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9월 30일 울산 HD현대중공업 조선소. 김혜경 여사가 함체에 연결된 진수줄을 끊었다. 진수식에서 주빈의 부인이 진수줄을 자르는 것은 오랜 관례다. 그 줄이 끊어지는 순간, 대한민국 해군이 19년간 여섯 척으로 이어온 '미국형 이지스 구축함' 건조 프로젝트도 함께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진수한 정조대왕급 3번함 대호(大虎) 김종서함은 2007년 세종대왕함으로 시작된 국산 이지스함 6척 건조 계획의 마지막 배다. 길이 170m, 폭 21m, 경하톤수 약 8200t. 앞으로 울산 미포만에서 이지스 구축함 진수식은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다음 차례는 전혀 다른 배,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이다.
◆세종대왕함에서 대호김종서함까지… '빌려 쓰던 시대'의 종언 = 공교롭게도 6척의 처음과 끝은 같은 자리, 같은 성격의 정권에서 열렸다. 2007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세종대왕함 진수식 연단에서 "연설문을 제대로 읽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벅차다"고 했던 그 울산 미포만에서, 19년 뒤 이재명 대통령이 마지막 배를 띄웠다.
이 대통령은 "빌려 쓰던 시절이 있었고 사다 쓰던 시절도 있었다"며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군함을 스스로 설계하고 건조해 운용하는 국가가 됐다"고 했다.
실제로 이지스함 6척이 해군에 가져온 변화는 '질적'이었다. 세종대왕급 3척(세종대왕·율곡이이·서애류성룡함)은 AN/SPY-1D(V) 레이더로 수백㎞ 밖 북한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하며 한·미·일 미사일 경보 공유의 한 축을 맡았고, 대양해군의 물리적 토대가 됐다.
그러나 탐지는 하되 요격은 못 하는 '눈'에 머물렀다. 정조대왕급 3척(정조대왕·다산정약용·대호김종서)은 여기에 SM-3 계열 요격탄 운용 능력을 더해 '눈과 방패'를 겸했다. 문제는 그 핵심인 이지스 전투체계·SPY 레이더·SM 계열 유도탄이 모두 미국산이라는 점이다. 개량도, 정비도, 수출도 우리 뜻대로 할 수 없었다.
◆KDDX의 '심장·눈·주먹'… 엔진은 롤스로이스에서 GE로 = KDDX는 그 구조를 뒤집는 배다. 총사업비 7조8000억원을 들여 7000t급 6척을 건조한다. 길이 159m, 폭 20m, 경하배수량 7100t, 승조원 158명. 선도함은 2032년 말 인도, 2036년까지 6척 전력화가 목표다. 관건은 세 가지, 엔진과 레이더와 미사일이다.
엔진은 판이 바뀌었다. 기본설계 단계에서 유력했던 롤스로이스 MT30 대신 GE에어로스페이스의 LM2500+G4가 최종 낙점됐다. 6척에 12기, 척당 2기로 합산 출력 70.64MW(9만4720마력)급이다. 기존 LM2500과 같은 설치 면적을 유지하면서 공기 유량을 33% 늘렸다. 여기에 강철 대비 2500㎏ 이상 가벼운 복합재 인클로저가 적용되는데, 이 외함은 부산 앤알텍이 생산하고 엔진 부품 제조·조립·정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맡는다.
추진 방식도 국내 수상함 최초의 통합전기추진(IFEP)이다. 가스터빈으로 전기를 만들어 25MW급 추진전동기를 돌린다. 소음이 줄고 함내 전력에 여유가 생겨 향후 레이저 같은 고에너지 무기를 감당할 수 있다. 다만 국내 수상함에 검증 이력이 없는 방식이라는 점이 부담이다.
레이더는 지난 9월 26일 실물이 처음 공개됐다. 한화시스템이 개발 중인 다기능위상배열레이다(MFR)를 4면 고정형으로 통합마스트에 심었다. 360도 전 방향의 다수 위협을 동시에 탐지·추적하고, 마스트 외벽을 경사면으로 둘러 적 레이더파를 흘려보낸다. 미 해군이 이지스 전투체계 개발에 쓰는 CSEDS에 준하는 육상시험장(LBTS)도 함께 구축한다. 국산 전투체계를 '이지스급'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미사일은 발사대부터 국산이다. 지난해 9월 개발을 마친 한국형 수직발사체계 KVLS-II는 기존 KVLS보다 면적 180%, 길이 120%, 탑재중량 185%가 늘었다. KDDX는 전방 48셀·후방 16셀 규모로 KVLS-I/II를 혼합 탑재하며, 록히드마틴(원개발은 마틴마리에타)이 제작한 미 해군의 표준 수직발사체계(VLS) Mk.41은 싣지 않는다. 미국산 SM-2를 대체할 함대공유도탄-Ⅱ는 L-SAM을 기반으로 개발 중이고, 최근 상세설계검토(CDR)를 마쳤다. 개발사인 LIG D&A는 2030년 체계개발 완료를 목표로 한다.
1조6300억원 규모의 함대함유도탄-Ⅱ 사업도 본격화됐다. 여기에 해궁 대공유도탄, 현무 계열 함대지 미사일, 초음속 대함미사일, 127㎜ 함포, CIWS-Ⅱ가 더해진다. 한마디로 쏘는 것부터 쏘아 올리는 통까지 전부 국산이다.
◆71개월 레이스 시작… K-조선 수출의 '새 얼굴' 될까 = 건조사는 한화오션이다. 2년 넘게 표류하던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계약이 지난 7월 31일 체결됐다. 사업비는 8820억원. 기본설계를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이 수행한 불리한 조건에서도 10여 년간 축적한 전전기(全電氣) 함정 기술이 막판 승부를 갈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와 현대가 마지막까지 피 튀기게 싸운 이유는 분명하다. KDDX는 국내 6척으로 끝나는 배가 아니라, K-조선·K-방산의 수출 주력 모델이 될 배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지난 9월 15일 한화오션을 찾았을 때, 회사 관계자는 "2024년 국내 최초로 미국 MRO 사업을 수주했고, 올해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KDDX 사업을 수주해 굉장히 열심히 설계를 하고 있다"고 했다.
현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사업 기간은 올 7월부터 2032년 6월까지 71개월. 한화오션은 사업안정화 TF를 가동해 제안 내용을 재검토하고, 함정에 탑재될 각종 연구개발 장비의 통합을 위한 연동협의체를 조만간 착수한다. 성능 기준 설정은 내년 1월에서 올 12월로 앞당기고, 기술검토회의(TBR)를 10월과 11월 두 차례로 나눠 진행하며, 상세설계검토인 CDR도 3개월가량 조기 실시하는 일정을 방위사업청과 잡아놨다. 장보고-Ⅲ 배치-Ⅱ와 울산급 배치-Ⅲ·Ⅳ에서 쌓은 체계통합 경험을 KDDX에 그대로 접목하겠다는 구상이다.
물론 위험도 겹겹이 쌓여 있다. 통상 함정은 검증된 장비를 얹어 짓지만, KDDX는 함정과 장비를 동시에 개발한다. 함대공유도탄-Ⅱ의 요격 시험이 밀리거나 레이더·전자전 장비 개발이 지체되면 2032년 선도함 인도가 흔들린다.
그럼에도 이 도전이 성공하면 우리 해군은 외국 기술에 기대지 않고 이지스급 구축함을 설계·건조·정비·개량하는 전 주기 역량을 손에 넣는다. 수출 상담 테이블에 올릴 때 미국의 승인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대호김종서함은 세종대왕 시절 두만강까지 북방 6진을 개척한 김종서 장군의 이름과 그의 별호 '큰 호랑이'를 함께 붙인 배다. 빌려 쓰고 사다 쓰던 시대의 마지막 호랑이가 바다로 나간 날, '이지스함'이 아닌 우리 손으로 만든 '방공구축함'의 시대가 시작됐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