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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국제칼럼]완판녀 유감(遺憾)

기사등록 : 2013-03-2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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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완판녀.

통상 여성 연예인과 스타들에게 쓰이는 단어다. 여성 연예인이 입고 나오는 옷이나 액세서리 등이 대중의 큰 관심과 인기를 끌면서 그 제품이 품절되거나 완판되는 사태를 빚을 때 해당 인물을 가리켜 쓰는 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러시아 방문에 동행한 펑리위안 여사의 모습(출처=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러시아 순방에 동행한 펑리위안(彭麗媛)이 완판녀란 기사가 엊그제 일제히 우리 언론들에서 보도됐다. 펑리위안 여사에 대한 기사는 패션과 관련된 것 일색이었다. 지난 22일 첫 방문지인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 들었던 검정색 가죽 핸드백이 중국 토종 브랜드 제품이라고 해서 화제가 됐고, 시진핑 주석이 맨 하늘색 넥타이에 맞춘 듯 비슷한 색상의 스카프를 둘러 '커플룩'을 의도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검은색 가방의 가격은 싸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광저우(廣州)에 있는 리와이(例外)란 토종 브랜드로 알려지면서 중국의 자부심을 드러냈다거나 시진핑 정부가 강조하는 근검절약, 실용주의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런 걸 '패션 정치(외교)'라고들 하지만 어쩐지 "영부인이란 들러리일 뿐인가"란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한 사람들도 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에게 브로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방한했을 때 그는 햇살 모양의 브로치를 달았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현한 것이다.

[누사두아(인도네시아)=AP/뉴시스]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모습.
힐러리 클린턴은 퍼스트 레이디였을 때 거의 치마정장을 입었던 것과는 달리 국무장관 시절엔 바지정장을 고수했다. 바지정장은 거의 원색 계열에 단순한 디자인이었고 특히 파란색의 정치적 함의를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파란색은 미국 민주당을 대표하는 색깔이다. 민낯으로 외국 공식행사에 나갔던 일 역시 "일에 집중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던 것 같다.

참고로 그가 백악관 안주인을 했던 8년 간 즐겨 입었던 건 센존(St.John)이란 브랜드 옷인데, 그가 선호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강남 아주머니들이 교복처럼 많이 입던 우스꽝스러운 시절이 있었다. 물론 이 얘긴 패션 정치와는 거리가 있다.  

미셸 오바마 여사는 자국 중저가 브랜드 제이 크루를 자주 입는다고 해서 '1인 경기부양' 효과를 냈다는 평가도 받았다. 처음 공식 석상에 외국 브랜드 옷을 걸치고 나왔다가 "미국의 고용 창출은 어쩌려고 하느냐"란 맹비난을 받은 뒤 미국 브랜드 옷만 입고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취임식 때엔 감청색(navy blue) 코트는 남성 넥타이를 제작하는데 쓰이는 옷감으로 만들었으며, 평소 그가 보여준 강인하고 열정적이며 또한 서민적이고 실용적인 감각을 모두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킷을 종종 벗어던지고 셔츠를 걷어올린다거나 해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그걸 '패션 정치'라곤 하지 않는다. 대개 '패션 정치'란 말은 여성들에게 쓰이는데, 자주 대중에게 보여질 수밖에 없는 지도자나 정치인, 영부인 등에 대한 뉴스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곤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완판녀'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이 들었다는 핸드백과 지갑, 브로치 같은 것들도 없어서 못 판다고 하니 '완판녀'의 조건에 부합하는 건 맞다. 지난달 박 대통령이 들고 다니는 회색의 타조가죽 가방이 국내의 한 브랜드 제품이란 소문이 났다. 그러자 이 브랜드 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박 대통령측에서 이 브랜드 제품을 갖고 있는게 아니라고 밝혔어도 인기는 여전했다. 한 대형마트에 간 박 대통령의 손에 들려있던 연보라색 지갑도 삽시간에 품절 사태를 빚었다.

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농림수산식품부 업무보고에 참석하고 있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누구보다도 자주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존재이다 보니 대통령의 패션에 관심이 가는 것이야 당연할지 모르겠다. 또 대통령을 완판녀라 지칭했다고 불경죄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이 되었고, 이 정부의 잘못된 인사가 12건에 달하게 됐고 '인사가 망사(亡事)'란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언론의 일부분에선 계속 박 대통령의 차림새나 사생활에 관심을 둔다.
 
'미혼 여성인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이렇게 하루를 보낸다'는 기사도 나온다. 파파라치 언론같다. 이런 뉴스는 일종의 이미지를 만들어 중요한 사안에 대한 분석적 사고를 자꾸 방해한다.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뉴스도 정책을 꼼꼼히 비교하는 '머리 아픈'  경성 뉴스(Hard News)보다는 말랑말랑해서, 때론 비주얼의 힘으로 사람들을 솔깃하게 하는 '패션 비교' 기사가 많이 나오고 그게 정작 분석적이어야 할 대중의 머리를 마취시키곤 한다.

한때 '1억원 피부과' 논란을 빚었던 한 전 여성 국회의원의 경우가 떠오른다. 뛰어난 외모와 재력, 집안 등이 모두 '강남 스타일'이었던 그가 결국 '1억원 피부과' 논란 때문에 '서민 후보'임을 앞세운 다른 후보에게 밀려 시장 선거에서 떨어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외모가 탁월해 눈에 띄니까 고가 피부관리를 받는다는게 '안티'를 폭발적으로 늘린 게 아니냔 얘기다. 외모가 눈에 띄지 않는 다른 여성 국회의원이 만약 1년에 1억원을 내고 피부과에서 관리를 받았다고 한들 그게 뉴스가 됐겠느냐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얼굴이 어떻게 생겼든, 옷을 어떻게 입든, 어떤 핸드백을 들든, 머리핀을 꼽든 머리를 내리든 그것에 자꾸 매달려 침소봉대되는 보도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안들은 대통령의 여성성을 강조하고 연예인처럼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종종 낳는다. 

그리고 이 때문에 대통령의 능력이나 과오가 가려진다. '박근혜 완판녀'란 표현을 어느 매체에서 먼저 썼는 지 모르겠지만 이런 기사가 한 번 나오면 많은 이들의 '클릭'을 유발하게 되고, 타 매체가 추종 보도하거나 후속으로 계속 이런 류의 연성 뉴스(Soft news)를 양산하게 됨으로써 결국 대중이 달은 안 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보도록 만들어버리니 유감이다. 

그게 더 근본적으로는 포털에 '갑(甲)`의 자리를 빼앗기고 어떻게든 잘 보여서 많이 노출되려 하는, 그래야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는 '을(乙)'이 된 매체들의 생존 경쟁 때문이란 것도 안다. 방송 역시 시청률에 매달리니 마찬가지다. 말랑말랑한 뉴스를 미끼로 낚시질해 연명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생존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언론이 영혼을 팔아서야 되겠는가. 언론의 사명은 말랑말랑한 뉴스를 말랑말랑하게 보도하는 게 아니라 딱딱한 뉴스를 어떻게 하면 대중의 귀와 눈에 쏙쏙 들어오게 '말랑말랑하게' 풀어줄 수 있느냐에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언론 스스로가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박 대통령이 사용하는 제품은 검소한 제품들이란 점에서 대통령의 '이미지 만들기'에 있어 바람직한 면도 있어 보인다. 기백만원 하는 핸드백을 즐겨 들고 다닌다거나 외국 브랜드 로고라도 찍혀 있는 지갑을 들었더라면 당장 난리가 났을 거다. 박 대통령의 지갑은 4000원 짜리란다. 실용적이면서도 한국적인 매력이 은근슬쩍 엿보이니 국가원수로서 기품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련히 비서진들이 알아서 하겠냐마는 박 대통령도 기왕 주목받는 김에 패션을 전략적으로 잘 이용하길 바란다. 문제가 되고 있는 불통(不通)이나 고집스러움이 만약 사실이 아니라 이미지에 불과하다면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모습을 연출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게 사실이고 그래서 대형 인사 참사가 일어나고 있는 거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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