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말 한 마디로 천냥빚도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한다. 말이 행동을 규정하거나 촉발하기도 하며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의 사고(思考)를 지배하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세졌다며 언론들은 분석에 분주하다. "진돗개는 한 번 물면 안 놓는다. 진돗개 정신으로 해야 한다" "천추의 한을 남기면 안 된다"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로 생각하고 규제를 확확 들어내야 한다"
과연 표현의 수위가 높아진 건 분명하다. '쳐부술 원수'는 '규제'인데, 그 만큼 간절히 원하고 절박하기 때문이란 해석이 많다. 말이 그런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내 깊은 생각 속 한 마디가 울컥 튀어나와 당황스러워지기도 한다. 또 그걸 계기로 자신의 진심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가 이 말과 관련한 흥미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셰릴 샌드버그는 자신이 쓴 개발서 '린인(Lean In)'의 이름을 그대로 딴 여성 운동을 벌이며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중. 그런 와중에 또 일을 벌였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가 중심이 되어 "우리를 으스댄다고(bossy)라고 말하지 마세요" 캠페인이 전개된다.(출처=월스트리트저널) |
보시(bossy)란 단어는 흥미롭게도 여성들을 표현할 때 많이 쓰인다. 속된 말로 하면 '나대지 마라' '남자같이 굴지 마라'라고 같은 말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샌드버그는 9학년 때 이 말을 들었고 굉장한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친구 민디와 놀고 있는 샌드버그에게 와서는 "너는 셰릴과 친구하지 않는게 좋겠다. 얘는 너무 으스대니까(She's bossy)"라고 했다 한다.
이 캠페인에 같이 나선 안나 마리아 차베스 미국 걸스카우트 총재 역시 마찬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차베스 총재는 "남자 형제들, 동네 친구들과 함께 전쟁놀이를 하곤 했는데 여자아이였던 나에겐 탄약수집 임무만 맡겼다. 그래서 부대장을 하고 싶다 했더니 남자 아이들은 '너 정말 으스대는구나(bossy). 여자애는 군대를 이끌 수 없어'"라고 했다고.
'보시(bossy)'란 단어가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처음 등재된 건 1882년 한 잡지에서 나온 문장 "지독하게 으스대는(dreadfully bossy) 여성이 있었다"란 말을 쓴 뒤였다 한다. 구글이 지난 100년간의 서적을 뒤져 분석한 결과 '보시'란 단어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여성이 남성의 일자리를 뺏어선 안 된다"는 정서가 패배했을 때 많이 쓰였고, 1970년대 중반 여성 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많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잡기 시작했을 때에도 자주 사용됐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출처=블룸버그) |
이들은 또 이렇게도 말했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에게는 '공격적이다(aggresive)' '분노에 차 있다(angry)' '날카롭다(shrill)' 등의 표현을 하는 게 통상적이며, 성공했고 힘을 가진 남성들은 호감을 받지만 반대로 힘있는, 성공한 여성들은 사랑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철의 여인'으로도 불렸던 마가렛 대처 영국 전 총리에게 한 외교 전문가는 '너무 뻐기고 거슬리는 영국 여성'이라고 표현했고, 수전 라이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서도 외교가에서 "거들먹거리는 처신을 한다"는 평가를 하는 쪽이 있었다고.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 힐러리 클린턴에게도 당연히 '보시'란 표현은 단골로 쓰였다.
안나 마리아 차베스 미국 걸스카우트 총재(출처=AP) |
성공은 하지 못했지만 남성들 중심의 사회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나 역시 이런 표현을 많이 들어야 했다. 가장 많은 말은 "피곤하다"였다. 대개의 남성 선후배, 동기들은 부당한 지시가 내려와도 일단 "네" 하며 일을 맡는다. 하지만 내 경우 대체로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납득을 시켜달라"고 상사에게 요구했다.
그럴 경우 "피곤하다" "너 혼자만 정의로운 줄 아느냐" "이래서 여성이랑 일하기 힘들다" 등의 뒷말을 감수해야 했다. 갈등이 계속되면 결국 소수인 내가 맞춰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점점 조용해지려 했고, 이견이 있거나 불의를 만나도 꾹 참는 쪽을 더 많이 택하게 됐던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 남성 중심적 사고 체계가 갖춰지고 있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이런 말을 쓰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기집애 같이 왜 그래?"
정말 놀라운 학습 결과였다.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그 말을 쓰지 않고 있다. '기집애'가 일을 소극적으로 하고 개인적이며 잘 토라지고 하는 주체를 나타내는 단어로 통용되고 있기에 나는 앞으로도 이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얼마 전 조한혜정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했던 여성들이 아빠처럼 된 건 아닌가"라고 했던 일갈이 가슴을 쳤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당신과 일하기 피곤하다"는 말에 주눅들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따질 걸 처음부터 차근차근 따지지 못하면 쌓고 있는 탑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중요한 건 여성인 나의 선언적인 외침이나 다짐이 아니라 소통이고, 그 이전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무수하게 회자되는 불통(不通)이란 건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지 못하는 사람은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 여성은 권리도 4분의 3만 행사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말에 "그런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니 부럽다"고 한 한 유명인도 과연 불통에 대한 불만을 얘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궁금하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