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러시아의 파격적인 기준금리 인상 조치에도 루블화 가치가 폭락장을 이어가는 등 러시아 금융위기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벼랑 끝에 몰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6일(현지시각) 마켓워치는 러시아 금융위기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으면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끝없이 떨어지고 있는 유가와 서방 제재가 지속되면서 러시아 경제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은 오래 전부터 이어졌지만 이날 중앙은행이 대폭적인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놨음에도 루블화 가치가 또다시 폭락하면서 러시아발 금융위기설이 본격화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10.5%에서 17.0%로 대폭 인상한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잠시 진정세를 보이던 달러 대비 루블화 환율은 전날보다 15루블 이상 오른 80.1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루블화는 유로 대비로도 100루블을 돌파했다.
스탠다드뱅크 소속 티모시 애쉬는 루블화 폭락세를 가리키며 "지난 17년 동안 외환시장에서 본 가장 급격한 통화가치 폭락세"라며 러시아의 외환보유고가 견실하고 예산 역시 흑자 상황인데도 루블화 가치가 이렇게 떨어지는 것은 당국에 대한 시장의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추가제재 소식까지 전해졌다.
조지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추가 브리핑을 통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 의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우크라이나 자유 지원 법안'에 서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국영기업 등에 추가 제재를 가하고 우크라이나에 무기 등 군사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의 이 법안이 발효되면 푸틴 대통령의 상황은 더 절박해 질 수밖에 없다.
서방 전문가들 상당수는 이처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푸틴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며 우선적으로 제재의 원인이 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백기를 들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 경제정책 조사기관인 피터슨 인스티튜트 선임위원 앤더스 애슬런드는 "푸틴이 뭘 할 수 있겠냐"며 "경제 개혁도 불가능하고 진퇴양난 상황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푸틴이 쓸 수 있는 단 한가지 해결책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군 병력을 철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제전략연구소(CSIS) 선임위원 앤디 쿠친스도 푸틴이 우크라이나 동부서 철수하는 것이 그나마 체면을 살릴 유일한 방법이라면서도 푸틴이 우크라이나 또는 그 밖의 지역에서 과격 행동을 택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자본 통제라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피터슨 인스티튜트의 애슬런드는 "자본 통제를 그대로 따를 만큼 러시아 국민들이 순진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서방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 경제 위기 때문에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러시아가 장기적으로 상당히 심각한 어려움에 빠진 것은 분명하지만 현 상황은 경제적 위기보다는 지정학적 이슈에 더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현재 러시아 위기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러시아 내에서 푸틴의 영향력이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며 그의 단호한 외교정책 스탠스는 국민들 사이에서 그의 정책 입지를 오히려 굳히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분석기관중 한 곳인 레바다센터는 지난달 푸틴의 지지율이 85%로 1년 전보다 오히려 25%p(포인트) 올랐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경제 전문지 IB(인터내셔널비지니스)타임스도 이번 위기에도 서방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푸틴의 강경 노선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란 게 전문가 시각이라고 전했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기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