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정경환 기자] 개정 자본시장법이 대형 증권사에 허용한 업무 중 고갱이는 기업 대출이다. 이전에는 인수합병(M&A) 거래와 관련해 1년 미만의 단기 대출만 할 수 있었지만 이젠 그 폭이 훨씬 넓어졌다. 이를 통해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현실이 그렇지 않다"며 대표적인 손톱 밑 가시로 '영업용 순자본비율(NCR)'을 지목했다. 은행과 달리 수신 기능이 없는 증권사는 자기자본을 활용해 대출을 해야 하나 재무건전성 지표인 NCR 때문에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것. 특히 자본시장법과 금융당국의 기준보다 훨씬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국민연금이 문제다.
자본시장법에서는 건전성 평가 기준으로 NCR 100%를 규정하고 있고, 금융위원회의 적기시정조치 기준도 150%에 그친다. 반면 국민연금은 최저 150%에서 최고 450% 이상을 요구한다. 국민연금 거래증권사로 선정될 때 NCR 기준 만점(4점)을 받으려면 450%를 맞춰야한다.
자기자본이 3조원인 증권사라 해도 신용공여 외 다른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제외하고 NCR 기준 450% 이상을 맞추려면 실제 대출할 수 있는 규모는 50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수익성 개선 기대는 여기서 물거품이 되고 만다.
<사진> 여의도 증권가. |
이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NCR이 평가 요소 중 일부분인데다 그 비중도 미미해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NCR 최저 기준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은데, 최고치만 부각되고 있다"며 "NCR 평가 시 배점도 4점 만점 기준 150~300%가 3.50점, 300~450%는 3.75점, 450% 이상은 4.00점으로 150%와 500% 간의 차이가 0.5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배점 비중이 작다 해도 그 영향력은 작지 않다고 반박한다.
이도형 금융투자협회 증권지원부장은 "배점 비중이 미미한 것은 인정하나, 현실적으로 미치는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 "업계 내 국민연금의 위상을 고려했을 때, NCR 관련 현업 부서에서는 심리적 압박이 크다"고 언급했다.
더구나 은행이 도산하면 고객이 맡긴 돈을 잃는 것과는 달리 증권사 고객은 증권사가 망하더라도 돈을 잃을 위험이 훨씬 적기 때문에, NCR 기준을 높여야 할 이유도 없다는 지적이다.
이 부장은 "증권사는 국민연금의 직접적인 거래 상대방이라기보다 주문을 연결해 주는 브로커"라며 "연금이 맡긴 돈은 증권금융에 예치되므로 설사 증권사가 망한다 해도 원금을 잃을 위험은 극히 적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그 같은 부분까지 모두 감안해 전반적으로 다양한 평가 요소들을 검토하며 운용사를 선정한다"면서 "NCR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며, 실제 200~300%인 증권사들도 많이 선정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3분기 국민연금 국내주식 거래증권사 선정 현황을 보면 일반거래 증권사 40개사, 사이버거래 증권사 8개사 그리고 인덱스거래 증권사 15개사(중복 포함)다.
NCR을 놓고 벌어지는 이 같은 혼란을 해결할 묘수는 없는 것일까.
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업계 내에 단기적인 이익 추구를 위한 목소리가 너무 많다"면서 "결국은 커뮤니케이션 문제로서, 업계와 연금 측이 보다 구체적인 분석 결과를 놓고 서로 소통하고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현재로선 NCR 기준 변경 여부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며 "당국의 정책적 결정은 물론 시장과 업계 등 관계 당사자들의 의견을 모두 고려하면서 처리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NCR과 관련해 구체적인 수치를 조정하는 것보다는 전체적으로 합리적인 지표로 작동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최준우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NCR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지표로 활용 가능한지 여부의 측면으로 접근할 계획"이라며 "시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적기시정조치의 기준을 낮추거나 할 계획은 현재로선 없고, 지표로서의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