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선엽 기자] “엔화 약세가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과거보다 크지 않다.”(1월 금융경영인 조찬 강연회)
“엔저(低)가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부터 시작."(4월 강원도청 아카데미 강연회)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태도가 변했다. 올 초만 해도 엔저를 크게 우려하지 않던 모습은 사라지고 최근 평소 쓰지 않는 형용사까지 써가며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한은 집행부보다도 먼저 엔저주의보를 날렸던 몇몇 금통위원들의 지적이 뒤늦게 부각되면서 향후 한은의 대응책에도 관심이 쏠린다.
◆ 1월 "엔화 갈 수 있는 것, 어느 정도 한계"
올 초만 해도 한은의 입장은 다소 낙관적이었다.
김 총재는 지난 1월 16일 금융경영인 조찬 강연회에 참석해 "엔화의 약세와 원화의 강세로 몇몇 산업은 타격을 입겠지만 과거에 비해 우리산업의 비가격경쟁력이 높아졌고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 보다 크지 않다"며 "엔화 약세가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정도가 과거만큼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엔화라는 것도 갈 수 있는 것이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분석의 배경에는 한은 집행부의 판단이 전제된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엔화약세가 우리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과거보다 제한적일 것이란 입장을 고수해왔다. 우리의 수출시장이 다변화되고 주력 수출품목의 품질·브랜드 인지도 등 비가격경쟁력이 제고됐다는 평가다.
1월 수정경제전망 발표 당시 한은 신운 조사국장은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목의 비가격경쟁력 등을 고려할 때 환율이 큰 폭으로 변동하지 않는 이상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3월 금통위 의사록을 살펴봐도 한은 집행부는 "엔화 약세가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엔화 환율이 지금 수준 정도를 유지할 경우 수출업체의 채산성은 악화되겠지만 전체 수출 증가세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 4월 "엔저, 계속 갈 것…앞으로가 더 문제"
하지만 4월 들어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4일 한은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 "올해 상반기 중 엔화 약세 흐름이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어 엔화가치 변동에 민감한 업종을 중심으로 수출채산성 악화가 우려되며 이에 대응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김 총재의 스탠스도 확연히 달라졌다. 종전에는 과도한 환율의 변동폭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엔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직접적으로 엔저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24일 강원도청에서 열린 '아카데미 강원' 초청 강연에서 "엔저가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만 지금 시작"이라며 "엔저는 계속 갈 것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고 주의 깊게 이 변화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26일에도 "최근 엔저가 더해져서 우리 전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현재 와 있는 것보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우려했다.
◆ 일부 금통위원들, 한은보다 앞서 '엔저주의보' 발령
눈에 띄는 대목은 금통위원들의 활약이다. 2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일부 금통위원들은 한은 집행부의 안일한 인식을 지적하며 일찌감치 엔저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한 금통위원은 "엔화 약세에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업종을 중심으로 우리 기업의 수출경쟁력이 약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엔화 추가 약세가 원화 강세 기조와 맞물리면 외환시장은 물론 실물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위원도 "한은은 엔화 약세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분석했으나 앞으로 수출이 증가해도 가격경쟁력 약화로 채산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비교열위 품목을 중심으로 고전이 예상되는 점 등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금통위원들의 선제적인 경고가 부각되면서 향후 금통위에서 엔저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 또다시 격론이 펼쳐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엔저 대응책으로 거시건전성 정책의 강화를 염두에 두는 모습이다.
다만, 한은이 보유하고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도 분명해 보인다. 한은 국제국 관계자는 "특별히 한은의 어떤 대책을 염두에 두고 총재가 엔저를 언급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경제 전반에 걸쳐 대응책의 필요성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