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나는 애플의 주가나 실적, 제품 라인업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얘기해 놓겠지만 나는 애플을 좋아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애플은 제품을 통해 혹은 전략적이고 혁신적인 마케팅을 통해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고 신선한 사고의 전환을 유도해 줬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오랫동안 써 온(아이폰이 나온 이후까지도) MP3 플레이어 아이팟을 서랍 속 깊이 넣으면서 애플이 줬던 환희를 잠시 떠올려 봤다.
새하얀 색의 깔끔한 바탕에 휠 하나, 뒷면엔 한 입 베어먹은 사과 로고 하나 있는 아이팟을 두고 다른 선택을 할 리가 없었다. 마음을 사로잡혔으니까. 하나의 휠로만 조작하는 것은 불편하다기보다 신기했고, 아이튠즈를 통해 체계적으로 음원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랬다. 배터리가 금세 닳고 게다가 내장형이란 건 깨알 만한 불편함이었다. 그게 애플이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마력이었다.
애플 로고(출처=월스트리트저널) |
애플이 중국 하청업체 팍스콘 직원들을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부당하게 부려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자본주의의 논리가 인권보호란 가치를 넘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서 애플에 실망했다. 독선적인 내부 문화도 비로소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전지전능함이 영원한' 리더가 독선적이라면 그래도 된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가?
애국자를 사칭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애플이 삼성전자와 지루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는 결국 애플이 한 때 공룡으로 독점적 지위를 십분 누렸으나 아차 하는 사이에 시대의 흐름을 놓쳐버리고 만 마이크로소프트(MS) 전철을 밟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지난 9월엔 애플이 아이폰 등에 기본으로 탑재됐던 구글 맵을 빼버리면서 구글도 견제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사용자들의 불만에 못이겨 3개월만에 번복하는 해프닝은 쓴웃음을 짓게 했다. 오만하기까지 했던 애플의 자존심은 구겨졌다. 자신감이 부족해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다른 애플 추종자들, 그리고 애널리스트들, 투자자들 모두 비슷한 생각의 과정을 거쳐왔을 것이다. 그러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발표된 애플의 2013회계연도 1분기 실적이 기대에 못미친 것이 불안감을 일시에 터뜨리게 한 트리거(Trigger)가 됐다. 24일 뉴욕 증시에서 애플 주가는 추락하다 못해 매매를 잠시 중단시키는 서킷 브레이커까지 발동시켰다. 애플 주가는 전일대비 12.35% 떨어진 450.50달러로 마감됐다. 주가 1000달러를 바라보던 애플이었다.
'애플 찬가'를 부르던 일단의 애널리스트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
스티븐 밀루노비치 UBS 애널리스트는 이날 "올해는 애플에 있어 성장을 잃은 해가 될 것"이라고 했고, 노무라의 스튜어트 제프리도 "사실 애플에게 있어 성장은 옛일이 됐다"고 했다. 앤더스 애널리시스의 베네딕트 에반스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진퇴양난(Catch-22) 상황을 스스로 발견했다"며 "애플에 대한 모든 뉴스가 나쁜 뉴스"라고 말했다. 투자자들만 혼란스럽게 됐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출처=월스트리트저널) |
쿡 CEO는 애널리스트들과의 만남에서 애플 TV 출시설과 관련해선 힌트를 거의 주지 않았고 "그건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로 보여주고 있는 패블릿(Phablet; 폰과 태블릿의 합성어)은 아닐 것"이라고만 했다. 그리고 "스크린 사이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 왔으며 우리가 택한 것이 옳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또 "매출 자체를 위한 매출엔 관심이 없으며 최고의 제품만을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애플만의 고유한 장점은 이제 거의 없다. 스마트폰 시장은 이제 삼성전자와 레노버, 화웨이가 각축을 벌이고 있고, 애플만큼이나 레노버나 화웨이의 현금창출 능력도 엄청나다.
스티브 잡스의 명 연설 마지막 문구가 떠오른다. 잡스는 자신이 어렸을 적 책에서 읽은 말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를 항상 유념했다. 자신감을 잃고 있다고 해서 약자를 괴롭히거나 공격하거나 하는 짓은 애플답지 않다.
영국 가디언의 경제부문 에디터 하이디 무어도 이런 의견이다. 무어 에디터는 "애플은 새로운 MS가 되려는 위험 속에서 더 크고 깊게 생각해야 한다"며 "냉정하게 혁신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한 때 세계에서 가장 컸던 회사 MS. MS는 이제 위기란 표현도 잘 쓰지 않을 정도로 잊혀져 가고 있다. PC 시장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데도 아직 체질개선을 채 못한 상태로 스마트 시대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언제나 애플 이상의 것을 보여줬던 애플, 그런 애플을 만나고 싶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