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동호 기자] '아베노믹스'에 힘입어 지난해 말부터 지속되던 엔화의 약세 기조가 최근 들어 주춤하는 모습이다. 달러/엔 100엔 선에 도달한 뒤에는 추가 엔저가 진행되기를 거부하는 듯 하다.
전문가들이나 투자자들은 한결같이 이제 엔화 추가 약세는 멈출 것이라는 쪽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엔화 약세가 중단되었다는 판단은 아직 시기상조로 보인다. 최근 엔화 강세는 자체 요인보다는 미국 달러화 약세에 의한 요인이 더 크고 특히 달러 약세는 부분적으로 시장의 과도한 기대의 청산과 오해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 2차 엔저 필요조건은 "성장전략 구체화와 재정개혁"
달러/엔 최근 동향(주봉) |
내년으로 예정됐던 소비세 인상을 둘러싼 잡음 역시 엔화의 약세 기대감을 감소시키고 있다. 현재 5%인 일본의 소비세율은 내년 4월 8%, 2015년 10월에는 10%로 인상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오는 10월까지 이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려야한다.
일본 정부는 채무위기 확산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소비세율 인상을 통한 재정건전성 확충을 노리고 있다. 현재 GDP의 10% 수준을 넘나드는 심각한 재정적자와 GDP의 200%를 훌쩍 넘어선 국가부채 등 파탄난 재정을 개선하려면, 조세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은 소비세율 인상을 통해 세수를 늘려야만 한다.
하지만 소비세율 인상은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연결돼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목표인 인플레이션율 2%를 조기에 달성 가능하게끔 할 수 있다. 이 경우 BOJ는 양적완화를 중단하게 되고, BOJ의 양적완화 기대에 힘입어 약세를 보였던 엔화가 다시금 강세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 일본의 경기회복이 기대만큼 빠르지 않은 것도 부담이다. 엔화 약세로 지난해 12월부터 수출은 7개월 연속 증가했으나, 생산활동 개선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산업생산은 6개월째 전년동월대비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으며, 지난 6월에는 전월대비로도 대폭 감소 반전됐다. 소매판매는 2개월 연속 전년동월대비 증가했으나, 소비의 선행지표인 소비자신뢰지수는 5월을 단기 고점으로 2개월 연속 하락했다.
*표: 일본 GDP성장률, 출처: 키움증권 |
일본의 지난 2분기 GDP 역시 전분기 대비 0.6%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분기 0.9% 성장률 및 시장 기대치였던 0.9%를 하회하는 결과다. 엔화 약세에 따른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경제성장이 예상을 밑돌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신한금융투자의 윤창용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세율 인상으로 재정건전성과 인플레이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면 좋겠지만,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미흡한 상황에서 소비세율 인상은 오히려 경기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취약한 재정건전성을 감안할 때, 소비세율 인상을 보류하기도 어렵다"며 "일본 정부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 당분간 달러/엔 변동성, 박스권으로 제한될 듯
결국 소비세율 인상 여부가 결정될 10월까진 엔화의 지속적인 변동성을 감수해야 할 것이란 관측이다.
윤창용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펀더멘탈 개선 정도와 그에 따른 소비세율 인상 여부가 10월까지 달러/엔 환율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펀더멘탈 개선이 지연되고 그에 따라 소비세율 인상이 보류될 시에는 정책 실망감 속에 달러/엔 환율이 현 수준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키움증권의 전지원 스트레티지스트는 "만약 소비세 인상이 지연된다면, 일본 정부부채가 1000조 엔을 돌파한 상황에서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일본 국채 신용등급 하향조정 압력이 거세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경우 국채 금리 상승 위험에 따라 엔화 약세유도를 위한 BOJ의 유동성 공급 모멘텀은 이전보다 완화될 것이란 설명이다.
또한 9월 예정된 글로벌 이벤트들 역시 주목해야한다는 조언이다. 먼저 미 연준이 9월 FOMC회의를 통해 자산매입 규모 축소를 결정할 가능성이 있으며, 미 정부부채의 한도 상향 합의도 예정돼있다.
전 스트레티지스트는 이를 감안할 때 엔화는 박스권 흐름을 보일 수 있다는 예상했다. 그는 "달러/엔 환율은 향후 추세적인 흐름을 나타내기 보다는 이전 저점수준인 95엔과 저항선인 105엔 선에서의 박스권 흐름에서 당분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수 투자자들도 엔화의 약세가 마무리 됐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일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월례 투자자 설문조사 보고서를 통해 거의 모든 투자자들이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은 비롯해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에 걸쳐 있는 77개 채권펀드 운용사들이 아베노믹스 출범 이전 수준으로 엔저 베팅을 축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투자자들의 엔화 약세에 대한 기대감이 소멸되고 있는 것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있는 때문으로 풀이된다.
BK에셋매니지먼트의 캐시 리엔 FX전략부문 책임자는 "한때 2013년 최고의 거래로 각광받던 달러/엔 약세 베팅이 빛을 잃고 있다"며 "6월 최저치인 95엔 부근까지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 해외 IB들, 엔 추가 약세 전망 수정 안 한 배경은
하지만 해외 투자은행들은 최근 환율 변화에도 불구하고 달러화나 유로화 그리고 엔화의 연초 전망을 크게 수정하지 않고 있다. 외환시장의 기대가 변화되고 있지만, 속도가 달라졌을 뿐이지 방향 면에서는 바뀐 게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달러/엔의 경우도 연말 105엔 부근에서 내년 중반까지 108엔 선까지 추가 상승 전망이 유지되고 있다.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가 압승을 거둔 이후 일본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 순투자에 나섰고 해외투자자들은 엔화 선물의 순매도 폭을 넓혔다.
아직 아베노믹스에 대한 신뢰가 더 강화되려면 재정문제를 풀어야 하고 기업의 설비투자를 촉진하는 성장 전략이 구체화되어야 하지만, 이 같은 경로가 꽉 막힌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투자자들의 신뢰가 높아지면 엔화는 자연히 약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JP모간 체이스의 외환분석가는 최근 달러/엔 상승이 중단된 것은 미국 달러화가 양적완화(QE) 축소에 따라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고, 외국인들의 엔 매도세가 적극적이지 않은 것과 일시적인 기대인플레이션 하락과 실질금리 상승 등의 요인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을 감안하더라도 일시적인 영향을 주는데 그칠 가능성이 높고, 세 자릿수 환율로 돌아가기가 힘들 수는 있지만 세계경제의 큰 변화가 아니라면 엔화 가 다시 강세로 돌아서는 일도 생각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김동호 기자 (good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