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황혜영 기자 =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서·논술형 문항을 도입하는 방안을 공론화하면서 교육계의 찬반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30일 교육계에 따르면 국교위가 최근 국민참여위원 18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미래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대입제도' 숙의에서 수능에 5지선다형 문항과 함께 서·논술형 문항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은 55.5%로 집계됐다. '불필요하다'는 응답도 41.7%에 달했다.
특히 숙의 전 58.3%였던 도입 필요 응답은 토론 뒤 55.5%로 2.8%포인트 낮아졌다. 서·논술형 평가의 교육적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제 수능 도입에 필요한 조건을 살펴본 뒤에는 우려가 커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최대 쟁점은 채점 공정성이다. 숙의 참여자 가운데 48.3%는 서·논술형 수능 도입 시 우려되는 문제로 채점 공정성을 꼽았다. 학교교육만으로 대비하기 어렵거나 사교육이 확대될 수 있다는 응답은 각각 13.9%, 대규모 답안을 단기간에 채점하기 어렵다는 응답은 11.1%였다.
서·논술형 평가는 수험생이 답을 직접 쓰고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인 만큼 같은 취지의 답안이라도 표현과 접근 방식에 따라 채점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대입 당락을 가르는 수능에서 채점자에 따른 점수 편차가 발생할 경우 시험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교원단체들은 채점 기준 공개, 복수채점과 재채점, 이의신청 절차, 전문 채점관 확보 등을 도입 이전에 갖춰야 한다고 요구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수능은 전국 수십만 명의 합격과 불합격을 좌우하는 국가 단위 선발시험"이라며 "채점자 간 편차, 복수채점·재채점, 이의신청, 대규모 채점인력 확보 등 공정성과 신뢰도 확보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도 지난 18일 성명을 내고 "2037년이라는 숫자가 교원을 충원하고 채점의 공정성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며 시행 시점보다 전문 채점관 확보, 복수채점, 평가 민원 대응, 이의제기 절차 등 선결 조건과 시행 유보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논술형 평가의 공정성은 정교한 채점 체계로 관리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은 "서·논술형 평가의 공정성은 채점자 개인의 주관성을 완전히 없애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발생할 수 있는 편차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이어 "평가원이 시행하는 중등교사 임용시험도 채점위원 워크숍과 가채점, 채점 기준 수정·보완, 3인 독립채점 절차를 통해 채점자 간 신뢰도를 관리하고 있다"며 수능에도 공통 루브릭과 기준답안, 교차·제3 채점 등 다층 검증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교육 유발 가능성도 문항 형식보다 제도 설계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백병환 사걱세 정책대안연구소 정책팀장은 "정답과 풀이 절차, 답안 형식이 고정될수록 반복 훈련이 점수 차이로 이어져 사교육이 표준화된 상품을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서·논술형 수능의 성패는 학생들이 교실에서 읽고 쓰고 토론하며 충분히 피드백 받을 수 있는 교육 여건을 먼저 갖추는 데 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서·논술형 평가를 하려면 학급당 학생 수를 크게 줄이고 교사 수업도 토의·토론과 학생 개별 피드백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교사의 채점과 피드백에 드는 시간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은 줄이고 교원도 감축하면서 더 높은 수준의 수업과 평가를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현장 지원 없이 평가 방식만 바꾸면 학교는 형식적으로 운영하고 실질적인 논술 준비는 학원에서 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AI 자동채점에 대해서도 "수능처럼 진학과 당락에 직접 영향을 주는 고부담 시험에 도입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AI를 활용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사람이 책임지고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국교위가 도입 시점부터 정하기보다 재원과 인력 확보 방안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그는 "서·논술형 평가에 필요한 추가 교원 수와 예산 규모를 먼저 산출하고 관계 부처와 교원 정원 및 재원 확보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며 "이런 준비 없이 시행 시점만 정하면 부담은 결국 학교 현장에 떠넘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교위 숙의에서도 도입 시점에 대한 신중론이 나타났다. 2037~2038학년도 도입이 적절하다는 응답은 숙의 전 22.8%에서 숙의 후 39.4%로 늘어난 반면 2033~2034학년도 도입을 택한 비율은 31.1%에서 21.7%로 낮아졌다.
박 교수는 "내년 초등학교 1학년부터 수업과 평가 방식을 단계적으로 바꾸고 예산·교원 확충을 병행해야 한다"며 "10~12년간의 준비와 적응 과정을 거친 뒤 수능 적용을 논의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국교위는 숙의와 현장 토론회, 온라인 의견수렴 결과를 토대로 대입제도 개편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hyeng0@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