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갑오년은 120년전 조선 정부가 근대화를 위한 '갑오경장' 개혁을 시작한 해다. 경장(更張)은 거문고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을 때 낡은 줄을 풀어서 새 줄로 바꿔 소리가 제대로 나게 한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도 갑오경장과 같은 새로운 개혁을 추진해야할 상황에 직면해있다. 저성장 저금리 저환율 저물가와 고령화 등 소위 '4저1고 시대'가 도래했다. 10대 수출품목이 20여년째 똑같고, 50년간 주요 산업구조가 바뀌지 않았다.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늙어가는 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매킨지는 지난해 '제2차 한국보고서-신(新)성장 공식'에서 "지금 한국경제는 뜨거워지는 물속에 개구리 같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전통적인 효자 산업을 업그레이드해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 육성해야하는 과제가 있는 셈이다.
뉴스핌은 '2014 신년기획으로 [시급한 경제구조 대전환 - 위기의 한국경제를 살리려면]을 준비했다. 경제구조 대전환이 왜 필요한가로부터 산업, 금융, 부동산 등 각 부문이 바뀌어야할 방향, 풀어야할 숙제를 조목조목 짚어보려한다. <편집자 주>
[뉴스핌=홍승훈 기자] "활력이 떨어진 한국의 경제, 산업구조를 바꾸려면 기업과 특정산업 중심의 경영과 정책을 사람, 우수인재를 키우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
산업을 바라보는 앵글을 기업에서 사람으로 틀어 글로벌시장에서 코리아 메이드(korea made)가 아닌 코리안 메이드(korean made) 컬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자원빈국 한국이 수출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근면한 국민성에 더해 중화학공업 등 특정산업 육성책, 삼성과 현대, LG 등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글로벌경영, 이를 뒷받침한 정부 지원시책 등 네박자가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은 시스템으로는 앞으로 글로벌시장에서 성공을 담보하기 어려워졌다. 어쩌면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시기가 목전에 왔는지 모른다. 국내 산업이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를 벗어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바뀌지 않는 한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고 경제 산업전문가들이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기존 모방을 뛰어넘는 이같은 변화는 창의와 혁신의 마인드를 갖춘 인재와 기업들이 갖춰지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결국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특정기업, 특정산업을 밀어주던 것에서 탈피해 사람을 키워 핵심인재들을 육성하는 것만이 앞으로 살아남는 유일한 생존법이다.
◆ "창의 혁신추구 핵심인재 태부족...그나마 대기업 편중"
우리나라 경제발전 과정에서 기업들이 사람과 인재에 포커스를 맞춘 소위 '인재경영'을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 1993년 던졌던 "앞으로는 우수한 인재 한 사람이 천명, 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한 마디는 파장이 상당했다. 2∼3세기 전에는 10만명, 20만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살렸지만 이제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 20만명을 먹여 살리게 될 것이란 의미였다. "S급 인재가 30명이면 일류회사 3개와 같다"는 이 회장의 한 마디에 여타 기업들마저 인재육성에 앞다퉈 나서기 시작했다.
이후 삼성은 글로벌 핵심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며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일례로 삼성전자 사업부문 CEO들은 해외 출장의 절반을 우수인력 영입에 할애할 정도였다. 삼성전자 인재개발실 직원들의 경우 외국인 핵심인재 채용을 위해 일년의 절반을 해외서 보낸다고 한다.
혁신이란 아이콘의 대표기업으로 꼽히는 애플. 이 애플이란 기업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기술력 때문만이 아니라는데 전문가들은 공감한다. 그 누구보다 혁신과 창조를 추구했던 '스티브 잡스'란 한 인재의 역할이 두드러졌기에 가능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정책인 '창조경제' 역시 이같은 뛰어난 인재의 혁신적 사고와 창조적인 경영 없이는 불가능하다.
산업섹터만 봐도 혁신과 창조의 중요성은 드러난다. 70~80년대 한국경제를 이끌던 섬유산업은 2000년대 들어 사양산업으로 치부됐다. 산업측면에서만 보면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것. 하지만 유통시스템, 신소재, 디자인 등의 관점에서 다시 접근하자 섬유와 패션산업은 새로운 성장산업으로의 변모할 수 있었다.
최근 전세계 대중 패션업계를 주도하는 '자라(ZARA)'라는 패션 브랜드를 보면 어느정도 답을 엿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세계 어느 도시에서 쉽게 보이는 자라는 남녀노소, 계층을 불문하고 인기를 구가하는 자라는 기존 유행을 선도하는 기업 대신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을 빠르게 캐치해 짧은 기간내 저렴하게 출시한 것이 전세계 고객들을 만족시켰다. 유행에 너무 떨어지지도, 너무 앞서가지도 않는 실용패션을 무기로 자라는 패션업계내 확고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국내 섬유업계 한 관계자는 "자라를 보면서 특정산업의 사양화를 아이디어와 혁신으로 바꿀 경우 신성장사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결국 자라라는 기업 경영자와 그 안에 속한 인재들의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했다.
이같은 작은기업의 창조와 혁신은 재정난으로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빛났다. 자라 등 총 8개 브랜드를 보유한 인디텍스는 지난해 연 23억6100만유로(약 3조 3630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창출했다.
◆ "수출강국 불구 수출할 인재는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김창규 투자정책국장은 "요즘은 기업 M&A시에도 해당기업보단 그 기업에 있는 인재를 보고 추진하게 되는 경우도 꽤 많아졌다"며 "결국 인재를 어떻게 키우느냐가 한국의 산업 경제구조 대전환을 현실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못박았다.
결국 문제는 인재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 더욱이 창의와 혁신 마인드가 갖춰진 인재들이 중소 중견기업이 아닌 대부분 삼성 등 대기업에 편중돼 있다는 점은 정부 고민을 깊게 한다.
물론 인재경영의 산실이라는 삼성 역시 핵심인재 영입에 온 힘을 기울이지만 한계는 여전하다는 지적도 있다. 재계 한 소식통은 "10여년전부터 S급 인재영입에 주력해온 삼성이지만 들어온 사람들이 계약기간(2~3년)을 못채우고 나간 경우도 많고 실적도 기대보다 못했던 경우도 상당했다"며 "삼성의 기업문화, 폐쇄성과 배타성 등의 갭을 극복하지 못하고 떨어져나간 인재가 한둘이 아니다"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세간에 "비슷한 스펙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도 삼성에 들어가면 달라진다"는 관념이 지배적인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취업자로선 어느 기업에 들어가는냐에 따라 55년, 10년뒤 모습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기왕이면 중소기업보다 해당분야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 복지 등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기업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대기업으로선 선순환의 연속, 중소기업으로선 반대인 셈이다.
또한 수출강국 이미지와는 달리 글로벌무대에서 일하려는 젊은이들이 적다는 현실도 개선해야할 과제라는 지적이다.
독일의 글로벌 컨설팅기업인 롤랜드버거 이석근 한국지사 초대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중국같은 나라는 시장 자체가 워낙 크니 굳이 밖에 안나가도 되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외국기업의 한국지사 근무뿐 아니라 글로벌리 활동할 수 있는 부문에 대한 도전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저같은 경우는 MBA를 마친뒤 글로벌 컨설팅사를 택했는데 글로벌 스탠다드를 갖추지 못한 당시 국내 대기업보다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위해 글로벌 컨설팅사에서 일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20여년이 지나 결과적으로 그같은 결정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글로벌 경영시스템, 인사 및 운영 시스템을 체득할 수 있었고, 성과위주 보상제도로 경제적 혜택 역시 대기업에 비해 많이 누릴 수 있었다"
특히 "우리는 경제구조가 수출중심인 까닭에 외국시장 상대 인력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필요하지만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국제화된 인력은 너무 적다"며 "수출이 우리 경제의 50~60% 비중이라면 글로벌화된 인력은 15%도 채 안될 정도로 열악한 상태"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김창규 국장은 "예컨대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들이 해외지사 인력을 채용할 때 정부 예산이나 인센티브를 엮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글로벌시장에서 활동하는 해외지사 현지인력에 대해 내국인을 키워서 활용하겠다는 마인드가 앞으로는 더 필요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삼성경제연구소는 '과학기술 핵심인재 10만 양병을 위한 제언'이란 보고서를 통해 차세대 성장동력분야의 인력난으로 인해 국가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며 과학기술 핵심인재 육성 전략의 시급성을 주장한 바 있다.
2012년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됨에 따라 매년 1만명 가량의 과학기술 핵심인재 양성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당시 대학 인력공급 상황을 고려할 때 친환경에너지 등 9대 유망산업 인력부족은 갈수록 심화돼 2020년까지 약 9만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기초과학과 범용공학을 전공한 석,박사급의 핵심인재는 현 육성체계로는 충당이 어렵다는 게 연구소 주장이었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