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자동차 사업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인 측면 일색이다. 대학교 경영전략 교재에서조차 삼성의 자동차 사업은 재벌 총수 1인의 독단적 결정에 따른 대표적 사업 실패 사례로 치부해 버리고 있다.
▲이남석 중앙대 경영대학 조교수. |
예를 들어, 삼성과 닛산의 기술제휴 협력관계는 기업간 제휴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분야에서 포괄적으로 이루어진 성공적 기술 이전 및 협력 사례라 할 수 있다. (참고로 닛산은 200명이 넘는 기술진을 삼성에 장기 파견하는 한편, 1100명이 넘는 삼성자동차 소속 생산 기능직 사원들을 일본내 8개 닛산 공장에서 연수 받도록 지원하였다.)
기술집약도가 높은 다른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산업 역시 특성상 선진 업체들이 타 기업에 기술 이전을 극히 꺼리는 분야이다. 기술료를 아무리 많이 지급한다 해도 원하는 만큼 시장에서 마음대로 기술을 사고 배울 수 없는 것이 자동차 산업이다.
혹자는 90년대 내내 극심한 적자로 고전하고 있던 닛산 자동차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성에게 기술을 이전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삼성과의 기술제휴로 닛산이 벌어들인 기술료 수입의 규모는 90년대 당시 닛산의 누계 손실액 (1조 450엔)의 1% 남짓한 비중이었음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삼성과 닛산의 전폭적인 기술제휴는 무엇 때문에 가능했을까? 몇 가지 요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장기적인 협력관계 구축, 최고 경영진간의 확고한 협력의지와 상호 신뢰, 그룹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전사적인 학습의지를 들 수 있다.
1997년 촉발된 아시아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여파로 인해 과도한 부채에 의존한 채 사업확장을 시도했던 삼성의 자동차사업은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고, 결국 삼성의 자동차 사업은 삼성자동차가 설립된 지 만 4년여 만에 법정관리를 통해 르노자동차에 인수되는 운명이 되고 만다.
이 과정에서 1998년 삼성의 자동차 사업 운명을 결정적으로 좌우했던 세 차례에 걸친 기아자동차 입찰 과정은 일반인에게 상세히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삼성자동차가 시도했던 기아자동차 인수는 그 동안 정치적인 이유까지 더해지면서 삼성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삼성 내부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들여다보면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 실패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라기보다는 삼성 내부적으로 스스로 판단, 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성이 기아자동차 인수를 스스로 포기하게 된 배경에는 과거 70~80년대 고성장 시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비서실 기획팀의 논리와 권한이 재무팀으로 넘어간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기아차 인수를 주장한 기획팀은 기아 인수 반대 및 삼성의 자동차 사업 퇴출을 주장한 재무팀의 논리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고, 결국 삼성은 70년대 후반 부터 모색해 온 자동차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된다.
르노를 최대 주주 (지분율 70.1 %)로 재탄생 하게 된 르노삼성자동차에 삼성 (카드) 역시 제2대 주주 (19.9%)로 남게 되지만 일반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삼성자동차가 사용해 오던 엠블램과 삼성 브랜드 만을 르노의 요청에 의해 장기 임대 형식으로 빌려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론적으로, 정치 사회적인 분위기도 일부 작용하긴 했으나,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포기한 것은 결국 삼성 스스로의 결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삼성의 자동차 사업 퇴출과 관련, 과거 삼성자동차의 채권단이 삼성을 상대로 제기한 3조원대의 소송이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을 보면 삼성의 자동차 사업 포기 역시 99년 6월 법정관리 신청 이후 1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쉽게 마무리 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법정관리를 신청할 당시,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비상장 주식 400만주를 삼성자동차의 부채 청산용으로 출연하면서 모든 부채 관계가 청산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국 현재까지도 미결과제로 남아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아이러니는 극심한 금융부채로 문을 닫게 된 삼성자동차가 현재는 부채가 거의 없는 우량 회사로 다시금 태어나게 됐다는 점이다.
과연 삼성자동차 사례가 삼성은 물론 대한민국 기업과 경제에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일까? 재무적 이익이 장기 사업 전략의 중요한 조건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단, 단기적인 재무 성과 측면 만을 부각시키다 보면 장기적인 성장의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영원할 것처럼 보이던 빅3의 위상이 흔들리고, 급기야 GM이 파산한 후 미국 정부의 공적 자금 지원으로 구제되는 경우를 보더라도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결코 단기 재무적인 성과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며, 기업 자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경우 경쟁 환경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몰락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경쟁력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도요타의 경우, 경쟁력의 원천이 탁월한 재무적 관리 능력에 있기 보다는 다른 기업들이 결코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기업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장기적으로 개발, 體化시켜 왔다는 점이다.
즉, 일시적인 감원이나 재무적인 처방이 단기적으로는 큰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종업원의 사기 및 소속감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성장의 동력을 상실하게 되는 위험이 수반된다는 점을 감안, 개별기업은 물론 국가적인 산업정책이 수립되어야 하겠다.
삼성의 경우, 자동차 사업을 포기한 이후 역량을 전자분야에 결집시킨 결과 오늘날과 같은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가적으로도 큰 다행이다. 하지만 동서양 대부분의 기업 역사가 보여주듯, 어느 한가지 분야에서의 독주가 영원히 지속되기는 어려운 법이다.
자동차를 포함 사회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전통 제조업은 여전히 탈피해야 될 대상이기보다는 오히려 여타 산업의 발전을 위한 기반 (platform)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기업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발전, 육성시킬 필요성이 크다고 하겠다. 이미 제품의 가격과 품질만으로 시장에서 경쟁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기업의 전체적인 경쟁력과 역량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는 어느 특정 사업 분야에서의 경쟁 우위의 중요성보다는 기업 전체적인 측면에서의 ‘종합 경영 능력’의 중요성이 더욱 더 커지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삼성의 자동차 사업을 실패 사례로 볼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삼성의 입장에서 자동차 사업은 영원히 잊어야 할 실패 사례가 아니라 오히려 자산화(資産化)하여 그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한가지 값진 교훈은 ‘삼성은 본업인 전자분야에 집중하고, 자동차 사업은 해서는 안 되는 사업이었다’라는 사후(事後) 부정적 인식과 평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전자 뿐 만이 아닌 새로운 사업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가 하는 교훈을 자동차 사업에서 얻는 지혜’라 할 것이다. 그런 지혜와 교훈을 과거 자동차 사업에서 얻을 수 있다면, 삼성의 자동차 사업은 실패였다는 멍에를 벗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삼성의 새로운 유망 사업으로서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글=이남석 중앙대 경영대학 조교수>
◆이남석 중앙대 교수
-학력
1983. 3 ~ 1987. 2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과 졸업
1987. 9 ~ 1989. 5 뉴욕大 (NYU) 경영학 석사 (MBA)
2000.10 ~ 2006. 5 옥스포드大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 (DPhil)
(경영전략 전공: 르노-닛산-삼성 신제품개발전략 및 협력 강화 요인)
-경 력
1990. 2 ~ 1993. 1 三星종합화학 기획팀
1993. 2 ~ 1995. 2 三星중공업 승용차 사업 추진 프로젝트팀
1995. 3 ~ 1996. 1 三星자동차 해외업무팀
1996. 2 ~ 2000. 9 三星그룹 秘書室 秘書팀 (2007. 2 退社)
2002. 4 ~ 2004.12 佛 르노자동차 신제품 개발, 제휴先 관리팀
2006. 3 ~ 2006. 8 英 BT – 옥스포드大 産學 프로젝트 연구원
2006. 8 ~ 2009. 3 대한방직 ㈜ 代表理事 社長
2009. 9 ~ 현재 중앙대학교 경영대학 조교수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