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권지언 기자] ‘아랍의 봄’ 이후 최악의 사상자수를 낸 이집트 유혈사태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현재의 대치 상황이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일촉즉발의 내전 위기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15일(현지시각)까지 이집트 보건당국이 집계한 사망자수는 638명으로 지난 2011년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축출됐던 ‘아랍의 봄’ 이후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예정이다.
이날 AP통신은 분석기사를 통해 이번 진압사태가 ‘아랍의 봄’ 이후 분열상황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준다면서, 이집트가 내전의 시작을 알릴지도 모르는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갈등의 양 축 중 한쪽은 무슬림 형제단으로 대표되는 강경 이슬람주의 세력이고, 이들의 반대편에는 세속주의자들과 기독교인, 온건 이슬람주의자들이 군부와 손잡은 채 이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AP는 양측의 갈등은 이미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이 축출됐던 7월 3일부터 고조됐지만, 이번달 14일 군부의 유혈진압 조치는 내전을 촉발한 ‘분수령’으로 기록될 지 모른다고 전했다.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세력의 대치 상황은 좀처럼 개선 신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미 이집트의 한 국영 미디어는 무슬림 형제단과 그 동맹 세력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했고, 당국에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주문한 상태.
엄청난 사망자수가 집중됐던 이번 진압사태를 주도한 군부에 대해 국제사회 비난 목소리까지 가중되면서 책임의 화살은 군부를 비롯한 세속주의자들을 향할 수도 있지만, 무르시 축출 이후 무르시 지지자들과 무슬림 형제단들의 시위 역시 상당히 잔인하고 지속적으로 전개됐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시위대는 무르시 축출 이후 한 달 넘게 시위를 이어가며 도로를 점거하고 공공 건물들에 대한 수류탄 공격을 서슴지 않는 등 시민들의 일상 생활에도 불편을 초래했다.
또 이번 유혈진압에 대한 책임을 우려해 사임 의사를 밝힌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부통령에 대해서도 세속주의 세력 등 시민들 사이에서 상당한 비난이 일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센츄리 파운데이션 소속 이집트 전문가 마이클 W.한나는 “이집트의 내전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면서 “자살폭탄과 여러 암살 시도 등이 뒤따르는 등 상황이 악화될 수 있지만, 시리아나 이라크와 같은 상황이 반드시 되리라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Economist)지 역시 이집트 사태를 다루면서 알제리 내전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알제리에서는 지난 91년 군부가 선출된 뒤 이슬람세력들의 정권 복귀를 막고 있으며, 이후 10년 넘게 이어진 유혈사태로 20만 명 가까운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또 이집트 군부의 이번 진압 조치가 이미 예견됐던 것이지만 이만큼의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련의 칼럼과 사설 그리고 분석을 통해 "이집트 중산층과 자유주의자와 세속주의자들은 군부라는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탄 상황"이라면서 "늦기 전에 무슬림과 화해를 시도할 것"을 권고했다. 신문은 또 미국이 이집트에서 잃어버린 영향력을 되찾고 싶다면 "군부를 무대에서 끌어내려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FT는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를 축출한 뒤부터 이를 '군부 쿠데타'로 규정하고 비판해왔다.
한편, 유혈진압으로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즉각 비난하고 나섰지만 미국 정부는 최근 사태를 군부 쿠데타로 정의하지도, 또 군부지원을 중단할 의향도 없음을 시사했다. 유엔(UN)은 긴급 안정보장이사회 회의를 소집했지만, 성명서 채택에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이집트에 대한 군사지원과 관련해 이집트 군부가 지원하는 임시정부가 무슬림형제단의 테러행위 요인을 지목하고 있다면서, 이는 이집트의 국가 건설 기초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무슬림형제단은 자신들이 어떠한 폭력도 저지르지 않았으며 평화적인 저항을 통해 무르시 축출이후 잃게 된 권력을 되찾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기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