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선엽 기자] 최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실업률과 연동하는 새로운 기준금리 정책'을 표방한데 이어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 역시 중앙은행의 목표로 '명목 GDP 타겟팅'을 언급함에 따라 향후 한은의 통화정책 방향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당장 명목GDP 타겟팅을 실시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글로벌 통화정책의 전환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한은이 물가관리에 더해 성장까지 직접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성장세 회복을 위해 당장 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가 인하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달 1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기자회견에서 버냉키 의장은 "실업률 6.5%를 달성하거나 물가상승률이 2.5%를 넘기지 않는 한 현재의 '사실상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통화정책의 역사적인 전환"이자 "위험한 실험"이라고 평가하고 나섰다.
비록 "인플레이션율 2.5% 밑에서"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중앙은행의 정책 목표가 물가 안정에서 성장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어졌다는 점에서다.
핌코의 모하메드 엘-에리언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중앙은행과 통화정책의 역사와 교과서를 바꿀 역사적 사건"이라면서 버냉키의 행동주의와 개입주의가 영감을 자극하는 것은 맞지만 그만큼 "매우 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미국의 통화정책 패러다임이 바뀐다면 국제공조를 강조하는 김중수 총재의 성향을 고려할 때 한은 역시 발빠르게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김 총재는 지난 2일 한은 신년사를 통해 "명목 GDP를 목표로 삼는 것이 과연 물가타겟팅보다 더 적절하다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증거가 부족하지만 어느 하나의 잣대에 매달려서 중앙은행을 운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올 초 한은이 발간한 '한국의 통화정책'에서는 "명목GDP가 추세치를 크게 하회하는 상황에서 명목GDP 수준을 목표로 할 경우,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강하게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정책금리 경로에 대한 신뢰성 있는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가 될 수 있다"는 우드퍼드(Woodford)의 주장이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명목GDP 타겟팅을 정식으로 채택하기 위해서는 한국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 따라서 현행 물가안정 목표제를 유지하는 선에서 명목GDP 예상치를 제시하는 수준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총재가 한은 임직원 400여명이 참석한 신년회에서 명목GDP 타겟팅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결국 버냉키와 마찬가지로 한은 역시 물가관리를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성장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실제로 2013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은 "우리 경제의 성장세 회복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영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매달 통방문의 "성장잠재력이 훼손되지 않는 가운데"와는 확연한 뉘앙스의 차이가 느껴진다.
때문에 이번 명목 GDP 타겟팅 언급이 금리인하의 예고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증권 오현석 애널리스트는 "김중수 총재의 명목 GDP 타겟팅 언급은 한은의 통화정책이 정책 조합에 공조할 가능성이 높음을 예고한 것으로 향후 스탠스 전환을 시사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걸림돌은 김 총재의 일정이다. 김 총재는 현재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BIS 총재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5일 출국해 오는 9일 귀국할 예정이다.
금리결정과 관련해 금통위원들 사이에서는 장시간의 토론이 이뤄지고 통상 금통위 전일이면 기준금리가 사실상 결정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오는 11일 개최되는 금통위는 전월과 마찬가지로 '동결' 쪽에 좀 더 무게가 쏠려 보인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