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루블화 폭락으로 금융위기를 맞은 러시아가 남은 외환보유액을 방출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17일(현지시각) 뉴욕외환시장에서 루블화가 반등, 급한 불을 끈 것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이 시장 전문가의 지적이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루블화 위기의 다음 수순에 모아지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이른바 ‘프린팅 머니’ 카드를 저울질하는 가운데 시장 전문가들은 패닉이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더욱 확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루블, 트레이딩 불가능한 지경
기습적인 금리인상 이외에 공격적인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 루블화 하락에 제동을 거는 데 안간힘을 쓴 러시아 정책자들이 남은 외환보유액을 금융시장에 방출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루블 시세판[출처:AP/뉴시스] |
업계 전문가는 러시아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환보유액 잔액이 70억달러 내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루블화가 달러화에 대해 장중 9% 이상 급등했지만 추세적인 상승을 이끌어내기에 외환보유액 규모가 역부족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스탠더드 은행의 티모시 애쉬 리서치 헤드는 “정책자들의 대응과 무관하게 루블화는 가늠하기 힘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세계 어떤 통화도 이 같은 극단적인 등락을 보인 사례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루블화가 걷잡을 수 없는 내림세를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변동성이 극심하기 때문에 트레이딩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주장했다.
◆ ‘머니 프린팅’ 저울질
루블화 폭락과 함께 유동성 경색 리스크가 고조되자 러시아 중앙은행은 내년 금융권에 자금 공급을 단행할 계획이다.
이날 주요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은행은 내년 은행권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기업들의 회사채 및 부채 원리금 상환 불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데 따른 조치라는 것이 중앙은행 측의 설명이다.
아울러 외환의 수급 균형을 이루는 한편 루블화 환율 안정을 위해 은행권 유동성 공급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중앙은행은 또 은행권이 포트폴리오에 보유한 증권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하는 상황이며, 이를 감안해 필요한 경우 일시적인 모라토리엄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블화는 연초 이후 달러화에 대해 50% 급락한 상황이다.
◆ 외환위기 이미 본격화
러시아 정책자들의 전방위 대응에도 불구, 이미 외환위기가 본격화됐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의 진단이다. 이에 따른 패닉이 유럽을 필두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번져나갈 것이라는 경고다.
또 러시아 중앙은행이 추가 조치에 나설 여지가 높지만 루블화 상승 반전을 포함해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카드가 전무하다는 데 투자자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SEB의 칼 스타이너 전략가는 “러시아는 본격적인 외환위기를 맞은 상황”이라며 “중앙은행을 포함한 정책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이미 꺾였다”고 전했다.
뱅크오브뉴욕멜론의 사이먼 데릭 전략가는 “외환시장 개입이 이렇다 할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국제 유가의 추가 하락에 대한 우려가 자리잡고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투자자들의 회의감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율리우스 바에르의 데이비드 콜 외환 리서치 헤드는 “루블화 변동성이 폭발한 동시에 금융시장 패닉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며 “중앙은행의 대응책은 이미 실패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기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