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희준 기자]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이 고문과 초빙위원으로 머문 금융투자업계의 자본시장연구원이 은행권의 금융연구원을 닮아가고 있다.
연구성과 측면의 얘기가 아니다. 금융권 전직 고위관료들의 퇴직 후 임시 거처 역할을 소리 소문 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다.
11일 자본시장연구원 등 금융권에 따르면, 재정경제부 국고국 과장과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를 지낸 김병일 전 한국자금중개 사장(행시 18회)이 지난해 1월부터 '고문 겸 초빙위원(이하 초빙위원)'으로 자본시장 연구원에 자리를 잡고 있다. 김 위원은 계약기간을 한차례 연장하면서까지 2년째 자본시장연구원에 적을 두고 있다.
흥미로운 인물은 배국환 전 기획재정부 제2차관(행시 22회)이다. 배 위원은 최근까지 금융연구원 특임연구실 초빙연구위원으로 있었지만, 금융연구원과의 계약 만료에 따라 지난 8월 자본시장연구원으로 둥지를 옮겨 초빙위원으로 와있다. 금융권 연구소를 업권별로 갈아타는 모양새다. 그는 현재 농협금융지주 사외이사다.
또한 현재 연구소 초빙위원직을 떠났지만, 임 회장이 초빙위원으로 오기 직전에는 SC은행 사외이사인 김성진 전 조달청장(행시 19회)도 있었다. 김 전 청장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증권제도과 과장과 전 재정경제부 국제업무 정책관(차관보) 등을 거쳤다.
하지만 이런 인사들은 전직 고위관료 출신의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위원으로 확인된 인물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금융연구원이 홈페이지에 특임연구원 소속 연구원 명단을 밝히는 것과 달리 자본시장연구원에는 관련 사항이 전혀 공개돼 있지 않다.
또한 자본시장연구원 기획실장은 "동시에 2명까지 고문, 초빙위원으로 모실 수 있다"면서도 그간 초빙위원으로 거쳐간 인사의 명단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초빙위원 제도가 언제부터 시행됐는지에 대해서도 "7~8년 전"이라고 얼버무릴 뿐, 명확한 제도 시작 시점 확인 요청도 거절했다.
하지만 금융산업 발전에 따라 금융투자업계 역시 확장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전직 고위관료 출신의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위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현재처럼 제도의 운영 자체가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상황을 개선해야 하는 이유다. 이들에게는 대외활동비 명목으로 위원수당이 매달 지급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따지기도 어렵다.
자본시장연구원 고위관계자는 "공직사회의 필요성과 연구원에서 자문을 받을 필요성이 맞물려 제도가 생긴 것"이라며 "우리 연구원은 규모가 작을 때는 퇴임한 고위 공직자를 모실 처지가 못 됐고 타진하는 분도 없었지만, 연구원이 규모가 되면서 고문을 모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고위공직자가 퇴임을 하고 바로 다른 자리로 가지 않았다고 하면 연구원에서 먼저 얘기하는 경우도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리한테 (고문직) 타진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당국은 금융기관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갑 중의 갑이고 금융연구소는 을의 을이라 금융권 관료들이 연구소로 가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로펌과 회계법인 고문으로의 자리 이동에 대한 사회적 비판 등이 생기면서 관료 입장에서는 중간 기착지가 열등화된 것으로 보여 억울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그러면서도 "연구소로 가는 것은 향후 경력에 특별한 흠은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공직이나 업계로 나가려는 이들이 순번이 아직 안 된 상태에서 대기하는 장소로 고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