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우동환 기자] 일본은행(BOJ)이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일본 자민당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외신들은 '굴복'이란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BOJ는 20일 회의에서 다음 달 정책회의를 통해 물가 목표치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혀 사실상 조만간 총리로 지명될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의 요구에 굴복하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21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BOJ가 경제에 이익보다 해가 더 클 수 있는 완화정책의 부작용 없이 일본 정치권의 공격적인 요구에 대응해야 하는 힘든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날 BOJ의 시라카와 마사아키 총재는 통화정책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내달 통화정책회의에서는 물가 목표 지침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물가 목표를 재검토하는 것은 단순히 일정에 잡혀있는 연례 전망 때문은 아니라고 언급하면서 아베 신조 총재의 요구에 응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아베 신조 총재는 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 타개를 위해 물가 목표치를 기존 1%에서 2% 수준으로 올려 잡고 제한 없는 완화정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중의원 선거 당시 아베 총재의 이같은 공약에 대해 시리카와 총재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거론하면서 반대 입장을 취한 바 있다.
하지만 이처럼 BOJ가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은 총선에서 드러난 일본의 민의에 어떤 형태로든 응답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전날 BOJ 정책위원들은 물가 목표치의 재설정에 대한 자민당의 요구와 함께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데 동의했다.
다만 일부 정책위원들은 최근 경제의 회복 신호를 감안하면 이같은 조치는 타당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라카와 총재도 이를 의식한 듯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권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아베 신조 총재는 BOJ의 결정에 일단 반기면서도 자민당이 제시한 공약을 단계적으로 실천해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즈노 증권의 우에노 야스나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베의 선거 승리로 BOJ가 정책의 최종 권한을 가지기 어렵다는 점은 확실해졌다"며 "이제 중앙은행이 얼마나 이같은 요구에 견딜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 금융시장은 전날 BOJ 결정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엔화의 가치는 달러에 대해 살짝 상승했으며 주식은 약세로 마감, 채권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이 같은 금융시장의 태도 역시 BOJ에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자민당이 압승한 뒤 닛케이 225 평균주가지수가 손쉽게 1만 선을 돌파한 것은 바로 BOJ의 과감한 완화정책과 이에 따른 엔화 약세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준 것이다.
시라카와 총재는 만약 시장 참여자들이 정부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오인하게 되면 시장이 결국에는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시라카와 총재는 자민당이 요구하는 장기 국채에 대한 매입 요구에 대해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내달 정책회의에서 BOJ가 아베 총재의 요구를 검토하기로 결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라카와 총재가 구체적인 이에 응하겠다는 답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물가 목표 상향도 아직은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시장의 반응은 양날의 검이다. 기대감에 부푼 투자자들이 갑자기 실망하게 되면 상승한 것보다 더 빠르고 큰 폭으로 하락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경고가 제출되는 이유다.
[뉴스핌 Newspim] 우동환 기자 (redwax@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