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홍승훈 기자] 근본적인 대안없이 공급을 늘리고 비(非)가격 수요관리 대책만으로 운영돼 온 국내 에너지기본정책이 대대적인 전환점을 맞게 됐다.
전기요금은 원가에 기반해 요금수준이 올라가고 원자력발전은 중장기 목표비중이 대폭 낮춰질 전망이다. 다만 친환경 에너지원인 LNG와 서민층 난방용으로 사용되는 등유가격은 과세수준을 완화해 서민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13일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구성된 '민관 합동 워킹그룹(위원장 김창섭 교수)'은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정책제안을 발표했다.<아래 표 참조>
김창섭 위원장은 지난 11일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앞으로의 우리나라 에너지 기본정책 방향에 대해 5개월여의 진통끝에 결과물을 도출했다"며 "핵심은 에너지가격체계의 정상화"라고 밝혔다.
이번 정책제안은 정부와 산업계 및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 60여명이 5개월여 논의를 거친 끝에 나온 결과물로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측은 이 결과를 최대한 정책에 반영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 전기요금 원가 감안 상향...주택용 누진제 단순화 등 방안 내놔
이날 발표된 정책제안에 따르면 주요 권고사항은 크게 ▲에너지가격체계 정상화 ▲전력시스템 분산화 ▲현실적 에너지믹스 ▲에너지 환경성과 안정성 강화 ▲에너지 안보 강화 ▲ 국민과 함께하는 에너지정책 등 6가지로 나뉜다.
우선 에너지가격체계 정상화부문에서 핵심은 전기요금 체계의 개편으로 원가에 기반해 전기요금 수준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높은 보급률과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가정책에 주력해 왔던 정부가 최근 잇따르는 전력수급 위기 속에서 전기와 비전기(유류,LNG)간 상대가격 차이를 해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전기쪽으로 국민 수요가 최근 수년간 급증하자 여타 에너지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유연탄과 원전이 유발하는 사회 환경적 비용을 세제개편과 전기요금 개편 등으로 풀어가겠다는 것이다.<아래 그래프 참조>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과도한 전기 수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제개편과 주택용전기요금 개편 등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고 결론내렸다"며 "다만 증액여부와 규모 등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후 확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단기개선 과제로 전력생산과 수송, 공급과정에서 발생되는 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키로 하고, 특히 주택용 전기요금의 경우 누진체계 단순화 및 시간대별 차등요금을 제안했다.
◆ 송전여건 감안해 발전소 입지 선정할 듯
최근 밀양 송전탑 사태 등에서 보여지듯 사회적 갈등을 막기 위해 발전소 입지 분산을 통한 전력계통 안정화 방안도 내놨다.
즉 지금까지 발전소 건설계획에 따라 부수적으로 송변전설비를 건설하던 방식에서 송전여건을 먼저 감안한 발전소 건설 방식으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지금까진 발전소가 먼저 들어서면 송전망이 따라가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갈수록 송전여건이 힘들어지는 현실을 감안해 송전을 먼저 고려한 뒤 발전소 위치를 정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또 수요지 인근 발전소의 경우 낮은 송전요금을 부과하는 등 발전소 위치에 따른 송전요금 차등화 방안도 검토중이다.
이와함께 일정규모 이상의 전기다소비 업체와 산업단지는 사용전력 일부를 자가용 발전설비로 충당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현재 전력사용량 중 70%를 자가발전으로 운영중인 포스코를 대표 사례로 꼽았는데 이같은 분산형 전원을 통해 2035년 발전량의 15% 이상을 공급하겠다는 게 워킹그룹의 계획이다.
◆ 원전비중 목표 40%대서 20%대로 대폭 낮춰
민관합동 워킹그룹은 또한 현실적인 에너지믹스 구성을 위해 1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당시 2030년 기준 적정 원전비중 41%를 2035년 기준 22~29% 수준으로 낮춰잡을 것을 권고했다.<아래 표 참조>
박주헌(원전분과장) 동덕여대 교수는 이날 브리핑에서 "22~29% 수준을 정할 때 기준은 경제성과 기후변화대책이었다"며 "특히 지금까지 원전 운영을 해오면서 20%대를 유지하고 있는데다 이 정도 수준이 가격이나 현실성 측면에서 우리 경제에 부담을 최소화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노후원전을 폐쇄하거나 신규로 설립 예정인 원전을 포기할 지 여부에 대해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안정성을 확보한 뒤 평가해 결정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차 기본계획에서 도출했던 목표치인 11% 수준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석탄과 가스 비중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과 전력시스템 분산화 추이를 반영해 최종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확정키로 했다.
소진영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신재생에너지분과)는 이에 대해 "1차 기본계획 수립시 신재생에너지 비중(11%)이 다소 높게 설정된 측면이 있다"며 "이에 1차때 상황을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했고 11%가 적정선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이날 발표된 정책제언에 대해 "이 권고안은 민관 전문가들과 이해 당사자들이 오랜 진통끝에 서로 양보해 조율한 것으로 사회적 구속력이 있다"며 "정부도 이 권고안의 범위를 벗어나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