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세계경제가 새해 초부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극심한 변동장세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불황 속에서 '가시'를 숨긴 채 나홀로 성장을 과시하고 있는 미국의 금리인상과 '그렉시트' 등 유로존 디플레이션 위기, '세계제조공장' 중국의 경기둔화, 지정학적 위기를 내포한 글로벌 석유전쟁과 환율전쟁 등 올 한해 국제금융시장이 주목할 글로벌리스크는 무수히 많다. 뉴스핌이 글로벌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투자시 참고해야 할 핵심 리스크들을 추려봤다.
[뉴스핌=김성수 기자]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집권 3년차를 맞아 경기회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아베 정권이 출범한 후 일본 정부는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 요인으로 디플레이션을 지목하고 2년 내 연 2% 물가상승률을 달성하겠다는 정책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세 개의 화살'이라 불리는 대규모 양적완화·재정지출 확대·성장전략을 추진해 왔다. 올해는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의 첫 번째 화살인 '양적완화'에 이어 민간기업의 투자 확대를 독려하는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이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다만 아베노믹스의 효력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지난해 일본 경제가 소비세 인상에 따른 내수부진이 확산되면서 2, 3분기에 각각 연 -6.7%와 -1.9%의 마이너스 성장에 그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0.3% 내외로 추정돼 직전해인 2013년의 1.6%에 크게 못 미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일본 안팎에서는 아베노믹스의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해 "일본 정부가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며 일본 국가신용등급을 'A1'으로 강등했다.
[출처: 한국은행 동경사무소 보고서] |
일부 전문가는 아베노믹스가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은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히토츠바시(一橋)대학의 사이토 마코토(齊 藤誠) 교수는 일본 정부가 디플레이션에 대한 판단을 잘못 내려 지나친 재정·금융정책을 양산했다고 비판했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한일재단)은 사이토 마코토 교수가 지난해 '일본경제신문 경제교실: 아베노믹스 2년'에 기고한 내용을 요약·정리해 '2015년 아베노믹스 2년 평가'라는 자료로 발표했다. 이 자료에서 마코토 교수는 "일본에서 지난 15년간 발생한 디플레이션은 열악한 국제경제 환경으로 일본 교역조건이 악화되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코토 교수는 일본의 교역조건이 악화된 원인으로 ▲원유 등 수입 원재료 가격 급등 ▲전기·전자기기 등 수출산업의 경쟁력 저하를 꼽았다. 그 결과 일본은 엔화표시 수입가격과 엔화표시 수출가격의 비율인 교역조건이 크게 악화되면서 소득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유출됐다는 분석이다.
마코토 교수는 "소득이 해외로 누출되면서 일본의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세를 따라잡지 못하게 됐다"며 "이로써 일본 내 디플레이션이 체감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1990년대 이후 일본 교역조건 추이. 교역조건이 계속 악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트레이딩 이코노믹스] |
일본 정부는 지난 2012년 정권교체 이후 확장적 재정정책을 실시했다. 동일본 대지진 관련 부흥 예산을 19조엔에서 25조엔 규모로 확대했고, 2012년도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2013년도 예산을 15개월 예산으로 편성했다. 2014년 예산도 2013년 추가경정예산을 추가해 운영했다.
다만 이러한 정책들은 큰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평가다. 일본은 지난해 소비세 인상을 실시한 후 지난해 2·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잇따라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일본의 연간 실질 GDP 성장률도 -0.5% 선으로 추정된다.
마코토 교수는 "교역조건이 악화된 상태에서는 실질 GDP가 증가해도 해외로 누출된 소득 때문에 실질 소득(GDI)이 크게 증가하지 못한다"며 "일본 정부가 시행 중인 재정·금융정책은 국가 채무와 일본은행 채무(준비예금)라는 빚만 후세에 남기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일본 정부의 디플레이션 관련 정책대응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일본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았을 때 기준금리를 신속히 인하하지 않았다"며 "은행·기업들 구조조정에서도 다소 미진했던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양원근 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일본 정부는 금융부실을 적극적으로 처리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대신 재정 확대정책을 통한 경기회복을 도모했다"며 "이로써 경제 전체적인 구조조정이 미뤄지면서 재정적자 규모가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베 정권은 디플레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본원통화 확대와 엔화 약세를 이끌었지만 경상수지는 기대만큼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더구나) 일본은 GDP의 230%가 넘는 국가부채를 떠안고 있어 아베노믹스의 성공 가능성이 더욱 불투명하다"고 언급했다.
◆ 물가목표치 '무의미'?…"日경제 큰 틀에서 이해해야"
일본은행이 실시한 확장적 금융정책도 무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정부는 금융완화의 틀로 CPI를 지목하면서 연 2%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달성을 정책 목표로 삼았다.
일본은행(BOJ)은 이를 위해 연 0.1% 금리로 민간은행에서 준비예금을 모으고, 해당 자금으로 장기국채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장기국채 매입규모는 지난 2013년 4월 연간 50조엔에서 지난해 10월 말 연간 80조엔으로 확대됐다.
다만 한일재단은 일본은행이 실시한 금융완화 정책이 3가지 한계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먼저 ▲양적완화 정책에 따른 엔저 효과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고 ▲엔저가 수출가격 하락이나 수출물량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양적완화가 반드시 물가상승 효과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출처: 한국은행 동경사무소 보고서] |
한일재단은 "그간 일본 소비자물가가 상승한 것은 과거 수입연료 가격 상승분과 지난해 소비세 인상에 따른 가격전가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라며 "일본은행의 물가목표치 달성 여부가 아직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마코토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일본은행의 물가 목표가 일본의 실제 경제상황과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물가상승률 둔화는 유가 하락에 따른 여파이며, 이는 일본 경제 전체에는 오히려 긍정적 신호라는 분석이다.
법인세율 인하에 대해서도 마코토 교수는 좀 더 큰 틀에서 경제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일본 정부가 실제 일본 경제상황과 맞춰 경제정책을 수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당부다.
일본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지난해 '2015년 세제개정대강'을 발표하고 법인세율을 현행 34.62%에서 내년까지 3.29%p(포인트) 낮은 31.33%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일본 법인세율은 미국(40.75%)보다는 낮지만 프랑스(33.3%), 독일(29.59%), 중국(25%), 한국(24%) 등 다른 주요국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다. 일본 정부는 법인세 인하가 기업들의 임금 인상·고용 증가·투자 확대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마코토 교수는 "일본 기업들의 순 설비투자가 둔화되는 현상은 일본 경제가 점차 성숙기로 진입하고 있음을 반영한다"며 "단순히 법인세를 낮춘다 해서 투자가 쉽게 확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출처: 국제금융센터] |
아울러 한국은행 동경사무소는 소비세율 추가인상 연기에 따른 일본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열린 자민당 임시 이사회에서 올해 10월로 예정됐던 소비세율 추가 인상 시기를 2017년 4월로 1년 반 연기했다. 당시 일본의 지난해 3분기 GDP 성장률 속보치는 연율 기준으로 전기대비 1.6%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크레타 미쓰이스미토모은행 환율트레이딩그룹장은 "일본 경기가 시장 예상보다 크게 저조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소비세 추가인상 연기를 통해 일본 경제에 소비 회복·주가 상승 등의 선순환이 나타날지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지 야마토증권 투자고문은 "일본 경기가 예상 밖 부진을 보이면서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다고 인식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정치적 리스크도 증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성수 기자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