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희준 기자] "정부가 뭘 해주면 사업모델을 가져갈 게 아니라, 설립 주체가 뭘 잘할 수 있으니 이런 것을 허용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혁신적인 금융 비즈니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 대통령이 말 한마디에 너도나도 한다고 하는데 이런 시대는 지났다." (금융권 연구원)
한 금융권 연구원은 현재 금융권의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논의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일갈했다.
정부와 언론이 떠들고 있지만, 실제 시장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을 통한 혁신적인 금융서비스 제공에 대해 진중한 고민을 하는 이는 없다는 것이다. 논의 쟁점 역시 규제완화(금산분리)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와 교수, 연구원 등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금산분리 등 구체적인 쟁점에 대한 처리 방안보다 사안에 접근하는 방식과 태도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과도하게 금산분리와 연계하거나 핀테크를 인터넷전문은행과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 필요성 고민...'어떤 자본' 아닌 '어떤 서비스'로 이어져야
일단 인터넷전문은행이 도대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은행의 문턱이 낮고 지점도 많으며 인터넷뱅킹, 심지어 다이렉트 뱅킹(전북은행, KDB산업은행)도 잘 갖춰진 국내 금융여건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논의는 '어떤 자본'이 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두 번의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의 전사를 보면, 인터넷전문은행은 대체로 정부발(發) 특정 기조 아래 태어났다. 실제 2001년은 김대중 정부 벤처 열풍의 끄트머리에서, 2008년은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차원에서 논의가 촉발됐다. 2001년은 시장의 벤처자본과 대기업자본의 결합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민간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지만, 대기업 2세들이 은행설립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서 결국 은행 '소유' 자체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지 은행 '서비스의 혁신' 자체에 초점이 있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번 역시 논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은행서비스의 혁신에 대한 고민보다는 규제완화의 차원, 직접 은행을 어떤 자본이 소유하게 할 것이냐의 관점(금산분리)이 인터넷전문은행 논의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연구원은 "지금 은행이나 보험, 증권 등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없어 불편함을 느끼는 게 뭐냐, 실제 아무것도 없다"며 "근데 너도나도 알리바바, 아마존이 들어오니 우리도 인터넷전문은행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자기가 어떤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할지에 대한 개념도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규제만 풀어달라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금산분리 과도한 연계 말아야...핀테크 자체가 실종 우려
이에 따라 인터넷전문은행도 어느 관점에서 국내에 끌어들이려 하는지 명확히 하고 이에 걸맞은 측면에서 금산분리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좋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을 금산분리를 완전히 해제하는 돌파구로 삼으려고 하지만, 이럴 경우 자칫 금산분리 완화나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시각이다.
금산분리 자체가 워낙 뜨거운 이슈라 자칫 인터넷전문은행, 나아가 핀테크와 관련한 모든 이슈 자체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핀테크가 정보기술(IT)과 금융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금산분리 논의를 배제할 수 없지만,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이 문제를 다룰 사안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 금산분리 완화 반대 쪽에는 대기업의 사금고화를 반대하는 것 외에 인터넷전문은행의 쉬운 특화영역이 개인대출이라는 점에서 가계부채 문제와도 연계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대출을 조여야 하는 상황인데, 왜 인터넷전문은행이 나왔는지 잘 모르겠다"며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위한 금산분리 완화는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차라리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산분리를 건드리지 않는 차원에서 다루고 핀테크는 또다른 층 위에서 접근해야 하는 조언이다. 이른바 꼬리(인터넷전문은행)가 몸통(금산분리, 핀테크)을 흔들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시각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은 핀테크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핀테크에 공감했던 것도 '간편 결제' 때문이지 인터넷전문은행이 없어서가 아니다.
강임호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은행 채널에 대한 논의고 금산분리는 은행 체계에 관한 논의인데 교묘하게 뒤섞어 논의를 어렵게 하고 있다"며 "인터넷전문은행은 외국에서 10년 전에 한 것으로 사실 새롭지도 않고, 우리는 인터넷뱅킹도 잘하고 있어 중요한 이슈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당국 안팎에서도 은행의 모든 업무를 다 하지 않지만 유사한 업무를 하는 신종 금융서비스로 인터넷전문은행을 규정해 기존법과 별도의 법으로 규정하는 방식으로 금산분리를 우회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저축은행이 실제로 고객 계층과 지역에서 은행과 다르지만, 은행업무와 상당히 겹치면서도 금산분리 적용을 받지 않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물론 금산분리가 유지돼 기존 은행의 자회사 형태로 출발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존 인터넷뱅킹과의 차별화가 쉽지 않아 고객 혜택이나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수익성 확보는 결국 기업이 찾아서 해결해야 하며 인터넷전문은행이 혁신이나 혁신의 촉매제가 된다는 기대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진석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날 미국의 인터넷전문은행과 미국 5대 대형은행의 대손비용률 등의 비교를 통해 "인터넷전문은행의 예대업무 경쟁력은 아직 검증된 바 없다"고 말했다.
한 제2금융권 대표는 사석에서 기자에게 "지난해 연말부터 핀테크에 대해 공부를 해봤지만, 금융권에는 너무 핀테크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환상이 많은 것 같다"며 냉정한 시각을 촉구했다.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