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송주오 기자] "금융을 잘 보세요. 아마도 재미있는 변화가 계속될 겁니다. 사업재편의 마지막은 금융부분이 되지 않을까요." 삼성의 한 금융계열사 전직 임원은 그룹 차원에서 진행 중인 사업재편 작업과 관련해 이같은 견해를 나타냈다. 이 임원은 금융계열사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기 직전 삼성을 떠나 비교적 최근의 내부 흐름에 밝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사업과 지배구조가 새롭게 짜여지는 과정에서 금융부분은 사실상 종착역이 될 것이라는 게 이 인사의 예측이다.
5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삼성의 사업·지배구조 재편작업은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업이든 지배구조든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묶고 나누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사업 경쟁력 측면에서는 삼성SDS의 삼성SNS 흡수합병, 삼성SDI과 제일모직 소재부문 합병,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쟁력의 분산을 막고 유사한 사업을 한 곳에 모아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조치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단연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과 삼성SDS의 상장 추진에 의미가 남다르게 전해진다. 이 회장 자녀들이 지분을 갖고 있는데다 그룹 지배구조에서도 핵심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경영승계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제일모직과 삼성SDS 상장은 증권가 등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사업재편의 마지막 피날레로 여겼으나 이 회장의 건강상태에 따라 서둘러 추진한 측면도 없지 않다.
이같은 작업은 삼성전자를 중심 축으로 움직이고 있다. 삼성 전체 이익의 90% 가량을 책임지는 삼성전자에 힘을 보태면서 각 계열사별 자생력을 높이고 키워 전체적인 상승효과를 내겠다는 의미다.
최근 발표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역시 지배구조상 삼성전자 우산 속으로 건설부문이 들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중공업의 지분 12.5%를 가진 최대주주로 이번 합병에 따라 건설부문의 지배력이 강화됐다.
증권가에서는 이를 두고 '이재용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한다. 향후 삼성물산, 제일모직 등 추가적인 사업조정도 진행될 것이란 예상이다. 삼성물산에서 건설과 상사를 분리하고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간 합병법인과 제일모직에서 건설부문을 떼어내 그룹 내 건설부문을 이 부회장의 지배력 아래에 있는 전자 산하에 두겠다는 의도로 본다.
이처럼 제조와 건설의 재편작업이 진행되면서 향후 관심은 금융부분으로 쏠린다. 여러차례 미래전략실 주도의 경영진단을 거쳐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벌였지만 그룹 핵심 지배구조인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의 고리는 법제도와 승계방정식을 놓고 볼 때 언제고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일련의 구조조정을 두고 재편작업을 본격화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받아들이는 시선도 이때문이다.
삼성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미 금융계열은 복잡하게 얽힌 지분정리 작업을 시작하고 인력이나 사업에 대한 강도높은 구조조정으로 조직 슬림화를 진행했다"면서 "이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가진다는 전제에서 전자나 부품소재만큼 중요한 곳이 금융이고, 금융을 통해 힘이 강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지분정리에 속도는 내는 중이다. 이미 삼성생명이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을 잇따라 인수한 바 있고 삼성물산과 삼성전기가 보유하던 삼성카드 지분도 삼성생명으로 넘겼다. 또한 지난 5월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은 각각 삼성자산운용과 삼성선물의 지분 전량을 매입하기로 했다. 삼성생명은 삼성자산운영의 지분 100%를 확보한 뒤 자체 자산운용인력 인원을 삼성자산운용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금융계열의 밑그림 주역으로 김인주 삼성선물 사장을 거론하기도 한다. 김 사장은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과 함께 삼성의 3세 경영승계 구도를 설계한 주역으로, 옛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으로 물러났다가 금융계열로 복귀한 바 있다.
다만 그룹 지배구조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있다.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지분고리를 끊기 쉽지 않고 더욱 공고히 연결고리를 형성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묶어놓은 7.6%의 지분처리에만 십수조원의 뭉칫돈이 들어가야 하고 지주사 전환 역시 현행법상에서는 실익이 없다는 게 삼성 내부의 판단이다. 공정거래법과 금융지주사법 등 현행법상에서 이같은 조치가 취해지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약화 해결책도 함께 나와야 한다.
지난 6월말 기준, 삼성생명(7.6%)과 삼성화재(1.26%)가 갖고 있는 삼성전자의 지분 가치는 시가 기준으로 17조~18조원에 달한다. 최근 삼성전자의 실적악화로 주가가 하락하는 추세이기는 하나 70~80만원대까지 주당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면 금액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뭉터기 지분을 받아줄 계열사나 이 회장 일가의 매수 주체를 찾기도 쉽지 않다.
익명을 전제한 현대증권의 한 연구원은 "삼성이 전체적으로 금융과 비금융으로 양분되는 수순으로 갈 것으로 봤으나 현재의 상황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헤쳐 모여가 진행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금산분리와 순환출자 문제 등 법제도 움직임에다 이 회장의 건강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금융계열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은 그룹 사업 재조정 계획의 마지막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이 관계자는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20.76%에 대한 상속 혹은 증여에 따른 비용은 제일모직, 삼성SDS 상장을 통해 해결할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삼성은 당분간 계열사 합병 이슈가 없을 것이라고 지난 3일 밝혔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 상장,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등은 올해 초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며 "이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당분간 계열사 합병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당분간이라는 것이 연내를 의미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송주오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