2의 전방 공격수와 오른쪽 측면을 오가며 리그 7경기 2골 1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모레노의 발언은 아틀레티코에서처럼 이강인을 공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루과이전에서는 이강인을 단순히 에콰도르전 정승원의 오른쪽 자리에 그대로 넣는 그림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손흥민과 함께 전방에 배치되거나, 오른쪽에서 출발하더라도 공격할 때 중앙으로 들어와 사실상 세컨드 스트라이커나 플레이메이커처럼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이강인이 안으로 들어오면 모레노의 4-4-2는 공격할 때 전혀 다른 모양이 된다. 설영우가 오른쪽 폭을 확보하고 이강인은 상대 미드필더와 수비수 사이에서 공을 받을 수 있다. 상대 중앙 미드필더가 이강인을 따라가면 황인범에게 공간이 생기고, 풀백이 안으로 좁히면 설영우가 측면에서 자유로워진다.
결국 모레노가 원하는 것은 이강인에게 새로운 역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강인이 가장 위협적인 위치에서 공을 잡을 수 있도록 주변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황인범이 뿌리고 이강인이 푼다
두 선수가 동시에 출전하면 더욱 흥미로운 패스길이 만들어진다. 황인범이 후방에서 공격 방향을 결정하고 이강인이 상대 수비라인 앞에서 공을 받는 구조다. 황인범이 상대 1차 압박을 통과시키면 이강인은 상대 미드필더와 수비라인 사이에서 전방을 바라보며 공을 잡을 수 있다.
김민재→황인범→이강인→손흥민. 한국이 보유한 최고의 패서와 공격수를 중앙에 하나의 선으로 연결할 수 있다. 황인범을 잡기 위해 상대 미드필더가 전진하면 이강인이 그 뒤에서 자유로워지고, 이강인을 막기 위해 수비가 앞으로 나오면 손흥민이 뒷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여기에 설영우가 바깥쪽을 올라가면 우루과이는 중앙과 측면 중 어느 한쪽을 내줄 수밖에 없다.
오현규를 활용하면 또 다른 그림이 가능하다. 오현규가 센터백을 등지고 받아주거나 한쪽으로 움직여 수비수를 끌어내면 이강인이 그 공간으로 침투할 수 있다. 반대로 이강인이 내려와 센터백을 끌어내면 오현규가 뒷공간을 노릴 수 있다.
이는 에콰도르전에서 모레노가 보여준 중앙 활용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은 단순히 측면에서 크로스를 반복하기보다 중앙으로 상대를 좁힌 뒤 측면을 열고, 다시 중앙으로 들어가는 공격을 시도했다. 황인범과 이강인은 바로 그 과정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선수들이다.
에콰도르전 선제골도 김민재의 전진 패스에서 시작해 송민규를 거쳐 오현규까지 빠르게 연결됐다. 모레노가 원하는 것은 패스를 위한 패스가 아니다. 공간이 생길 때까지 공을 움직이되 길이 보이면 과감하게 앞으로 향한다. 황인범의 전진 패스와 이강인의 창의성이 필요한 이유다.
모레노가 원하는 '스스로 답을 찾는 선수'
모레노 감독의 27일 기자회견에는 두 선수의 활용법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힌트도 있었다. 모레노는 대표팀처럼 시간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코칭스태프가 경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대한 답을 선수들에게 미리 알려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경기장에서는 선수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레노는 그런 능력을 가진 선수를 뽑는 것도 코칭스태프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황인범과 이강인은 이 철학과 잘 맞는다. 상대가 압박하는 위치에 따라 황인범이 내려갈지 올라갈지 결정하고, 이강인은 측면과 중앙 가운데 어디에서 공을 받아야 상대 수비를 흔들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감독이 일일이 움직임을 지시하지 않아도 경기 안에서 스스로 패스길을 찾아낼 수 있는 선수들이다.
이강인 역시 모레노의 축구에서 느낀 점으로 '팀워크'를 가장 먼저 꼽았다. 이강인은 에콰도르전을 관중석에서 지켜본 뒤 모레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모든 선수가 팀을 위해 뛰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소집 첫날부터 감독이 원하는 축구를 선수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했고, 자신은 스페인어로 직접 소통할 수 있어 이해하기 편했다고도 밝혔다.
공격력보다 중요한 '공을 잃은 다음'
다만 이강인과 황인범이 들어온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루과이전에서 가장 유심히 봐야 할 것은 두 선수가 공을 가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 공을 잃은 직후일 수 있다.
에콰도르전에서 정승원과 박진섭의 가치는 볼이 없을 때 컸다. 전방에서 압박이 시작되면 빠르게 거리를 좁혔고, 첫 압박이 실패하면 다시 4-4-2 두 줄을 만들었다. 특히 정승원은 후반 시작 직후 강한 압박으로 상대의 공을 빼앗아 코너킥까지 만들어냈다.
이강인이 중앙으로 들어가고 설영우까지 높은 위치로 올라간 상태에서 공을 빼앗기면 오른쪽 뒤에는 넓은 공간이 생길 수 있다. 황인범까지 공격에 가담한 상황이라면 중원에서도 상대 역습을 한 번에 차단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결국 이강인의 자유에는 주변 선수들의 움직임이 따라야 한다. 이강인이 안으로 들어가면 설영우가 폭을 확보하는 동시에 누군가는 그 뒤를 보호해야 하고, 황인범이 전진하면 다른 중앙 미드필더가 균형을 잡아야 한다. 공을 잃은 순간에는 이강인과 황인범 역시 예외 없이 즉시 압박에 참여해야 한다.
이강인이 강조한 '11명이 모두 팀을 위해 뛰는 축구'가 바로 여기서 시험받는다. 공격에서는 이강인에게 자유를 주더라도 수비에서는 모레노가 에콰도르전에서 보여준 집단적인 압박 원칙 안에 들어와야 한다.
에콰도르전에서 뼈대, 우루과이전에서 '완전체'
에콰도르전에서 모레노는 자신의 축구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보여줬다. 4-4-2를 기반으로 선수 사이의 간격을 좁혔고 공을 잃으면 즉시 압박했다. 공을 되찾은 뒤에는 중앙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상대가 흔들리면 불필요하게 패스 숫자를 늘리지 않고 빠르게 골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경기에는 대표팀에서 가장 뛰어난 패서 두 명이 없었다. 황인범이 돌아오면 후방에서 공격으로 넘어가는 첫 번째 패스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이강인이 들어오면 그 패스를 받은 뒤 상대 수비를 흔들고 마지막 선택을 하는 방식이 다양해진다. 황인범이 길을 만들고, 이강인이 그 길 끝에서 수비를 푸는 그림이다.
여기에 손흥민과 오현규의 움직임, 김민재의 전진 패스, 설영우의 측면 가담까지 결합하면 에콰도르전 후반에 확인했던 중앙 공략은 한층 정교해질 수 있다. 반대로 공격적인 선수 구성이 에콰도르전에서 보여준 즉시 압박과 수비 간격을 흐트러뜨린다면 모레노에게 새로운 숙제가 생긴다.
그래서 우루과이전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이강인이나 황인범의 공격포인트만이 아니다. 황인범이 모레노호의 공격을 얼마나 빠르게 앞으로 보내는지, 이강인이 그 패스를 어느 공간에서 받아 어떤 선택지를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공을 잃은 뒤에도 에콰도르전의 압박 구조가 유지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에콰도르전이 모레노 축구의 뼈대를 확인한 경기였다면 우루과이전은 그 뼈대에 핵심 자원들을 처음 얹어보는 시험이다. 황인범이 뿌리고 이강인이 푸는 축구가 구현된다면, 이제야 비로소 모레노가 그리고 있는 한국 축구의 '완전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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