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주명호 기자] 남미 좌파 국가들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성장세에 기반한 원자재시장 장기호황으로 10여 년간 고성장 속에 장기 집권해왔던 좌파 정부들은 경제가 다시 불안감에 빠지면서 그동안 유지해온 정권을 내놓아야 할 지도 모를 위기에 처했다. 한때 남미를 휩쓸었던 '분홍 물결(Pink Tide)'도 이전과 같은 역동성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분홍 물결'이란 공산주의를 뜻하는 '붉은 물결'에 대비해 좀 더 온건적인 사회주의 성향을 의미한다. 2000년대 '분홍 물결'이 남미를 휩쓸면서 곳곳에 좌파 정권들이 들어섰다.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브라질이다.
베네수엘라는 1998년 당선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이래 현재까지 16년째 좌파정권이 국정을 이끌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대통령에 이어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12년간 좌파 연립정부를 구성, 이어가고 있다. 브라질도 노동자 출신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가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노동당 득세의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간 이어졌던 중국의 경제 성장세가 냉각되면서 원자재시장이 급락세로 돌아서자 이 국가들의 경제 취약성도 커지기 시작했다. 당장 경상적자가 크게 확대됐고 호황기 동안 소비를 늘렸던 중산층들도 경제악화에 휘청거리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지난 17일 베네수엘라가 향후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질 확률이 50%라며 국가 신용등급을 'CCC+(Caa1)'로 하향 조정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8월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63%를 넘어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올해 초 신흥국 통화 급락을 이끈 주범이었던 아르헨티나는 7월 말 기한이었던 채무 변제에 실패하면서 사실상 디폴트가 선언됐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채무 우회상환 등 디폴트 탈출을 모색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습이다.
오는 10월 5일 대선을 앞둔 브라질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브라질의 올해 1·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각각 -0.2%, -0.6%으로 집계돼 경기침체(Recession: 2분기 연속 전분기비 마이너스 성장)에 빠졌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월드컵은 오히려 경제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브라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1.4%에서 0.3%으로 크게 낮췄다.
마리나 실바 브라질 대선 후보. [사진 : XINHUA/뉴시스] |
이런 상황에서 이들 국가들의 정권 교체 여부가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간 좌파 정권들이 설정했던 정책 및 대외 관계가 큰 변화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앞으로 다가온 브라질 대선 결과는 향후 좌파정권의 입지를 결정 짓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우마 호세프 현 대통령의 경쟁 상대인 브라질사회당(PSB)의 마리나 시우바 후보가 당선될 경우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지역 좌파정권 대신 미국이나 유럽과의 공조가 늘어나면서 남미 내 정치지형이나 대외적 관계가 재정립될 것이란 분석이다.
시우바가 당선되면 브라질은 최근 10년 중 최초로 전임 대통령이 재임에 실패한 남미 국가가 된다. 이 점 또한 남미 내 새로운 정치적 경향을 의미하는 신호로 받아 들여질 수 있다고 FT는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주명호 기자 (joom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